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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99 가류운
작성
03.08.14 00:25
조회
390

※출처: http://xbible.com.ne.kr

다섯번의 종교회의.....[펌글]

  ☞ 성경은 앞에서 이미 원전(原典)에 대해 논한 바 있지만,

하느님(신)의 말씀일 수가 없다. 성령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다섯 번에 걸친 종교회의에서 다수 교회장로들과 종교에 대해 전혀

관심이라고는 없는 황제의 정치적 이해가 얽혀 도그마화 된 교리들을

만들고, 이단자 심문의 고문과 살인을 허용하여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종교재판이라는 잔학스런 의식까지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만들어진 교리는 수많은 오류와 문제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1차 종교회의 (니케아) : 하느님이 되어 버린 예수

제2차 종교회의(콘스탄티노플) : 삼위일체를 결의

제3차 종교회의(에페소스) : 마리아를 하나님(신)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의

제4차 종교회의(칼케돈) : 예수의 이중성

(신과 인간의 성격이 불가분적으로 합치)에 대한 신조 도입

제5차 종교회의(콘스탄티노플) : ▷ 인류의 타락 누구의 죄인가?

▷ 천국에서 하나님의 피조물(루시퍼)이 일으킨 쿠데타

▷ 자신(하나님)의 친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하고 그제서야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인류와 화해(?)

▷ 삼위일체 - 애당초부터 하나인 아버지와 아들

1. 제1차 종교회의

니케아에서의 제1차 범 종교회의.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소집.

속셈은 한창 번창중에 있는 그리스도교를 업고 로마제국을

굳혀놓기 위해서였다. 콘스탄티누스가 318명의 주교들을 선발,

소집했던 배후에는 이빨을 드러낸 파워폴리틱스(Power Politics)

에서였고, 종교야 어찌되건 관심밖의 일이었다.

이 점에 대해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던 주교들도 짐작 못한 바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황제는 ①회의를 사회했고 ②내 뜻은 바로 교회의 법률이라는

성명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주교들은 세례도 받지 않은 황제를 <세계의 주교>격으로 영입시켜 속세의

왕으로서 교리에 관한 투표에 참가시켰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예수의 가르침이니 뭐니 전혀 아는 바 없었다. 그는

미트라의 태양숭배를 받들었었고 기독교세상이 된 뒤에도 그가 발행한

화폐에는 미트라神의 초상을 조각, "무적의 태양, 나의 보호자"라고 써놓고 있다.

희랍에 옛날부터 있어 오는 비잔틴에 자기 이름을 붙여 330년

콘스탄티노플로 고쳤는가 하면, 여기를 로마제국의 수도로

정했을 때에도 역시 기독교적인 겸허따위는 오불관언, 기념축전에서는

거대한 기둥탑을 세워, 미트라신과 자신의 모습을 조각케 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노예를 폐지하려는 생각은 커녕 오히려

음식물을 도둑질한 노예의 입에 납을 녹여 붓는 형벌과 가난한 자는 자식을

팔아도 된다는 법을 정하기까지 하였다.

그럼, 이 폭군은 교회정책의 어떤 결정에 참여했던 것일까?

당시에는 하느님과 그리스도는 동등하다고 하는 아타나시우스의 설과

신은 오직 하나뿐이므로 그리스도는 신을 닮아 있을 뿐이라는 알렉산

드리아의 아리우스의 설이 대립되어 있었다. 이것이 많은 사제들과

지식인들 사이에 파급되어 대립이 심각해지자,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종교 고문관인 오시우스를

보내어 진상을 조사케 했다. 오시우스는 돌아가서 황제에게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하라고 했다. 그는 만일 '예수가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기독교

교리가 허물어지고 믿음에 혼돈이 생겨 교회의 권위가 파괴되어 분열을

일으킬 것이며, 결국 로마제국까지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당시는 유럽, 이집트, 서남아시아의 전지역에 퍼져있던 미트라 신앙이

쇠퇴하고 그 대신 기독교가 국교(313)화된 시점이었다. 그 때문에 기독교

교리의 절대적인 힘을 빌리지 않고는 로마제국을 강력하게 통치할 수

없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세속적, 정치적 속셈도 있었다. 콘스탄티누스는

친히 회의를 주도하고 토론에도 참석했다.

