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
14.09.13 15:56
조회
1,110

문피아에 소설을 연재한 지 1년이 되어 갑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글 쓰는 일이 즐거울 때도 있었고

영 내키지 않지만 의무감에 자리를 지킨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겨울 때조차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끌고 나가겠다는 의지는 남아 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장편이 되어버린 루시엘이 결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최근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저는 지독한 슬럼프를 경험했습니다.

그 동안 글이 잘 안 써질 때도, 쓰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를 슬럼프라고 생각했는데,

근 한 달 동안의 무력감과 비교해보니 그것들은 모두 귀여운 수준이었네요.

최근 저는 글을 쓰는 게 지겨운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쓴 글을 보는 것도 싫어 퇴고 과정에서 눈에 뻔히 보이는 오류조차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이유도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 이유를 알기에 이 슬럼프가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스토리를 짜는 과정을 저는 점을 찍는 작업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머릿속에 굵직굵직한 사건들, 장면들을 그려두는 과정이죠.

그리고 글을 쓰면서 그 점들을 뼈대로 살을 붙여 소설이 완성되는 거죠.

그 점들.... 중요한 사건들, 인상적인 장면들이 제 머릿속에 섬과 같은 형태로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 섬과 섬을 연결할 다리를 올리는 것이 저의 작업입니다.

물론 저는 설계를 한 장본인이기에 아무리 길이 험해도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놓은 다리를 따라 여행을 시작한 독자분들 또한 무사히 건널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이것이 슬럼프의 시작이었습니다.


걱정은 새로운 걱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내가 처음에 구상한 섬은 파란색이었는데

독자의 눈에 빨간색으로 보였으면 어떻게 하지?

최근의 작업에서는 심지어 설계자인 제 눈에도

오래 전부터 몇 번이나 구상한 장면들이 그 때 계획했던 색깔과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별 의미없이 지나가기도 했고

막상 글로 옮긴 결과물이 제가 생각했던 만큼의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소설은 이제 결말로 향하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결말과 달라진다면....

처음에 기획했던 것 만큼의 감동을 줄 수 없다면....?

최근의 제가 쓴 내용이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두려움은 더욱 커졌습니다.

저는 요즘 풍선이 한껏 부풀기 전에 터뜨리는 실수를 자꾸 저질렀으니까요.


일년 동안 써왔던 작품이었기에 이 두려움은 가벼이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슬럼프가 저는 불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서 초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추석 연휴를 맞아 일주일 동안 푹 쉬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뾰족한 해결책을 찾은 건 아닙니다.

다만 풍선을 끝까지 불어 제대로 터뜨리겠다는 마음가짐만 더 가다듬었을 뿐입니다.

또 다시 슬럼프가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슬럼프가 결말을 제대로 내고 싶다는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결말을 제대로 짓지 못하게 방해하지는 않을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봅니다.


공공연하게 밝혔지만 저는 제 자식과도 같은 이야기를

모자란 글솜씨 때문에 미완성된 형태로 소개하는 데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좀 더 실력을 닦은 후에 손질하겠다는 생각으로 미숙함을 외면한 채

일단 이야기를 쌓아올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 무책임한 태도가 이 슬럼프를 가져온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모자란 글이나마 봐주시는 독자분들이 계시고,

음식이 다 익지 않았는데도 초조한 마음에 일단 내놓고 보는 버릇이 생긴거죠.

연재라는 형태가 불러올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지독한 슬럼프도 소중한 경험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 때문에 생겨난 것이니까요.



Comment ' 9

  • 작성자
    Lv.83 란베르크
    작성일
    14.09.13 16:11
    No. 1

    가슴 절절히 동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렌아스틴
    작성일
    14.09.13 16:17
    No. 2

    저도 늘 슬럼프입니다. 요즘엔 책임감 및 의무감으로 쓰고 있습니다. 연중 작가가 되긴 싫더군요.
    처음엔 많은 독자님들이 함께해주셨는데 지금은 아니네요. 그래서인지 작은 응원에 힘이 나곤 합니다.
    독자가 글을 기다리 듯 작가는 댓글을 기다리지요. 어스름달님처럼 저도 힘이 들어 푸념 좀 늘어놓고 갑니다.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밤길
    작성일
    14.09.13 16:29
    No. 3

    절절히 공감가는 내용이군요.
    연중은 피하고 싶어서 서둘러 완결을 생각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화이팅하시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똘이글쟁이
    작성일
    14.09.13 16:41
    No. 4

    저도 느끼는 게 많네요.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빨리 넘기려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긋나는 게 많았고요.
    처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어스름달 님도 힘내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4.09.13 17:04
    No. 5

    문피아에서 본 글 증 가장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의 진솔한 고백인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 스즈언
    작성일
    14.09.13 17:42
    No. 6

    눈물이 날 정도로 공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젤라
    작성일
    14.09.13 20:38
    No. 7

    공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탈퇴계정]
    작성일
    14.09.13 21:05
    No. 8

    초심을 잃지 마세요. 처음에 현판, 겜판과 같은 주류를 놔두고
    자신만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구축해 나간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인기에 연연한다면 모래알과 같은 현판이나 겜판을 쓰시면 됩니다.
    이제 J.R.R 톨킨 이래로 한국형 판타지의 선조들이 수 없이 검증해 온 안전한 길입니다.
    하지만, 그게 진짜 글을 쓰는 이유입니까?
    글이 잘못되면 고치면 됩니다. 방향이 잘못됬으면 다시 길을 이으면 됩니다.
    하지만 목적을 상실한 글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저도 SF라는 상당한 비주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은하영웅전설' 과 같은 은하전기를 하나 써보고 싶다는 것. 라이트한 버전의
    은하전쟁을 묘사해보고 싶다는 것. 그것 하나로 쭉 글을 쓰고 있습니다.
    조회수? 선작? 추천? 물론 신경쓰입니다. 신경 안쓰이는 작가가 있나요?
    하지만 분명한건, 이게 죄다 반토막나도 계속 글을 쓸 거라는 점입니다.
    쓰신 글을 보니, 이미 아이디어와 그것을 잇는 필력은 충분하고도 넘치십니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미친척하고 방향을 확 틀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처음에 글을 썼던 목적을 생각해보시고 부디 좋은 작품을 급하게
    창고에 넣어버리는 우는 범하시지 않길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2 호모나랜스
    작성일
    14.09.13 21:31
    No. 9

    아아, 저도 현재 비슷하지만 다른 슬럼프를 겪고 있는데…… 크윽 격한 공감이 몰려온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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