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글, 그림, 문학, 그리고 예술. 헝그리정신과 풍요로운 마음. 그리고 중도(中道))
이런 옛말이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글(문학,예술)의 깊이를 논할 자격이 없다.’
얼핏 보면 맞는 것 같다. 왠지 거장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많을 것 같고 우리들 주변에 있는 글쓰는 사람이나 예술하는 사람들은 가난할 것 같다. 그리고 왠지 그런 사람들의 글이나 그림이 더 비싸게 팔리는 ‘헝그리 프리미엄’이 붙어있는 것 만 같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의 측면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서양 고전이나 동양 고전은 ‘귀족적 문화’의 산물이다. 문학사를 살펴보면 서양은 주로 종교나 철학을 중심으로 문학이나 예술이 발전하였고, 동양 또한 종교(유교, 도교, 불교적 색체 등)나 철학(제자백가 등)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대한 실익을 논하기에 앞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소리는 꼭 배고프지 않더라도 글과 그림 음악같은 문학과 예술의 창조력은 어디에서고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눈물 젖은 빵...’에대한 고사가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중간자적인 입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말 글이나 그림 예술만을 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거기에 매달리는 사람들 즉, 헝그리 정신으로 달라붙는 사람들에게는 ‘여유’나 ‘풍요로움’에 대한 깊이가 묻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대부분 여유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높은 가격에 거래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얼마에든 당장 팔아먹고 일정한 돈을 얻는 것에 급급하다. 아마도 이러한 작가나 화가 음악가들은 대부분 노년(혹은 사후)에 여유가 생기고 인생의 여유를 찾았을 때에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그때 즈음해서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고는 한다. 실제 그런 예는 알았는데 누가 누구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예를 들자면 수십을 들어줄 수는 있고 여러분들도 아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송강 정철이라는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고등학교 수능 교육을 위해 고전 문학을 배운 사람들이라면 ‘관동별곡’이라던가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이라는 글에 대해서 들어 보았을 것이다.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대충 대충 들은 소리로 정철이 당대의 시성소리를 들었고 후대에도 그 내용이 전해져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고전 명작이라는 사실을 부정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철이라는 사람의 작품이 아닌 그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는 양반이고 관리이고 정승까지 지낸 사람이다. 쉽게 말해서 정말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즐기고 향유하면서 권력의 맛도 거의 닿을 수 있는 그 끝까지 맛본 사람이다(거기다가 맞누이가 인종의 후궁이고 둘째 누이는 왕족의 부인인데다가 명종과 친구관계 란다). 그렇다면 그는 ‘풍요롭고 귀족적인 색체’를 띠기만 할까? 또 그렇지만도 않다.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붕당이나 아니면 청백리 경향으로 왕에게 찍히기도 하여 한직을 돌아다니기도 했고 파면에 처해지기도 했다. 아버지를 따라서 유배생활을 하기도 하였고 그의 맏형은 곤장을 맞고 장독(형독)으로 사망하기 까지 했다. 그리고 논핵이 있자 스스로 사임하고 고양에 내려가기도 했으며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에는 와서 부모님 상을 지냈다(정확한 일수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1년상정도를 기본으로 치루지 않았나 싶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을 겪기도 하였으며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전라남도 창평에 기거하는 날이 많았고 을사사화 이후 경제적인 빈곤을 겪고 친척의 도움이나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가기도 했다.
송강 정철이 양반에 관리에 왕족의 사돈집안 사람으로서 ‘귀족적’인 생활을 하면서 행복하기만 했다면 과연 그런 깊이있는 문장과 사상을 글로서 표현 하는 것이 가능 했을까? 그는 정말 위에서 아래로 고루고루 그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여러 생활을 겪었기 때문에 그러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아무리 눈물젖은 빵만 먹는다고 해도, 아무리 풍요로운 삶만 겪는다고 해도 단편적인 입장에 치우처진 사람으로서는 깊이있는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는 것이다(완전하게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처진 작품은 편협해지고 다른 쪽을 생각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글이나 그림 우리가 문학과 예술이라 부르는 것들 중 ‘명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한쪽으로만 치우처진(물론 정말 극에 치우처진 경우에는 그 ‘극’에대한 존경과 발상의 전환점으로서 아주 큰 갑어치가 있고 명작이라 칭송하나 그런것은 한개가 나온 이후에는 모두 ‘아류작’이 되버리고 마는 단점이 있다.)관점으로만 탄생한 것이 아닌 여러 관점을 아우르는 즉, 한쪽에만 인기있는 것이 아닌 모두에게 인기있는 그런 것이 바로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즉, ‘가장 대중적인 것이 가장 고전적인 것이다.’라는 말과도 일맥 상통한다.
여러사람에게 공감을 얻어 내고 여러사람에게 읽히고 즐겨지는 것이 바로 명작인 것이고, 나는 이러한 명작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비록 한쪽의 극으로 ‘성공’을 경험하지도 못했고, 한쪽의 극으로 ‘실패’를 경험하지도 못했으며 경제적으로 항상 여유롭지도 않았으면서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았다. 예로 들은 정철과는 다른 의미의 중간자적인 삶, 경계인(경계에 서있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러한 경계인적인 사람을 살아가는 중산층에서 대단한 문장가나 예술가들이 나타나고는 했다. 물론 내가 그렇게 거창하고 뭔가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내가 경계인으로서 살아온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느껴온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를 갈고 닦아낸다면 나로서도 그러한 명작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부가 따르냐 마냐는 지금 당장은 급급하지만 이것은 후일의 이야기이다.
지금 당장은 경제적인 압박과 직업에대한 압박 그리고 정서적인 불안감이 나를 바로 앞일에 급급한 편파적이고 조급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항상 여유를 가지고 글을 쓰고 여유를 가지고 일을 하나 하나 처리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 여러 문학을 꿈꾸거나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편견을 갖지 말고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 이유도 있지만, 나 스스로에 대해 항상 이 글을 보며 너무 한쪽으로 치우처지지 않는 그러한 사고를 하라는 나를 채찍질 하는 의미와 나를 다스리고 나를 다시한번 짚어가는 의미에서 글을 쓴다.
(추가, 헝그리 할 때 똥줄 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추어는 헝그리 합니다. 여유를 가지라고 말해준다고 해도 상황과 환경과 나의 생각이 그렇게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해서 다른건 모르겠지만 환경이 비록 시궁창이라고 해도 ‘생각’만은 항상 여유를 가집시다. 여유 없이는 글도 써지지 않더군요. 이것은 경험담,
그리고 추가로, 장르 문학이 잘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추어적이기 떄문에? 아닙니다. 장르 문학은 프로들의 무대입니다. 그렇지만 아마추어의 참여가 다른 분야보다 열려있는 아주 오픈마인드한 공간이지요. 다만 이러한 아마추어의 참여가 일부 치우처진 그리고 아까 말한 거장 따라하기를 하는 경향이 있어서 인지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장르문학에도 배울 것이 있고 생각을 깊게 해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힘을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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