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진짜 살아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결국 이렇게 적어버리고 말았군요. 그럴 자신도 없으면서.
여섯 살 때 인가요. 그 때 처음으로 무언가 상상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곤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지요. 그 나이 또래들이 즐기는 만화나 동화 같은 이야기들에서 말입니다. 그때는 몰랐지요. 활자로 가득찬 복잡한 책들도 읽고 있었으면서 무엇이 어떻게 해서 와 닿고 무엇이 어떻게 해서 와 닿지 않는 것인지.
세월이 지났습니다. 틈만 날 때면 아니, 잠을 자거나 일을 하지 않는 때에는 어김없이 상상이 머릿속에 가득 차는 그런 단계까지 가버리고 말았지요. 아마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 중학교 1학년 언재 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전 그때부터 동화나 만화 따위를 멀리하기 시작했지요. 그건 유치함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때는 단지 멀리했을 뿐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요. 결국 전 사실주의 그러니까 문학의 사실성 따위에 집착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의 꿈이 과학계 쪽이기 까지 했으니까요.
아마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즈음이었을 겁니다. 항상 무언가 상상하고 또 이야기를 생각하기 좋아하던 제게 우연히 판타지란 장르가 찾아오게 된 것이었죠. 처음 시작은 카르세아린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뒤에도 몇몇 먼치킨들을 보게 되었지만 결국 전 그것을 얼마 되지도 않아 접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원래부터 온갖 역사책들과 문학책들을 읽고 있었던 저에겐 그것들이 도저히 눈에 찰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까요. 그 후론 수준 높고 좋은 평판을 얻은 판타지 소설들을 주로 읽게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죠.
처음 글을 잡고 무작정 수백 페이지를 쓰게 되면서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요. 전 그동안 무언가에 질려있었습니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이라는 허영이나 영웅과 악당이라는 허상 같은 그리고 늘 뻔 한 배경으로 시작하는 판타지에도 말이죠.
전 그 수백페이지를 버렸습니다. 필력은 문제가 아니었죠. 언재든지 퇴고라는 수단이었었으니까요. 다만 제가 그것을 버린 이유는 그것이 제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몇 번의 시행착오가 생기고 제가 지금의 이야기를 쓰게 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니, 제 끝없는 욕망이 결국 도전하기 힘든 목표에까지 다가간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죠. 그게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바로 ‘살아있는’이란 단어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입니다만 점점 글을 쓸수록 점점 필력이 늘어날수록 제가 읽을 수 있는 책들은 그에 반비례하여 줄어들더군요. 얼마 전에 최고는 아니더라도 훌륭하다는 평을 듣는 SKT를 읽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좋았습니다만 나중에 가서는 여러 번 읽고 싶지는 않은 책이 되더군요. 전 책을 읽을 때 두 가지의 가치를 가장 우선시 여깁니다. 무언가 주제를 담고 있는 것이나 무언가 살아있음으로 절 숨 막히게 하는 그런 두 가지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지요. 그런데 SKT는 그런 두 가지 요소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살아있음이야 마치 불가능의 고지에 있는 것처럼 웬만한 명작을 읽어도 우선 포기부터 하는 것이었으니 상관은 없겠지만 무언가 주제를 담고 있다는 그 말. 바로 그것만큼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처음 4권까지를 읽을 때만해도 좋았습니다만 나중에 가서는 실망을 해야 했습니다. SKT는 주변의 요소들이 훌륭했지만 그 훌륭함 만큼의 주제를 느낄 순 없었던 겁니다. 마치 앙고 없는 찐빵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분명 훌륭한 글이었지만 그 훌륭함에 상응할 수준의 주제와 감동은 없었던 것이죠.
그 뒤론 왠지 무서워지더군요. 하나는 나는 내가 원하는 그런 목표의 글을 쓸 만큼 실력이 없다는 것에서 또 다른 하나는 이젠 내 가슴을 채워 줄 소설을 고르기 어려워졌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런 답답함을 느끼고 무언가 얻고자 하는 욕망이 커지면서 전 유독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오를 뿐이었습니다. 그건 제가 옛날에 읽었던 어느 소설에 관한 생각이었지요. 그 소설은 정말 단순한 구도였습니다. 누구나 진부하다고 여길 것 같은 선악의 구도였거든요. 영웅과 악당이 등장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에요.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바로 ‘살아있음’이 네 글자였습니다.
