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키리샤
작품명 : 아저씨용사
출판사 :
일단은 비평을 하기 전에 제가 당부할게 몇 가지 있군요.
첫째로는, 키리샤님을 꼬집고 발로 잘근잘근 밟으려고 하는 목적이 아닙니다. 좀더 멋진 작가로 성장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몇 가지의 길과 단점을 제시하는 것뿐입니다.
둘째로는 저는 비평할 때 반말을 사용하니, 불만이시거나 거북하신 분은 백스페이스를 신속히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셋째로는 이 불완전한 제가 비평을 하니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제 비평에 문제 있으면 꼭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일단 키리샤, 이자의 대해서 말해보자.
이 작가는 문피아의 거의 모든 소설을 다 읽고 있다. 더불어 필자가 아는 바로는 만화와 다른 서적들도 굉장히 많이 본다고 들었다. 아마 그의 참신한 아이디어의 뿌리는 그곳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단 칭찬부터 시작해보자.
나이가 다른 작가들의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다. 그의 아이디어는 이제껏 보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다. 열정도 있어서 끈기 있는 연재와 다작까지 하는 그의 의욕은 참으로 대단하다. 필자도 글을 써보아서 알지만, 그 정도로 한다는 게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참으로 점수를 많이 줬다. 키리샤의 최대의 장점은 독창력과 열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오덕킹’ 이라는 작품을 도중에 버린 사연도 있지만, 현재 작품 ‘아저씨용사’ 에서 보인 그의 다짐은 전작의 암울함을 덮고도 남는다.
자 이제 여기서 하나의 질문.
키리샤는 대체 그의 작품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이 질문은 가히 모든 책에 내던질 질문이다. 왜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겠다, ‘내가 내 시간을 쓰고, 이 책을 읽어서 대체 뭐를 얻고 싶은 것인가?’
그의 독창성과 유머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초반의 조회수를 보면 알듯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지닌 작품이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 담는 메시지는 약해서 잡을 수가 없었다. 그의 스토리는 아무리 새것을 보여줘도 반복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저 전지전능한 페인 아저씨가 대충대충 굴러가는 이야기 아닌가? 아무리 용사의 고뇌와 비참함을 보여줘도 별로 와 닿지가 않았다. 그저 그의 반복되고 의미 없는 하루. 독자는 도대체 이것을 보고 뭘 얻어야 한단 말인가?
소설의 목적을 잃고 그저 내키는 대로 글을 쓴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이 목적은 용사의 여행의 이유가 아닌, 작가의 목적이라 볼 수 있다. 여기 보기를 주겠다. 소설 제목 ‘xx나이트’ 라고 예를 들어보자. 제목은 분명 주인공의 직업을 말하고, 그가 무엇이 될지 벌써 보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벌써 스토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거다.
제목 자체를 벌써 그렇게 한다는 것은 무성의다. 왜냐면 이야기를 앞으로 가게 만드는 원유는 바로 대립이다. 이 영원 같은 시간 속에 있는 한 찰나의 고민과 대립을 보여주며, 한 사람의 고독, 갈등 그리고 진화 등등을 보여준다는 게 보통 소설이다. 하지만, 이 예의 제목은 그 소설의 모티브를 나타낸다. 마치 이것은 ‘내가 이 사람처럼 되면 나는 이렇게 할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은가? 아니면 독자만 보기 좋게 포장지만 예쁘게 싸서 쓴 것 같다. 그 포장지를 뜯으면 정작 알맹이는 없고, 다 읽으면 허무감만 일어나는 게 바로 이 예다. 이것은 ‘아저씨용사’의 경우와 비슷하다. 독자들이 재미있게 코믹성 사건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것이 끝이다. 정작 메시지가 없는 이 소설은 허무함만 일으킨다. 필자는 한동안 이 소설을 보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오직 재미만 있던 이것은 날이 갈수록 물려서, 쌓아두고 보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결국 그이 작품은 주제와 모티브를 잃은 소설로 변했다.
키리샤의 또 다른 문제는 바로 필력이다. 물론 읽기가 쉽고, 빠른 진행덕분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묘사가 부족하다. 좀더 감명 깊은, 슬픈, 멋진, 대단한 등등의 사건을 독자에게 보여주려면, 투박하더라도 때때론 섬세한 필력이 필요하다. 그는 그것이 부족하다. 물론 노련미가 쌓이면 얻는 것이라지만, 그의 작품에서도 좀 보여줬으면 하다. 그의 새로운 시도의 부제는 그를 진화 없는 작가로 만들었다. 개인적인 바람은 그가 그의 열정을 다작에 힘쓰는 게 아니라, 한 작품에다 영혼을 같다 바치듯이 썼으면 한다.
이걸로 비평은 끝마치겠지만, 필자도 키리샤도 완벽하진 않다. 그의 작품 안에 맹점이 보이듯이 나의 비평에서도 맹점이 보이겠지만, 이것은 다 작가를 좋아해서 하는 말이다. 그는 젊다, 아직 성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대인 그다. 오직 나의 말이 그에겐 의미로 변해서 그를 변혁시키고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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