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소설에서는, 굳이 순수문학 소설을 찾지 않더라도,
주인공이 다소 문제가 있고, 그래서 고통 받고, 좌절하고,
그런 와중에 돌파구를 찾고, 심지어 그러다가 결국은 실패하고,
새드엔딩을 맞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물론 장르소설에서 이런 경우는 흔한 케이스는 아니었죠. 다만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무협에도, 판타지에도.
다만 현판에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현판의 발생원인은 여러가지겠지만,
그중 상당부분이 현실도피- 세상 살기 뭐 같은데, 소설에서나 대리만족-에 가까우므로,
현판에서조차 세상은 조+ ㅅ 같은 것, 이란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
독자 입장에서는 달가울리가 없었겠죠.
지금 온라인 연재, 특히 유료연재는 사실상 현판의 세상입니다.
절대다수가 현판이죠.
게다가 그런 온라인 독자들의 절대다수가 과거보다 더욱 더
소설에서조차 세상은 조+ㅅ 같은 것, 임을 새삼 깨달게 해주는 것에
거부반응이 극에 달한 상태이므로,
장르소설, 특히 현판에서 호구 주인공을 등장시키는 것은 거의
자살골에 가깝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실 저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므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주인공등은 개인주의에 가까워졌죠.
그래서 돈이 좀 생기고, 능력도 있어서 친척, 심지어 여동생 도와주는 것조차
호구 소리를 듣는 개인주의적 주인공들의 세상이 됐습니다.
문제는 이제 몇몇 소설들에서 그것을 넘어서서
이기주의적, 아니 민폐 주인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애당초 주인공은 빌런, 혹은 다크 히어로라면 그나마 이해는 갑니다.
일반적 현판 주인공을 등장시키고는
주인공은 주변인물들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니, 비상사태가 벌어졌는데, 주변 신경 쓸 상황이 어디 있느냐?
는 반론도 물론 가능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충분히 생존이 가능하고, 퀘스트 독식도 가능한 상황에서
오로지 주인공 혼자 강해진다는 일념으로
주변인들을 곤란하고, 어렵고, 심지어 죽게 만드는 일까지
무덤덤하게 강행합니다.
물론 그중에는 죽어 마땅한(어감이 좀 이상합니다만?) 나쁜 조연들도
있겠죠. 그러나 상당수는 얼떨떨하게 비상사태- 던전이라든지, 미궁이라든지,
- 에 빠져든 상황일 겁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일반적 현판에서 주인공은 거대세력,조직, 국가의 절대 갑질에 대항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개인의 무력과 능력을 바탕으로 그런 절대 갑질에 대항하고, 그럼으로써
어느 정도의 카타르시스를 부여하는 거죠.
근데, 어라? 알고 보니, 주인공 자체가, 아예 등장하면서부터
주변인들에게 갑질하고 있네?
내가 저 주변인이었으면 환장할 심정이겠군!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이제 주인공을 절대갑질에 대항하는
대항마가 아니라,
주인공 자체가 절대갑질의 상징이 되버리는 거죠.
그럼 절대갑질의 악적인 존재와 뭐가 다릅니까?
시원한 악당질을 보라고요?
그러려면 아예 빌런물을 표방하는 게 낫죠.
우리사회가 점점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구 주인공에 답답해하는 점,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개인주의의 경계선 마저 넘어서서,
그 선을 넘어가면,
그건 더 이상 사이다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냥 민폐덩어리죠.
작가분들이 쌍팔년도처럼 무조건 권선징악적 소설을 쓰라는 것은
아닙니다만,
주인공의 무력과 능력이, 그래서 그 절대갑질이 독자에게 어떤 경우에는
사이다가 되고, 어떤 경우에는 뭔가 거북스럽게 느껴지는지,
그 차이를 조금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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