그런데 회의에 참석한 주교들 대부분은 극단의 양 견해를 피하고 중간자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이 채택되도록 주교들에게

압력을 가해 아버지격이 되는 하느님과 예수그리스도는 동등하다고 결의케 했다.

결국 단 두명을 제외하고는 모든 참석자가 아타나시우스에게 표를 던졌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 니케아회의의 결정이 신의 감화에 의한 것이라고 자랑했고,

대부분의 순진한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본래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를 섬기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세례를 받은,

신학적 논리에는 어두운 인물이었다. (이러한 황제의 영향으로 예수의 가르침이

국교화되는 과정에서 이 미트라신앙의 의식이나 제도,관습,교리 등이 없어지지

않고 초기 기독교에 의해 대부분 수용된다.

(미트라 신앙이 기독교에 미친 지대한 영향은 따로 후술할 것임)

그러나 그 후 황제의 입법으로서 손질을 한, 이 변경은 교회의 핵심

<도그마>가 되어 버렸다.

비기독교인인 콘스탄티누스는 또 그 이상의 공적도 교회에 기여했다.

예수의 무덤을 사상 처음 발견하여 그 자리에 교회를 세웠다. 그해에

그는 근친 몇몇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아들 그리스프스,

처 파우스타를 끓는 열탕 속에 처넣어 죽였고, 장인 마키시미안을

체포하여 자결시켰다.

<니케아의 신앙 선언>을 주재하여 회의를 끝낸 뒤, 318명 주교들의

합의야말로 하느님의 결정이라는 것을 기독교 교단에 회람을 돌린

인물은 대주교격인 황제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아르메니아, 그리이스, 러시아 교회의

성인으로 추대받기까지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 미트라(Mithras) 신앙과 기독교

흔히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이들이 미트라 신앙을 고대의 잡신

신앙이나 원시신앙으로 매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미트라 신앙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기독교의 뿌리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태양신으로 널리 알려진 미트라에 대한 신앙은 약 사천년 전,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었다. 미트라 신앙은 동으로는 인도에서

중국까지 서로는 로마국경의 전 범위, 즉 스코틀랜드에서 사하라 사막,

스페인에서 흑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미트라를 숭배했던

장소들이 영국,이태리,루마니아,독일,헝가리,불가리아,터기,페르시아,

아르메니아,시리아,이스라엘,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된다.

미트라 신앙은 로마제국에서 로마 군인들의 종교가 되었고,

제국 전역에 사원과 성전이 세워진다. 그들은 미트라에움이라는

자연적인 동굴모양을 모방해서 만든 사원에서 의식을 행했는데,

황소를 제물로 바쳤다.

"미트라" 동굴에서 꼭 발견되는 하나의 그림이 있는데, 한 인물이

황소의 목을 따는 그림이다. 그림에서 황소를 제압하는 인물이

"미트라"로써 태양신의 아들이다. "세상의 빛"으로 불리워졌고,

예수와 마찬가지로 "미트라" 성 삼위 일체의 두 번째, 즉 아들의

존재로써 중개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의 생일은 12 월 25 일로

경축되었다. 만인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었다가 3 일만에 부활하였다.

그의 부활은 기독교의 부활절 주기와 일치하며 12제자를 거느렸다고 전해진다.

예수의 가르침이 국교화되는 과정에서 이 미트라 신앙의 의식이나,

제도,관습,교리 등이 없어지지 않고 초기 기독교에 의해 대부분

수용된다. 즉, "미트라" 숭배자들이 믿었던 천국과 지옥, 죽은 자가

부활하는 심판의 마지막날,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를 위해 현존하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최후의 전쟁, 구세주의 고통과 형벌이 신자를

구원하게 되리라는 교리, 영을 통해 거듭 태어난다는 것, 구원, 부활,

재림 등의 교리, 최후의 만찬 이야기 등등 너무도 흡사하다.

또 미트라신은 처녀한테서 태어났는데 예수도 처녀에게서 태어났다.

또 미트라의 탄생을 경축하는 축제가 12월 25일에 열렸는데 이를

기독교에서 그대로 차용하여 예수의 생일로 쓰게 되었다. 그리고

두 종교 모두 세례의식과 피와 포도주에 의한 성화의례가 있다.

