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장익
작품명 : 풍진기
출판사 : 정연
나는 옛날 한때는 말 술도 피한적이 없었지만 어느때부터인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소주 반 병과 맥주 한 병이 딱 맞는 양이다. 그것도 세 잔 까지 넘기는 것이 전과 달라서 맥주만 마시면 싱겁고 소주만 마시면 넘기기가 그렇고 해서 섞어서 마시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최근 어쩔 수가 없어서 마신 술도 있지만 또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해서 마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밤도 곤고한 삶의 한 토막을 잠시라도 잘라내버리고 싶어서 마셨다. 소주 한 병과 맥주 두 병이면 거의 치사량인데도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미 곯아 떨어져버린 술병들을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버거워하는 육신의 손을 들어줘버린 의식이라는 놈이 아무 뜻도 이유도 없이 나를 피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고무림에다 패대기를 처 버리고 말았다. 그곳을 배회하던 나는 우연한 만남인지 운명적인 만남인지는 모르겠지만 소구자라는 고 뭣이라는 이름보다. 더 자주 불리는 이름을 갖고 있는 어린 거지를 만나고 말았다. 그리고 한 몸이라고 하는 두 놈, 육신과 정신의 치열한 다툼을 구경하다가 한 놈이 이기는 바람에 그 냄세나는 거지를 지켜보게 되엇다.
그리고 다중이 지지하고 선호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소설일 수는 없다는 사실, 바꿔서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작품일지라도 나쁜 소설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정한 보편성은 무엇일까 하는 새각이 떠올라 더욱 명료해지는 의식의 멱살을 치켜잡고 패대기를 처서라도 지친 몸을 쉬게 해야한다는 사실도 잊고 말았다. 나는 습관처럼 익숙한 것으로 정당화 되어 있는 나쁜것(들), 보편의 탈을 훔쳐서 쓰고 있는 그 나쁜것(들)을 보전 유지 하고자하는 우리들의 맹목성과 그 뒤에 숨어 있는 하나의 얼굴, 그 이대올로기의 토양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으나 알 수가 없었다. 특수한 나쁜것(들)이라도 이미 다수의 독자들에게 익숙한 습관처럼 편안해져 버렸고 반성적인 성찰이 그것을 밀어내지 못한다면 이미 그 특수한 나쁜것(들)은 보편적인 것으로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봤다. 만약 어떤 사례의 많고 적음으로 통상과 특수적인 것으로 나누고 그것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 확언 할 수는 없으나 지지의 많고 적음으로 나눈다고 볼때 유감스럽게도 어제 내가 읽은 작품은 그 성과에 견주어서는 특수성에 속한다고 해야하나?
그러나 분명히 말하자면 나는 다수가 지지하고 있는 작품들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꼈다.
맺혀버리고 갈라져버린 마음,
그 상처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예술, 혹은 어떤 작가가 던져놓은 작품의 역할이 무엇이어야 한다고 단정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나는 상채기로 뒤덮인 내마음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꼈다. 위로와 격려라는, 만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그것은
우리를, 늘 죽어가는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들) 중 하나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늘(세상의) 보편적 상식일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해왔던 것(들), 혹은 나도 모르게 통념화 되어 있던 어떤 믿음에 대해서 배반을 당할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 인간은 누가 그것을 정해주는지 나는 모르지만 각각의 몫과 분량을 가지고 각각의 형태와 방법으로 살아가고 잇다. 그 지난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기도한 삶. 그러나 육신의 그 곤고함도 마음에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곤고 함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한 가지 자신있게 말할수 잇는 것은 그 여러 삶에 반드시 때의 차이는 있겠지만 위로와 보듬어줌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정 할 숭 없는 진실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문득 전혀 다른 소통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사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가끔 되짚어서 상상해온 장면이 잇다.
시대를 그냥 한 20~30년쯤 과거로 도리는 것이 좋겠다. 무더운 여름의 어느날, 가시로 변해 전신을 할퀴는 폭양 아래의 신작로를 걷고 있었다. 타박타박 , 맨몸을 들어낸체 헐떡이고 있는 신작로를 걷고 있던 나는 갑자기 어떤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10년 혹은 100년전, 그리고 10년 혹은 100년 후의 사람들이었는데 우리는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걷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분명 그 무엇인가가 소통(교통이 아닌)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형상화 할 자신이 없어서 지금까지 버려두고 있었다.
나는 어제 새벽에 문득 아비의 나라에서 6000리나 떨어진 중원의 대륙에서 고약하게 생긴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한 마리 야수가 되어서 뛰어다니는 한 사내의 모습이 떠올라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칠등만세라는 글에서 읽은 이고라는 놈과 편이거나 적인 무리가 펄떡거리는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오늘 낮(술과 잠으로 인하여). 집을 나서는 내 앞을 가로막는 고약한 놈과 부디치고 말았다. '소구자' 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놈. 그 영악스러운 놈을 본 나는 진정한 형상화(사실 뜻도 아직 모르지만)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다른 모든 것들은 알 수가 없었으나 아! 저것이 바로 살아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필연이니 우연이니 하는 개차반같은 소리의 벽 밖에서 히잉' 웃고 있는 소구자라는 어린 거지와 주변의 사람들을 보고,
나는 기쁨과 함께 배반 당해버린 그 어떤 무엇에 슬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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