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자란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섬뜩한 회색의 눈이 보인다. 그는 금발의 황제를 보며 아무 말도 않고 있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네가 ‘오랜만’이라고 해야겠지. 그렇지 않나?”
황제가 팔을 움직여 별궁을 가리키며 부드럽게 말한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심정은 어떤가?”
황궁의 심처, 제국의 역사와 같은 별궁을 가리키며 황제는 마왕의 ‘집’이라 했다. 이 같은 말에도 마왕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황제를 쏘아보던 마왕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너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아벨리온.”
“그건 너도 마찬가지다, 카인듀스. 여전히 예의가 없군.”
제국의 황제, 아벨리온이 그를 못마땅한 듯 쳐다본다. 아벨리온이 위엄이 가득담긴 목소리로 명령한다.
“황제에 대한 예를 갖추어라, 카인듀스 황자!”
“너야말로 형에 대한 예를 갖춰라, 아벨리온.”
카인듀스가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리고는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를 잡는다.
“하긴 그런 것 따윈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지. 그렇지 않은가?”
귀를 자극하는 금속음과 함께 검을 뽑은 카인듀스가 아벨리온을 겨눈다.
“검을 들어라 아벨리온 17세. 모든 걸 끝낼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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