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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순대

작성자
Lv.54 지구평평설
작성
17.07.25 04:30
조회
671

군대를 전역하고 내가 했던 일이라곤 하루하루 엉덩이를 긁으며 벽에 똥칠하듯 무료하게 방구석 티비나 보는 일이었지요.

그러던 내 눈앞에 김연아의 갈라쇼 재방송이 나왔어요.
멍하니 김연아의 화려한 쇼를 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홀린듯이 일어났어요.

턴, 레프트, 악셀.... 한동안 거친 남자의 무용을 선보인 나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뜨거운 땀방울을 훔쳤어요. 화면 너머의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나를 환대해주는 듯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고양되는건 어쩔수 없었죠. 이래뵈도 그당시의 난 조금 섬세했으니까 말이에요.

그러던 와중 결국 고된 노동의 결과로 배가 고프기 시작했어요.
옆에는 라면 세봉지가 먹음직스럽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난 손대지 않았어요.
자본주의의 인스턴트에 휘말리는 것이야말로 남자로써 참을 수 없는 비겁한 짓이니깐요.

런던 미치코 청바지에 삼디다스 슬리퍼를 신고  근처 포장마차로 향했지요.
순대집에 도착하니 아주머니께선 힐끗보시곤 말했지요.
“보통 2천원, 백암 3천원. 보통으로 줘?”

그러나 남자의 기개를 지닌 내가 선택할 것은 뻔했어요.
난 굳은 목소리로 말했죠.
“백암으로 합시다.”

그제서야 아주머니는 조심스레 물었어요.
내 말의 기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야생마의 기개를 그 아주머니도 느낀 것이겠지요

“혹여 순대의 조합은 어떻게 해드리는게 좋을까요?”
“허파가 간의 사십퍼센트에 달하되 그 전체 양이 삼분지 일이 되면 안될것 같아요.”

....


“헤이 쥬드~ 돈비어푸레이드~”
신 뉴요커의 발음과 함께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당당했어요.
한손에는 백암순대가 승자의 휘광을 알리는 것과 같이 보무 당당히 흔들리고 있었죠.

그 때 갑자기 자그마한 소리가 들렸어요.

“저기...”

어떤 일일까요? 주위를 둘러보니 고등학생 정도 되는 여자아이가 교복을 입고 저를 부르고 있었어요.
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설마 이 여자아이는 나에게 관심이란걸 가져 헌팅이란걸 시도해보는 것일까요
자그마한 기대를 안고 나는 물었어요.

“어떤 일인가요?”
“저기... 편의점에서 담배좀 사다주시면 안되요?”

아.... 그래요. 꿈따윈 없었어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집으로 향하는 내 발을 멈춘건 뒤에서 들려오는 울듯한 목소리였어요.

“저... 안사가면 언니들한테 맞아요.. 제발 부탁드려요....”

그 말에 난 소녀를 살펴보았지요.
가녀린 몸에 약간 헤진듯한 교복.
아마 언니란 사람들이 소녀를 괴롭힌 결과겠지요.

왜 그 언니들은 소녀의 목까지 때린걸까요?


잠시 안락한 집과 소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에 갈등했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었어요.
가녀린 소녀를 구하고자 하는 나의 기사도적인 정신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요.
이 소녀와 같이 손을 잡고 싶어요.
이 소녀와 같이 산책을 나가고 싶었죠.
이 소녀와 같이 놀이동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래요. 난 이소녀를 위해 편의점에 들어섰어요.

어떤거 드릴까요? 라는 편의점 알바의 말에 “디플 있나요?” 라고 말하려던 그 때 난, 그만 소녀의 입가에 걸려있는 자그마한 미소를 보고 말았어요.
아.. 이럴수는 없었어요.
악마같이 올라와 있는 입꼬리는  마치 인간의 타락을 비웃는 듯 샐쭉 올라가 있었지요.


너무나 큰 충격에 머리를 휘청이며 쓰러지려는 나에게 알바의 걱정스런 “괜찮으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건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너무나 큰 충격에 쓰러지려는 마음을 가까스레 가다듬고 난 당당하게 외쳤어요.

천하장사 소세지 다섯개 주세요.

이후 편의점을 나와  다가오는 소녀에게 마이클 잭슨의 주법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어요.
그녀의 표정은 보지 않았지만 상상이 가요.
막 하늘이 노래지고, 막,막 그랬을거에요.

숨을 들이쉬며 집으로 돌아온 난 거칠게 소시지를 물어 뜯었어요.
흩날리는 비닐조각들은 내가  얻은 승자의 전리품을 축하하는 야성의 증거였지요.
그러던 와중 그제서야 깨달았어요.

아... 내 백암순대., 3천원 주고 산 순대...
그제서야 편의점에 순대를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도로 갈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아직 그 학생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그곳에 다시 간다는건 거친 남자의 야성을 가진 나에게도 조금은 부담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요, 난 라면을 끓였어요.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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