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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망원경과 손전등!

작성자
Lv.10 읍내작가
작성
03.02.01 21:04
조회
512

겨울이 녹아 봄이 되듯이........

중2였던가? 까까머리 수줍음 많은 나! 이제는 능글해져버린 빠다로 변했지만...

그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친구녀석 형이 몰래 책상 서랍에 모셔둔 빠알간책을 보고 난 이후로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린 나!!! 중2 여름이었다.

지나가던 여자를 돌보듯 하던 이 정인군자께서 망원경을 들고 설치던 그때

앞집에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아이가 살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그저 치마만 둘렀다는걸 알뿐.  

그때는 그랬다. 치마만 두르면 모두가 왕조현처럼 보였으니까.

(우리때는 왕조현이란 영화배우가 참 인기가 많았다. 예쁜귀신!!!)

망원경을 손에 든건 그녀의 치마자락을 보기 위해서였다.

몰래 훔쳐본다는거... 관음증이련가?

그렇게 하루 이틀 망원경을 통해 난 내 수줍음의 관음증을 발산했다.

옥상으로 올라와 가끔 뭔가를 생각하듯 등을 진 그녀의 치마자락!

여름이 다가도록 난 그렇게 망원경속에서 조금씩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하루종일 안절부절, 그녀의 치마자락이 한여름 땡볕아래

나풀거리면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듯한 감정 .. 난 그렇게 배워갔다.

누군가를 좋아하다는게 이런 것이구나.!!!

아침 저녁으로 반팔 티셔츠로는 한기를 느낄때쯤

방학도 끝나가고 있었다.

내 망원경도 이제는 휴식을 취해야 할듯 했다. 난 적어도 그녀 앞에 당당히 나설

만큼 용기가 없었으니까. 그때는....정말 부끄러웠으니까.

저녁무렵! 이승철의 마지막 콘서트가 라디오속에서 열창으로 전해올때

내 손에는 여전히 망원경.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손전등이 들려 있었다.

언제나 등을 지고 섰던 그녀가 처음으로 돌아섰고 그 손아귀의 손전등은

나만큼 부끄러운듯 눈을 깜박거렸다. 너무나 놀랬다.

가슴이 터질듯 했다.

창문을 쾅 하고 닫아 버린건!!!!!.... 침대에 누워 무서운 귀신을 본것마냥

땀을 뻘뻘 흘렸던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너무나 소중한 기억이다.

고3 수능1세대!!! 그렇게 시험적 도험적 국가고시를 치루고

난 그녀를 만났다. 우연히!!!

만원버스안에서 중2의 수줍은 소년은 온데간데 없고 고3의 능구렁이가

대뜸 그녀에게 말을 걸었지.

실업계.. 이제 곧 취업이라는 말! 난 아직도..그리고 앞으로 4년 더 학생이어야 하는데... 아니 그보다 더 오래 학생일지도 모르는데..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날!

그녀에게 책을 선물했다.

그날 난 면접이 잡혀 있었다. 언제 오는데? 뭐 좋아하니??

선물에 대한 답례를 하려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다. 난 그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그 이후로 학교 생활에 빠져.. 군대에 다녀와... 졸업을 해..취업을 해..

이제는 회사생활에 빠져.... 그렇게 잊었다.

망원경이 사라진건 그즈음이었다. 어디에 쳐박아 두었는지 기억도 못하고

그저 잃어버렸구나 ... 했을뿐!

오늘 그녀를 만났다.

설을 보내려 집으로 온듯 했다. 슈퍼에서 쥬스를 들고 서 있는 날 먼저 알아본건

그녀였다.

내가 알아보지 못한건 그녀의 가슴팍에 안겨 있는 작은 아이 때문이었다.

두세살 남짓.....

망원경은 잃어버렸지만 그녀는 손전등을 지니고 있을까?

프링글스 한통을 들고 싱긋 웃으며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난 그 손전등을 찾고 있었다. 집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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