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수요, 즉 독자의 니즈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독자의 니즈가 무엇인지 제가 깨달은 곳은 댓글 창이었죠.
저는 작품을 읽기 전에 소개와 댓글부터 봅니다. 설정이든 개연성이든 뭐든 문제가 있는 글은 댓글에서부터 나타납니다.
그런데 작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런 댓글들에 달리는 댓글들은 대부분 내용이 비슷합니다. 소설이 재미만 있으면 됐지 뭐가 문제냐. 판타지에서 현실성을 찾고있네. 읽기 싫으면 그냥 조용히 떠나지 왜 잘 보고 있는 사람들 짜증나게 난리냐. 돈 내고 보는 것도 아니고 기본 무료로 읽으면서 말 많네.
소설이 재미만 있으면 된다고요? 어쩌겠습니까. 설정 충돌이 눈에 뻔히 보이고 주변 인물들 반응이나 행동이 영 이해가 가질 않으면 재미가 팍팍 떨어지는데.
현실성을 찾는다고요? 현대물인데 그럼 판타지적인 요소를 제외하고는 현실성이 있어야지 프로 야구에서 공을 배트로 쳤는데 ‘깡’소리가 나면 참 재밌겠습니다? 그리고 현실성이 아니라 개연성을 요구하는데 둘의 차이를 모르면 좀 찾아보고 얘기하시죠.
싫으면 조용히 떠나라? 작가 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인데 자기 자신이나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면 그냥 아예 안 듣고 화를 내실 분들이네요. 그럼 전 싫어하는 작품에 달리는 재밌다는 댓글이 정말 짜증나니까 달지 말라고 주장하겠습니다.
(카카오 페이지의 경우) 기무로 보면서 뭔 말이 많냐? 돈 내고 보는 독자만 독자입니까? 공짜로 본 건 평도 못 해요? 시식 코너에서 겉보기엔 멀쩡한 똥맛 음식을 먹어보라고 권해서 먹었으면 맛 없다고 얘기도 못 합니까?
조금 흥분했네요. 다시 돌아와서, 이런 반응들이 뜻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예전부터 장르소설을 봐온 코어 독자들이 아닌, 거대 플랫폼을 통해서 이제 막 유입되는 신규 독자들은 작품에 요구하는 바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대부분의 신규 독자들이 장르 소설을 만화와 같은 위치로 본다고 생각합니다.
만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과장이 정말 심합니다. 놀란 표정을 표현하기 위해 눈이 튀어나올 듯이 크게 그리거나 여자가 약간 벗은 모습만 봐도 코피를 흘리며 기절하거나. 특히 개그를 소재로 하는 4컷 만화 같은 경우엔 더더욱 심하죠. 재미를 위해서는 약간의 현실성정도는 그냥 무시합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말 그대로 그냥 ‘시간 때우기’ 위해 장르 소설을 읽습니다. 만화와 같이 그냥 적당히 휙휙 넘겨보고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재밌으면 된다는 마인드죠. 코어 독자들같이 너무 많이 읽은 작품들에 질려서 참신한 소재, 매력적인 인물, 소름 돋는 반전, 앞뒤가 들어맞는 설정, 이런 것들을 많이 요구하지 않습니다.
요즘 작품들이 너무 유치하고 가볍다고요? 일본 라노벨의 영향도 있습니다만, 저는 만화의 영향도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라노벨이 만화에 영향을 받은 걸수도 있겠네요.
습작이 많이 올라오는 조아라 무료 작품들을 보면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 인물들이 대답하는 장면을 “““네. ”””로 표현하거나(4명이 같이 대답했다고 진짜 저렇게 쓰는 글들이 가끔 보입니다.) 인물이 말없이 놀라는 장면을 “......!”같이 표현하거나. 만화의 말풍선을 한꺼번에 합쳐서 넣는 기법이나 말풍선에 !만 넣는 표현과 비슷하지 않나요?
저는 지금까지 유치찬란하고 개연성 떨어지는 소설들을 내심 쓰레기, 병신같은 작가, 소설 볼 줄 모르는 독자들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리겠습니다. 취향은 존중해야죠. 저는 그런 작품들을 좋아하는 분들의 취향을 존중하겠습니다. 저는 개그나 예능을 보면 정말로 재미없고 유치하지만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는 것과 같은 이치겠죠.
거대 플랫폼인 네이버나 카카오페이지를 보면 이런 분들 정말 많습니다. 정말 못 보겠다 싶어서 댓글을 봤는데 ‘정말 꿀잼입니다!’, ‘작가님 연참 안 하세요?’, ‘소장권 100개 질렀습니다. 내 인생 최고의 소설!’. 이제부터는 저와 취향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겠습니다.
단지 진지하고 앞뒤 딱 맞게 짜인 엄격진지근엄한 글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너무 괴로운 나날일 뿐이네요.
그래도 오탈자, 비문 교정같은 기본은 좀 지킵시다! 그리고 ‘?!’나 ‘!?’나 ‘홍길동......!’같은 표현은 안 쓰면 더 좋겠네요. 저라면 대사 다음에 ‘......!’라고 해놓은 대본을 받고 연기하라고 한다면 아마 제일 먼저 작가를 죽이러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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