기독교 사제의 명칭인 파더(Father)는 미트라교 사제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며 미트라교의 주교는 자신들 직책의 상징으로 미트라

또는 미테르(주교관)을 썼는데 기독교의 주교들 또한 이러한 미테르를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것이다. 카톨릭의 성직자 계급 제도나 예배 형식

및 예배 시 쓰이는 도구들 즉 향불, 예배 의복 등등 모두 미트라와

흡사하다. 십자가 목걸이, 염주알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와같은 연유로

라즈니쉬는 기독교의 창시자는 예수가 아니라 콘스탄틴 황제라고 선언한 것이다.

" 믿기지 않겠지만 기독교의 창시자는 콘스탄틴 황제이다. 기독교에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대중들이 그 사실을 알도록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니케아 종교회의를 주도했던 콘스탄틴 황제는 기독교인으로 죽었지만,

임종직전에 세례만 받았을 뿐이다. 그는 평생동안 태양신 종교의

고위성직자로 있었다. 바로 이런 관계로 예수의 안식일인 토요일을

일요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다. 예수 역시 토요일을 안식일로 믿고 평생 살았다..

태양의 숭배자들은 항상 태양의 날이 신성한 날이라고 믿어왔다.

실제 기독교의 창시자는 콘스탄틴이다. 그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로마의 황제였기 때문에 그의

압력하에 성직자들은 예수의 신성에 찬성하게 된 것이다. 바로 콘스탄틴이

예수를 신으로 만들었다. 예수의 신격화는 콘스탄틴의 착안이다.

또 콘스탄틴은 예수의 생일을 1월 6일에서 태양의 재생일인

12월 25일로 바꾸었다. 12월 25일은 예수 탄생 이전부터

전세계적으로 경축해온 태양신의 날이었다. 크리스마스의

발상 전체는 꾸며진 것이다.

예수는 1월 6일에 태어났다. 그런데 콘스탄틴의 영향력에

의해 예수의 생일은 태양의 재생일인 12월 25일로 둔갑된

것이다. 태양숭배자들은, 태양이 12월 25일에 탄생했다고

생각해 왔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완전한 무지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크리스마스가 가짜라는 것을 모르는 채..... 교회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대중들에게 철저히 감추고 있다.

이것이 진리의 수호인가? 거짓의 방어일 뿐이다.

콘스탄틴은 예수를 실패한 메시아로 보고, 그 자신을 진정한

메시아로 생각했다. 그의 이런 견해는 유명한 주교인 케자리아의

유세비우스의 다음 말에서 잘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의 종교는

마침내 예수가 아닌 콘스탄틴에게서 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콘스탄틴은 그 자신을 유대인들이 기다려온 마지막 예언자로 만들었다.

물론 유대인들은 로마의 황제를 십자가에 매달 수는 없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왕권의 원조를 원했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곳곳에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있었다. 그들은 콘스탄틴의 보호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순전히 협상,비지니스에 불과하다.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실패한 메시아이고 콘스탄틴이 참메시아라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런 사실은 대중들에게 공표된 바가 없다. 기독교인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라즈니쉬)

2. 제2차 종교회의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제2차 종교회의를 소집한 주역은 교회가

대제(大帝)의 칭호를 봉헌한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였다.

이 황제는 도덕적 소질에 있어서 콘스탄티누스황제에 뒤지지 않았다.

역사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가난한 백성들을 들볶는 악취미가 있어

하류층 백성들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부담케 하고

중세관리들에게는 고문을 예사로 자행시켰다. 뿐만 아니라 황제의

권한으로 만약 누가 빈민들을 숨겨주거나 했을 경우, 마을 주민

전체를 학살시키기도 했었던 폭군이었다.

경건한 종교회의가 있은 지 10년 뒤, 즉 기원 390년에는 데사로니카시

근처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시민 7천명을 참살시키기도 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때는 기독교에서 <할렐루야>라는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의 기도가 도입되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테오도시오스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여 미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로부터 <대제>라는 호칭을 받았으며, 그는 암브로시우스로

하여금 타종교의 성소(聖所)들을 모조리 파괴시켜 버리게 하였다.

이 소행은 실제로 이단심문(異端審問)의 시조라고 불러 주어야

마땅한 처사였다.

그럼 콘스탄티노플의 제2차 종교회의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 났던

것일까?

신학전문가들로부터 <산송장 회의(殘骸 會議)>라는 욕을 먹고

있는 이 모임에서 그 어느 것보다도 중차대한 신앙조항이 교회에

도입되었던 것이다. 성부,성자,성신(성령)의 삼위일체가 바로 그것이다.

