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병 모양의 계곡 사면을 통과하던 중 사공운은 용설아를 보았다. 신형이 흔들리고 있었다. 한계점이다.
- 잠시만 쉬어가세! 아가씨가 한계인 듯 하네.
힐끗 뒤를 본 신독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핀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음파를 차단했으니, 말씀들 하셔도 됩니다."
숨을 몰아쉬며, 용설아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종일 잡목숲을 헤치며 걸은지라 용설아는 입
에서 단내가 나고 있었다.
"신소협, 매복은 보이지도 않는데 이렇게 힘들게 가야 하나요?"
주위를 경계하던 사공운이 용설아를 보며 싱긋 부연한다.
"아가씨, 매복을 지금까지 열군데나 피해 왔습니다. 이 친구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
다."
"예?"
위험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용설아는 깜짝 놀라 땀을 닦던 손을 멈추었다.
빙긋 웃던 신독은 바닥에 앉아 나뭇가지를 들어 그림을 그려 설명했다.
"지금까지 저희는 관도를 따라 온 것이 아니라 그 밑이나 위를 돌아서 왔지요. 우리의 위나
바로 아래에 매복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들이 관도를 향해 신경을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턱밑을 빠져 나가는 우리를 발견치 못한 겁니다. 지금은 적과 마주쳐 교전을 하기 보다는
그들의 시야를 벗어나 봉성으로 가는 것이 시급하기 때문에 이런 험로를 가는 것이지요."
"자네가 아니었다면 몇 번의 전투가 불가피했겠지. 이변마왕 초영의 세력이 생각보다 방대
한 것 같군."
"전대의 고수였던 그가 어떻게 그리 많은 세력은 모았는지는 저희도 아직 파악을 못했습니
다. 주의해야 할 고수들이 한 두 명이 아닙니다."
"그런데,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
잠시 생각하던 신독은 나즈막히 말했다.
"이 곳은 여산(廬山)입니다. 이 곳만 넘으면 포양호가 코 앞이지요. 봉성의 세력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포양호 주변은 너른 평지이기 때문에 이 산에서 저들을 따돌려야 합니다. 다행
히 봉성에서 마중을 나오고 있다면, 이 산을 넘은 후 몇 개의 야산만 통과하면 만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지금까지와는 달리 저기 보이는 자개봉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봉성을 향해
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매복으로 볼 때, 저 곳에도 반드시 저들이 있을
겁니다. 이제까진 숲이 우리를 숨겨 주었지만...자개봉은 골산(骨山)입니다. 숨을 곳이 없지
요. 저들이 저 곳에 있다면 피할 수 없습니다."
사공운은 침울하니 말했다.
"아직 몸이 완전하지 않은데....얼마 후면 도착하나?"
"내일이면 자개봉 밑에 도착할 겁니다. 그 때까지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야 합니다."
무리를 해서 강행군을 했기 때문에 사공운과 용설아의 체력은 오히려 떨어져 있는 편이었
다. 신독은 이상하게도 산에 들어오자 공력이 증진된 듯 힘이 넘쳐 보였다.
"자네의 무공이 산과 관련있다고 했나?"
쑥쓰러운 듯 웃으며 신독이 말을 이었다.
"예, 산에는 모두 각각의 정기가 있지요. 제가 익힌 수령신공(樹靈神功)이 그 정기를 이용하
는 것이죠."
"산과 교감하는 것인가?"
"정확히 말하면....산에 안긴다고 보시면 됩니다. 산의 정기를 받고 그 흐름에 따라 몸을 움
직이는 것이지요. 춤을 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신소협의 걸음이 그렇게 특이했군요."
내내 신독의 뒤를 따랐던 용설아가 끼어 들었다.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마치 땅이 밀어주는 것 같더군요. 산과 교감하는 것 같이요."
"하하...정확히 보셨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요결이지요."
신독은 웃음을 멈추고 용설아와 사공운을 보고 말했다.
"지금 최대한 운기를 해서 체력을 회복하십시오. 내일 아침이면, 교전이 불가피할 겁니다.
다행히 이곳이 포양호 주변이라 아침에 안개가 극심하게 끼는 날이 자주 있지요. 운이 좋으
면 내일 전투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호법을 서겠습니다."
사공운과 용설아는 신독을 바라보곤, 곧 가부좌를 틀고 운기에 들어갔다. 이 곳은 적들의 시
야가 미치지 않는지라 곧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내일이 이 행로의 고비일 것이다. 어쩌면 뼈를 묻을 지도 모르겠군. 풍형님과의 약속을 지
켜야 할텐데...'
사이좋게 운공조식에 들어간 둘을 보며 신독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참으로 보기 좋은 원앙
이 아닌가. 이제 봉성에 들어가면 용설아는 담황과 혼례를 올려야 할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
아야 할 사공운을 생각하니, 신독의 마음은 절로 무거워졌다.
'어차피 체력을 회복해도 내일의 싸움은 내가 맡아야 한다. 이변마왕 초영이라....그가 자개봉
에 있지 않기를....탁트인 그 곳에서 초영과 마주친다면, 동귀어진을 시도해도 무리...일 것이
다.....이럴 때, 효현 아우나 불문(不問) 순찰이 있었다면....'
숲 속의 공창(空唱)을 우러러 시린 하늘을 보며 신독은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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