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 대륙을 꿰뚫는 가우리(高句麗, 고구려)의 혼!
처음 읽었을 때,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센스가 넘치는구나!'
가우리의 마지막 열제(가우리식 황제), 보장열제 때의 이야기인데, 보장열제의 배 다른 동생인 '고진천'의 묵갑귀마대가 기사, 마법사, 엘프, 몬스터 등이 쫙 깔린 판타지 세계의 대륙, 하이엔 대륙에 떨어져서 새로운 가우리를 세운다는 줄거리지요.
일단 문체가 아주 시원합니다.
비록 쏟아지는 오류와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작품임에도 군데군데 보이는 일본식 토씨(助詞)나 일본식 한자말이 있지만 쓸데없는 사족(蛇足)이 없고 서술이 명쾌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고증도 아주 철저합니다.
가우리 때의 사회, 경제, 문화 따위가 풍부하고 글 속에 자연스레 녹았기 때문에 굳이 어렵고 딱딱한 역사 보충 설명 없이도 '아, 역시 이런 점은 우리나라가 판타지보다 월등하구나.' 같은 통쾌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또, 글 도중에 가우리 문화와 사회, 가우리 때의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더욱 이해를 돕고 글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또, 글 속에 유머가 넘쳐흐릅니다.
지금, 강철의 열제를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당장 작가연재란에 가서 '강철의 열제' 초반부 내용을 훑어봐도 무쇠마음 무쇠정신인 사람이 아니라면 배꼽을 잡고 뒹굴 만큼 재미있습니다.
열제 고진천의 무뚝뚝하면서도 은근히 배때지가 가려운 개그라든지, 을지부루와 을지우루 형제의 이북 말투 개그라든지, 백제 출신 싸울아비 계웅삼과 그 휘하 반항아 삼인방의 요절복통 헛짓이라든지 여러 개그를 즐기다보면 좀 과격하게 말해서 어느새 '질풍처럼 쳐웃는' 자신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글이 주장하는 바가 뚜렷합니다.
보통 이렇게 유쾌한 이계진입 영지 발전 작품은 '주제와 호소력은 뛰어나나 너무 지루함'이거나 '웃기고 재미있지만 글쓴이가 무엇을 말하기 위해 글을 썼는지 알 수 없음' 가운데 하나인데 강철의 열제는 재미와 주제를 동시에 갖춘 강력한 작품입니다.
제가 비록 가우리 님의 또 다른 작품들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읽는 분들의 댓글이나 비평 등을 볼 때, 개인적인 제 생각이지만 이 분이 꽤 민족주의 성향이 짙은 분이리라 여겼습니다.
하이엔 대륙에 있던 세 제국과 그 나라들의 등쌀에 시달리는 왕국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았는지 갑자기 나타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제국, 가우리.
그다지 복잡하고 철학적이게 생각할 것도 없이 등장인물들과 여러 상황이 대놓고 작품의 주제를 구구절절이 늘어놓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마치 옛 가우리 조상들이 지금 우리 대한민국 후손들을 보신다면, 주인공 고진천과 여러 가우리 장수들이 제국에게 이리저리 치이는 하이안 왕국과 로셀린 왕국을 보고 하는 말을 그대로 할 듯한 느낌.
저는 특히 책의 뒤쪽에 써진 노란색 글귀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깨어있는 자의 역사는 죽지 않는다!"
환(桓)과 밝달, 쥬신, 백제 등, 우리나라 고대 역사에서 대륙을 호령하며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만들었던 조상들.
그 가운데에서 환두대도를 들고 맥궁을 겨눈 채 대륙을 달렸던 가우리의 또 다른 이야기를 읽으며 깨어있는 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