이 삼위일체설은 지금까지도 교회의 주식(主食)이 되어 내려오고 있다.

3. 제3차 종교 회의

에페소스에서의 제3차 종교회의. 소집자는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2세와

서로마의 발렌티아누스3세였다. 두 황제 모두가 종교는 고사하고 정치마저도

아예 관심이 없었던 플레이보이들로서 회의에도 얼굴조차 제대로 내보이지 않았다.

테오도시우스 2세, 그는 도락에만 철저했던 무기력자로 방탕생활에

돈이 많이 들게 되다 보니 신하와 백성들로부터 인정사정 없이

세금을 갈퀴질해 냈다. 권력욕에 탐닉되어 있던 음모덩어리인

누나 부르케리아에게 완전히 잡혀 휘둘려지고 있었던 것도 지당했던

일로서 그녀는 잠깐 섭정으로 앉기도 했었다. 그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을 비웃어댔지만 처녀임을 자처했다.

그러나 그녀는 종교에만은 열심이었던 관계로 성녀 품에 오르기에 이르렀고,

동생이 죽은 뒤 그 유능한 라이벌인 크류소프스를 살해하고서도 태연했던

그녀였다. 그리고 서로마의 발렌티아누스는 모친인 태후 프라키디아가

섭정을 맡았었고, 발렌티아누스는 권신인 아에티우스를 미워하여 살해하려다가

황후 에우독시아를 탐낸 막시무스에게 살해되었다.

그럼 에페소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이 회의에서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의했었다.

이것이 <테오도시우스 법전>에 수록되어 국법이 되었다. 순번(順番)식이

된 셈이다. 언제나 거기에는 성령이 따라 붙고 있었다.

4. 제4차 종교회의

칼케돈에서의 제4차 종교회의. 정식으로는 비잔틴 황제 마르키아누스가

소집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흑막은 역시 테오도시우스2세가 죽은 뒤,

마르키아누스를 남편으로 삼은 처녀(?) 부르케리아였다. 주교 축들보다도

자신의 목적을 잘 분별하고 있던 여성이었다.

신학자 에드알트 슈바르츠는 부르케리아가 각 교회의 의사에 반하여

압력적으로 종교회의를 소집, 자신 스스로 주도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럼 칼케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교황 레오1세는 <도그마 편지>에서 예수의 이중성(二重性)에 대한

신조를 도입시켰다.

이 회의에서 예수라고 하는 인격 안에 신과 인간의 성격이 불가분적

으로 합치되어 있는 것으로 믿게 되었다. <칼케돈 신조>라는 이름으로

이 이중성은 지금까지 살아 남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칼케돈에서는

교리 통일의 호지(護持)가 교황의 개입에 의해 가능할 수 있게 확정되었다.

이에 로마 교황의 탄생이 있게 된 것이다. 그 뒤에 전개될 기초가 여기에서

문서상으로 명시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바티칸은 빈말로라도 부르케리아가

음모를 꾸며 칼케돈의 종교회의를 열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본다.

5. 제5차 종교회의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제5차 종교회의. 주최자는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아누스1세였다. 황제는 쟁쟁한 독재자의 처이며 공동 통치자인

테오도라가 시키는 대로 처신하였다.

테오도라는 서커스 매니저의 딸 출신이었다. 청색,녹색의 서커스당이

반기를 들었던 <니카의 난>때 옥좌자리를 되찾아 주면서 황제를

남편으로 소유해 버렸던 것이다. 이 공적이 있은 뒤부터 그녀는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이교의 잔여세력들을 뿌리뽑아 없애 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쾌거야말로 종교회의의 높은 양반들이

이빨을 드러내면서 애걸했던 것이었다. 제5차 종교회의의 주교들은

이 처사에 대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종교회의에서 의도했던 것을

유스티아누스는 벌써 황제로서의 교서, 법률로 공포해 놓았던 것이다.

이 모임이 역사에서 <갈채 회의>로 규정짓고 있는 데에는 일말의 비웃음이

아니었다고만은 단언할 수 없다 하겠다.

유스티아누스는 교황 비기리우스(뒷날 교황의 무류성을 규탄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가시로 보이는 배역)를 콘스탄티노플로 불러 들였다.