소설은 뻔했습니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점은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릴 만큼 거대하더군요. 소설에는 악당과 영웅이 존재했지만 그들은 모두 살아있는 사람이었기에 소설에는 사람만이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다만 사람만이 말이에요.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현실을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빠져들 수 있었던 소설은 지금도 그것뿐이었으니까요. 악당과 영웅은 존재했지만 그것은 이름뿐이었습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살아있었으니 그 어떤 존재를 무엇으로 가를 수 있었겠습니까.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 소설의 결말 부분을 넘길 때 전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차마 넘길 수 없다는 그런 기분을 느꼈습니다. 결말 부분은 영웅이 악당을 이겨야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여느 소설이라면 흥미는 있을망정 그런 못 넘김은 없었을 겁니다만 유독 그 소설만을 넘길 수 없었습니다. 영웅과 악당을 떠나서 살아있는 존재가 진정으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공감 할 수 있었던 존재가 쓰러진다는 것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도저히 장을 넘기기 어려운 것이었지요. 살아있는 존재들 간의 살아있는 대결 하지만 한쪽은 무너져야 하는 것. 끊임없이 고뇌하고 공감 할 수 있었던 존재의 파멸 그건 악당이었음에도 당연한 소설의 결말임에도 넘기기 힘든 것이었지요.
제가 앞에서 만화나 동화를 멀리하게 되었다고 했었겠지요. 그건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은 그런 것에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죠.
불행하게도 그 소설 이후로는 저는 그 어떤 소설을 보아도 그것만큼의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로인해 제 목표조차 살아있는 소설을 쓰는 것이 되었는데도 말이죠.
전 판타지를 쓰지도 무협을 쓰지도 아니, 그런 분류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그저 진짜 살아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뿐이니까요.
흔히 판타지에서는 절대 악이니 절대 선이니 하는 말들이 등장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절대선이나 절대 악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악당과 영웅 그것들마저도 인간이 아닙니다. 아니, 정의로운 기사의 모험담이나 신비로운 세계의 이야기에서 조차 제대로 된 무엇을 발견하긴 힘들 때가 많지요.
판타지에서는 많은 논리들과 이야기들이 존재 합니다만 진짜로 살아있음에 가까운 이야기들은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어떤 사상을 가지고 이야기를 쓰던 어떤 줄거리의 이야기를 쓰던 그것을 진짜 이야기처럼 만들 수 있는 것을 살아 있음 인대도 말이지요.
인간을 완벽하지 않고 무슨 논리이던 무슨 내용이던 모호함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던 책을 읽는 사람이던 모두 말입니다. 다만 그것의 생생함만이 모든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드는 힘이겠지요.
현실성과는 약간 거리가 멀어져도 상관이 없습니다. 전 살아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무슨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던 무슨 주제의 소설이던 그 세계 자체는 마치 실제와 같이 돌아가고 소설 속의 인물들은 꼭 진짜 인물들인 것처럼 소설의 전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그런 소설을 말이죠.
얼마 전에 정규연재란에서 세이라드라는 소설을 시작했습니다. 살아있는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요.
제가 쓰는 이야기에는 전설의 무언가나 세상을 구한 위대한 인물 같은 내용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맹목적으로만 끌려 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이라도 살아있는 인물들과 살아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싶기 때문입니다. 정말 마음에 와 닫는 그런 이야기를 위해서요.
설정을 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쓰기위해 몇 번의 글들을 썼었고 오랫동안 머릿속을 머물렀던 생각들을 모두 이 이야기에 쏟아 부을 생각입니다.
배경은 18세기 즈음의 근대 시대이고 등장인물들의 마음과 이야기 자체의 생동감을 목표로 썼기 때문에 거대한 목적이나 전설의 보검 따위는 등장하지 않아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주인공들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도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야기 자체의 움직임과 꿈틀거림을 목표로 끝에 가서는 살아있음으로 다가가고자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자잘한 사건들의 재미나 무언가 거창한 것이 아닌 이야기 자체의 즐거움을 위해 흐름을 잡을 겁니다. 평범하지만 사람 같은 인물들이 펼쳐나가는 행동들도요.
어쨌든, 이글은 홍보용 글이니 지금까지 했던 말들은 단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 한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아 있을 거라고 해야겠지요.
전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정식으로 글공부를 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이야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지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약간 글을 쓸 줄은 알아도 뛰어난 실력은 없거든요. 어쩜 제가 쓰는 글이 실력이 떨어지거나 아님, 오타투성이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는 이야기를 쓰기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은 말이지요.
커다란 주제 같은 것. 그런 것을 만들기엔 아직 실력이 부족 합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라면 1장에 대한 두 번째 수정이 끝나고 이제 글이 어느 정도 나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장을 수정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한 것들도 있고요.
아직 전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살아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이라드, 프리드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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