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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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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민 공화국" 티셔츠 [펌]

작성자
Lv.7 퀘스트
작성
04.09.10 13:19
조회
411

혹자는 반란자의 땅, 혹자는 민주 혁명의 땅이라 부르는 광주에서 독특한 문구가 씌어져있는 옷을 방학 동안 여행 중에 샀습니다. 옷 한 복판엔 첨부된 사진에 나와 있는 데로 한글로 큼지막하게 '조선 인민 공화국'이라고 씌여져 있고 영어로는 비무장 지대 관광(DMZ TOUR)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일종의 관광 기념 티셔츠이죠. 디자이너의 의도는 알 수가 없지만 영어에 익속하지 않은 사람에겐 DMZ TOUR보다 '조선 인민 공화국'이란 문구가 더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신기해서 이 옷을 구입하긴 했지만 솔직히 이 옷을 입어볼 엄두는 나지 않았습니다. 이 옷을 입게 되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몇 벌 안 되는 옷도 다 세탁기에 들어가 있고 이 옷을 입으면 주위의 반응이 어떨까 궁금해서 이 티셔츠를 입고 학교로 갔습니다. 첫 장애물은 저희 아버지였습니다. "이놈아...빨갱이-_-라고 씌여져 있는 옷을 입고 나돌아다니다가 경찰서에 붙잡혀 가려면 어쩌려고 그러냐..." 전 그냥 황급히 인사만 드리고 밖으로 나갔죠.

저희 집에서 지하철로 가는 길목엔 강동경찰서가 있습니다. 의경들이 밖에서 근무를 서고 있구요. 전 당당하게 근무 중이던 의경 앞을 지나갔고 그 의경이 흠칫 놀라는 표정을 봤습니다. 절 한참이나 보고 당황한 눈빛을 보내는 걸 느꼈고 전 그냥 지나쳐왔습니다. 그런 현상은 계속해서 일어났죠. 출근길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지하철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 동안 느껴보지 못하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습니다. 대부분의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우선 보고 흠칫 놀라고 계속해서 쳐다보더군요. 지하철 안에서 앞에 앉아있던 할아버지는 왠지 모를 놀라움과 분노(?)의 시선까지 보냈습니다.

대학교 안에 들어갔을 땐 별반 큰 반응은 없었습니다. 지인들은 한마디씩 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그냥 지나치거나 신기하게 쳐다보긴 했지만 흠칫 놀라거나 하진 않더군요. 수강하던 과목은 철학과 물리 과목이었는데 교수님들도 크게 신경쓰시지 않았습니다.

집에 또 돌아오면서 또 똑같은 시선을 느낀 저는 겨우 티셔츠에 짧은 문구가 왜 이런 반응을 불러일으키는지 생각해봤습니다. 길거리엔 다양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더군요. Canada, U.S.A., England, Italy, Cambridge 등등 지명을 박아넣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수히 지나쳐갔지만 유독 '조선 인민 공화국'에 사람들이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똑같이 국가명을 집어넣은 이 옷에 왜 사람들이 이렇게 다르게 반응할까...

어쩌면 최초에 제가 주변을 의식해 이 옷을 입을까 말까 고민했을 때부터 전 대충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논쟁적인 부분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분명 북한을 다른 나라들과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런 문구가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국보법 문제와도 관련해서, 만약 과거 같았다면 전 지금쯤 남산에서 모종의 무언가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전 어렸을 때 '국민학교'에서 반공, 혹은 멸공이란 글자가 박힌 명찰을 차고 다녔고 북한 사람들은 늑대나 악마처럼 그려지는 만화 영화와 책을 보고 이승복 어린이가 영웅으로 대접받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전 그것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북한은 지명이 인쇄되어 돌아다니는 나라들과는 뭔가 차원이 다른 나라이고, 어떤 의미에선 적국이란 사실을 말이죠. 대학에서 나름대로 고등교육을 받았고, 빨갛다고 분류되는 책들도 읽고 감명을 받기도 했으며 전공 중 하나인 동양학 쪽에선 중국의 공산혁명에 대한 교육과 서적을 읽었음에도, 마치 트라우마처럼 계속해서 남아있었던 겁니다. 저보다 나이가 더 드신 분들께서는 어떤 식으로든 저보다 더 심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짧은 시간 동안의 별 것 아닌 경험이었지만 통일의 문제이든 국보법의 문제이든 쉽게 해결나지 않을 것이며 단시간에 해결이 되지 않을 문제라는 걸 몸소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의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주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아마 DMZ TOUR라는 옷에 대한 변명이 안 적히고도 '조선 인민 공화국'이 인쇄된 옷을 자유롭게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입고 돌아다닐 수 있을 때가 되면 조금 달라질 지도 모르죠...

사진은 올릴줄 몰라서리...


Comment ' 4

  • 작성자
    소봉
    작성일
    04.09.10 16:57
    No. 1

    홍홍.. 그게 분단국 그리고 전쟁이 얼마지나지 않은
    우리나라의 슬픔 아니겠습니까? 80년내나 90년대 초에
    그런 옷을 입고 다니셨다면 길거리에서 경찰서로
    직행하고 국가 보안법에 의하여 물고문에서 시작해서
    전기고문 기타등등. 고문에 시달리셨을 겁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 보셨으면 조금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적월
    작성일
    04.09.10 16:58
    No. 2

    위험한 행동을 하셨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퀘스트
    작성일
    04.09.10 17:01
    No. 3

    [펌]입니다. 저 그렇게 용감하지 못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서비
    작성일
    04.09.11 13:24
    No. 4

    레드 컴플렉스를 알고 나면,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란 문구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이 단지 국가권력에 의한 억압에 의해서만 이루어 진 건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우리 모두 그 광기의 시대에 동참하고 있었고, 그 것이 생존전략이었기 때문이죠.

    할아버지의 분노의 눈빛은 그런 의미에서 조금 이나마 이해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 걸 트라우마라고 불러버리는데 저는 고개를 저어 하는 바입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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