비기리우스나 주교들이나 무두가 뒤에 가차없는 이단 소탕 법령때문에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되는 황제의 파워폴리틱스적 관심에 꼬리를

치며 뒤따랐던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도그머를 부인하는 자는 이단자로 낙인이 찍혀 죽음의

벌로 다스려졌고 세습권도 정지당했다. 로마 관리들은 큰무리로

떼지어 다니면서 이단자들을 색출해 내 끌어 모아다가는 유스티아누스의

어명에 의해 강제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게 했었다.

비잔틴의 사학자 프로코피우스는 페르시아, 반다르고트를 상대해서

유스티아누스의 전쟁사실을 기록했고, 또 유스티아누스의 소피아

교회의 건설사업까지도 문서로 남긴 인물이지만 동시에 유스티아누스와

그 처 테오도라를 비난하는 전단을 초안해 내기도 했었다. 유스티아누스를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던 프로코피우스는 그를 교만하고 성인인 체하고

방자하고 음험스럽고 잔인하고 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규정짓고 있기도 하다.

기독교 계통 사학자들은 프로코피우스의 기록을 대할 때 돌아 앉아 버리고

싶어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콘스탄티누스와 테오도시우스와 마찬가지로

유스티아누스도 성인 품에 올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회의에서는 또 무슨 일이 벌어졌었던 것일까?

▣ 인류의 타락 누구의 죄인가?

신은 아담과 하와를 시험하려 하셨다는 사실을 신학자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이 된다고 극구 부정하는 것이다.

<유혹>이니 <시험>이니 그건 하느님답지 못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느님

께서는 전지하시니 테스트 결과쯤이야 미리 알고도 남을 일이 아니었겠는가?

아담과 하와에게는 자유의사가 있었을 것이므로 지혜나무의 열매를 먹어도

되느냐의 여부를 자기 스스로가 판단했었던 것이라고 하는 답변 또한

문제될 것이 없다. 이것 역시도 하느님께서는 미리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럼 두 내외가 자유의사로 낙원동산의 사과를 씹지 않았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아담과 하와는 지금껏 낙원동산에서 발가벗고 어슬렁거리고 있을

것이 아닌가? 사과를 따 먹지 않은 두 남녀, 발가벗은 히피 스타일로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생식가능성도 모르는 고자에 고녀, 이 꼴이 되어

버렸더라면 도대체 세상은 어찌 되었을 것인가?

신은 그럼 컨베이어 벨트로 실어 나르듯 계속적으로 인간을 생산

해내지 않으면 안될 뻔하지 않았는가? 신의 금지령에 고분고분하기

때문에 자유의사로 지혜를 구해볼 생각조차를 가져볼 줄 모르는

멍청한 인간이 아니었겠는가?

그러고 볼 때 전능하신 신은 타락을 미리 계산에 넣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진다. 그것도 아닐 경우 설마 오늘날, 이 나라 저 나라 모두가

인구과잉으로 터질 지경까지 이르게는 만들어 놓지 않았을 게 아니겠는가?

▣ 천국에서 하나님의 피조물(루시퍼)이 일으킨 쿠데타

그럼 어떤 사정에서 아담과 하와가 나무가지로부터 사과를

따먹은 것일까?

거기에는 유혹자인 사탄인가 뱀인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두를 하느님이 만드셨다고 우리는 배우고 있다. 사탄 또는 뱀은

지선(至善)하신 하느님의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기만 한

인간 두 사람, 그것도 이 세상에 오직 그들만이 존재하는 선남선녀를

속였다는 말인가? 그게 사실이라고 가정해 보자. 하느님은 어찌 되었길래

사과 한쪽 베어 먹은 데에 모욕을 느껴 가지고 그 세계에 구세주가

나타나기까지의 원죄 뿌리를 못박아 주기까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인가?

어떻게 될 것쯤이야 미리 아시고 계셨을 터인데도 말이다. 이쯤된다면

신학자들은 내 입을 틀어 막으려 들 것이다. "그게 아니오. 악마 루시퍼는

하느님 나라에서 반역한 존재라는 것을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이오?"

라고 말이다. 아니 하느님 나라에서 반역을 일으켰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천국>이란 우리에게 약속해 놓고 있는 것처럼 <행복>이란

말과 같은 뜻을 가진 곳이라면, 그런 곳에 어떻게 쿠데타 음모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일까?

