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피아에도 조아라에도 몇 편 올렸지만 현재 모두 삭제했기 때문에 작품 자체를 직접 언급해도 홍보 효과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새로운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껏 그 깊이가 두려워 함부로 도전하지 않았던 소재들을 과감히 채용했습니다. 문피아에도 얼마 정도 알려졌지만 마이너 소재임에 틀림없는 TS (Trans Sexual) 와 함부로 다뤘다간 욕 먹고 씹히기 일쑤인 정치.
그렇지만 기왕 엄청난 도전을 시작하는 김에 더 큰 도전을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투고라고 하나요? 제가 아는 출판사 중에서 상시 투고를 받는 출판사는 딱 한 곳 밖에 없었으므로, 어떤 라이트 노벨 출판사에 투고를 해보리라 결심했습니다. 잘 되면 잘 되겠고, 안 되면 "나는 이 정도다."라는 증명을 얻을 수 있겠다는 심산이었지요.
출판사가 라이트 노벨을 출판하는 회사였던 탓에 저는 무조건적으로, 제 글을 라이트 노벨 형식에 맞춰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죠? 한 권에 기승전결이 갖춰진, 연속성을 가지는 독립된 이야기. 그런 형식에 제 아이디어를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애당초 그렇게 쓰는 편이 훨씬 더 낫기도 했고요.
그런데 라이트 노벨에는 그보다 덜 강제적인 일종의 불문율이 하나 있죠. 그것이 바로 라이트(Light)라는 겁니다. 라이트 노벨은 태생적 한계 때문에 그 내용 전개가 과하게 무거우면 안 됩니다. 그런즉 상당히 본격적인 정치 - 단순히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말로써 담판을 짓는 것이 아닌 - 를 다루고자 하는 저는 소설 내용을, 적어도 정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는 꽤 가볍게 전개시켜야 했습니다.
허나 불가능합니다.
본격적인 정치입니다. 주인공은 그 어떤 정치적 지지기반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해야 했습니다. 일분 일초도 낭비할 여유 없이 바삐 뛰면서 자신이 선택한 길로 걸어가야 했죠. 여유를 갖고 농담을 던진다거나, 말장난을 한다거나 - 말장난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 정말 라이트 노벨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벤트를 넣는다거나… 가능하겠습니까? 반쯤 미친 상태에서, 미친 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는 주인공이었습니다. 불가능하죠.
결국 최소한의 가벼움을 위해 저는 퓨전 판타지처럼, "누군가가 납치해서 이러한 세계로 갔다."라는 설정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양 세계에는 문이 뚫려있고 그 문은 비밀에 붙여져 있어서 주인공이 휴일이 되면 휴가를 만끽하는 것처럼 원래 세계로 돌아가 가족과 만나 웃기도 하고, 유원지에 놀러가기도 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이런 것을 준비했지요.
그런데 지인 분께서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소설 자체의 분위기나 소재 등에 비해 TS와 퓨전 판타지가 갖는 가벼움은 어울리지 않는다. 주관적인 인상이라고 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건 충분히 맞는 말이었습니다. 분명 매우 본격적인 정치와 갑작스레 성별이 뒤바뀐 주인공, 그리고 과학적 수준이 뒤떨어지는 세계 등은 '정치'라는 주된 가지에 몰입하는 걸 방해하는 곁가지입니다.
그렇자고 투고할 생각을 버리긴 힘듭니다. 이미 그러자고 투고 신청서 양식까지 다운받아 준비중인걸요. (…)
자아, 이 상황에서 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이대로 계속 밀고 나가야 할까요? 아니면, 정치에 맞는 다른 것을 구상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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