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습니다. 두 눈이 깜깜해졌습니다.
마티즈 본넷 위로 둥 떠서 날아오르는 하이바맨이 내 동공을 스쳐지나갈때
난 멍하니 핸들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각을 잃어버린 내 다리는 브레이크와 클러치를 동시에 누르고 있
었습니다. 악몽이라 생각했습니다.
누나와 조카를 데려다주는 중이었습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이제 갓 백일 지나고 이백일 지난 내 귀여운 조카!
내가 외삼촌이야 라고 하면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그저 방긋 웃어주던 내 조카
그 조카를 태웠으니 난 너무나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습니다.
60을 넘지 않고 마치 기어가듯 천천히!!
뒷차가 빵빵거리며 시위를 해도 무시하고 무조건 천천히!
그런데 꿈에도 생각치 못할 사단이 벌어졌습니다.
삼거리 교차로
연휴 밑이라 차들로 도로는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간신히 신호를 받아 좌회전으로 막 밀어넣는 순간
직진신호가 떨어졌습니다.
저의 마티즈는 어중간하게 차선에 걸리게 되었고 엉거주춤 꾸역꾸역
앞머리를 밀어넣어 겨우 직진 차들에게 방해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우회전을 해야 합니다.
비보호 우회전!
뒷차들에게 손을 내밀어 양해를 구하고 우회전 차도로 접어 드는 순간!
난 결코 보지 못했습니다. 뒷차에 가려 볼수가 없었습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둔탁하게 부딪쳤습니다.
본능적으로 난 브레이크를 밣았고 뒤를 바라보았습니다.
내 조카! 누나!
사고가 난것인지 어쩐지도 모르고 그저 뒷좌석만 살폈습니다.
곧이어 누나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찰나간에 앞쪽을 살폈을때는 하이바맨이 다이빙을 하며 마티즈 본넷
위를 스쳐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뒷자석을 살폈습니다. 괜찮은듯 했습니다.
진정을 하고 부리나케 내렸습니다.
오토바이가 쓰러져 있고 한 사람이 엎어져 있었습니다.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부축해 일으켰습니다.
사람을? 아니 오토바이를요. 난 그만큼 정신이 없었던 겁니다.
누나가 급히 차에서 내려 어찌할바를 모르더군요.
난 그제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하이바맨을 살폈습니다.
근데 이 사람! 대뜸 이러더군요.
이봐요! 직진 신호인데 당신 뭐했어? 일단 경찰 부릅시다."
아아!!! 내가 신호 위반을 했다는 겁니다.
그랬나요? 나도 모르겠더군요.
이때 내 조카 뭔지도 모르고 그저 두꺼운 외투에 푹 쌓여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내 조카가 막 울어댔습니다.
난 누나에게 차 안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누나는 걱정이 되어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기는 계속 울어대고 난 그저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친데 없으세요?
안절부절이고...
우선 병원부터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대뜸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저씨 어디가시는 길이세요? 고향 가는 길입니까?"
아아. 난 뭔 말인지도 모르게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하이바맨은 그제서야 툭툭 옷을 털더니 말했습니다.
"나 병원 못 가요. 내일모레 설날인데 내가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여기서
합의 봅시다. "
네네 합의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 몸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병원으로 일단 가자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나 젊었을때 스턴트 했수다. 아저씨 인상보니 고향 자주 찾지는 않을듯 한데
오랜만에 고향가는 길에 불상사 생겨서야 되겠수? 오토바이 기어 나간듯 하니
파스값하고 이거 수리비하고만 변상하슈. 내 몸 내가 잘 압니다. 이정도로
어디 부러지고 할 몸 아니오."
아아아! 어찌할바를 모르겠더군요.
네네. 이 사람 혹시 협박이라도 하려나? 엄청나게 많은 돈 요구하는건 아닌가
괜한 의심이 들어 그럼 어떻게 할까요 물었습니다.
"기어 고치는데 십만원! 끝이요. 파스값이랑 뭐 나중에라도 병원 한번 다녀올라면
경비도 드니까 십만원만 내슈. 그리고 아가 추워서 우는듯 한데 얼릉 아주머니 모시고 들어가쇼. 재수없었다 여기면 끝나니깐."
제가 보기에 오토바이 수리비 십만원이면 벅찰듯도 합니다.
마티즈 우측 앞바퀴 휠이 두동강이 나서 나가 떨어질만큼 억센 충돌이었습니다.
그리고 스턴트를 했든 말든 붕 떠서 날아 올라 크로스로 지나친 그 사람의 몸
글쎄요 병원 가지 않아도 될지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여전히 망설이자 팬과 메모지를 꺼내들더니 휙휙
몇자를 휘갈기더군요. 합의서였습니다.
몇년 몇일 어디어디 몇번 차랑 몇번 오토바이가 충돌했는데
합의하여 얼마를 받고 추후 민,형사상 추궁을 하지 않겠음...이라는 합의서!
그걸 주면서 자기도 일해야 되니 얼릉 합의하자고 하더군요.
네네 전 이십만원을 주었습니다. 굳이 사양하는 그 사람에게
이십만원을 주면서 몸이 성치 않으면 연락을 해달라고 연락처를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우선 받더니 연락처를 단숨에 찧어버리더군요.
"나도 내 맘 어케 변할지 모르오. 괜히 심술 부리려고 하다가 연락처 보면 장난질할
수도 있으니 없던 일로 합시다. 내 아가 교통사고로 죽었오. 꼭 저만할때 내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가다가 마누라는 살고 아는 죽었소. 미쳤는기라. 아를 태우고 오토바이 몰았으니,. 암튼 조심합시다."
질질 오토바이 끌면서 그 사람이 가더군요.
정신이 없슴다. 누나는 얼마나 놀랬는지 온통 창백한 얼굴이었습니다.
매형이 뒤늦게 나와 천만다행이라며 위로를 하더군요.
아차 하는 순간입니다. 운전하시는분들 조심하세요.
자신을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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