하느님의 나라, 그 지복(지복)의 세계과 이상적인 완전 행복을

보증한다고 할 때, 루시퍼도 하느님에게 대항하려는 생각을 품지

않았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전지전능한 신에게 감히 대항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항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와 반대로 천국에 완전한 행복이라는 것이 없다고 할 경우 결국

하느님은 완전한 전능이 못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 않겠는가?

이 대목 역시 신학논쟁의 아픈 부위로 하느님과 루시퍼의 싸움에

대하여 신학자들은 그럴 듯한 해석을 붙이지도 못할 뿐더러 논리적인

동기의 구실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루시퍼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러

오기 전에 이미 하느님은 그 계략이 성공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아담과 하와의 <자유의사>라고 하는 문제에 이르러서는 아무리 루시퍼니

사탄이니를 등장시켜 보았던들 기분내키는 대로의 해결, 그런 방법

이외로는 달리 논리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루시퍼,

아담과 하와, 또는 뱀까지도 전지(全知)하신 하느님의 의사로

행동했던 것이기에 말이다.

▣ 자신의 친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하고 그제서야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인류와 화해(?)

교육받은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하느님은 지극히 행복스러운 천국에 살고 계시며, 거기에는

음모세력도 있었다. 루시퍼는 그 짓을 저지르기 위하여 에덴동산에

나타났고 아담과 하와는 그 꼬임에 빠져 하느님이 예측한 그대로

죄를 범하게 된다. 이 부분이 비논리성의 극치적 장면이라 하겠는데,

이에 전능하신 하느님은 진노하여 최초의 부부자손들을 세세영겁으로

저주, <원죄>라고 하는 낙인을 박아 버린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세상 인류를 사랑하사 스스로 독생자를 희생시키셨다고 한다.

하느님의 아드님은 원죄탓으로 고통받고 있는 인류를 위하여 형제자매들을

구제해 주기 위한 일념에서 죽음을 당하게 되고 그제서야 비로소 아버지

하느님의 진노가 풀리셨다고 한다.

미리 알고 계셨던 전지(全知)의 하느님은 방지할 수도 있었을 텐데도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도록 방치했고, 또 뻔히 알면서도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친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하고 그제서야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인류와 화해했다? 이건 도대체 어느 고장 풍습이란 말인가? 진노한 신의

기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피의 희생제물을 바치는 식의 잔인스러운 결말로

사실상 이 세상으로부터 원죄가 추방되었다는 이야기지만 그건 지금껏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 삼위일체 - 애당초부터 하나인 아버지와 아들

재치 풍부하고 말재주 좋은 신학자들은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그

아드님을 희생시킬 정도로 인류를 사랑했던 것은 아니고, 도리어

예수가 자유의사로 인류를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생명을 바친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방향 전환 역시

신통한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 한쪽이 무엇을 하고 다른 쪽이

무엇을 한다고 하는 차이는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여하튼 희생이란

넌센스다. 아버지와 아들은 현행 교리(三位一體)로 볼 때 애당초

부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론에 맞지 않으니까 신학자들은 다른 최후의 해석을

착상해 내기에 이르렀다.

예수는 아버지격인 하느님의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해야 되겠는가를 몸소 인류에게 보여주려 했기에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거야 원위치, 제로점으로 돌아가는 셈이 아닌가? 온 인류가 하느님의

마음에 들게 꼭 그래야만 될 것이라면, 전능하신 하느님은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를 자신의 의사와 명령에 의해 원죄라는 과정 없이 만들어

놓았으면 좋았을 것이며 그런 능력쯤이야 있었을 것이 아닌가?

이상 "종교회의"에 관한 내용은 백남철 편저<Cosmic Bible>에서

많은 내용을 참조, 요약한 것임을 밝혀둔다.


Comment ' 1

  • 작성자
    Lv.6 롤플레잉
    작성일
    03.08.14 08:30
    No. 1

    어허..또 쓸데없는 일을 하셨군요.(책 쓴 사람) 그 시간에 나가서 돈을 버시지...그게 말로 이해가 되는 일이었으면.....지금 교회들 다 망했지요....온갖 명목으로 돈 뜯어내기....그 돈으로 지은 교회 아들에게 물려주기..등등 엽기적인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데...에고..돌날아오네...무조건 비판하는 자들은 사탄이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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