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 타닥
불타고 있는 마을에서 칠흑을 꼬아만든 듯한 흑발의 미남자가 검은 운무에 둘러쌓여 홀로 오롯이 떠올라있다. 같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빨려들 것 같이 매혹적인 눈동자가 오만하게 대지를 내려다본다. 그가 바로 마왕, 북풍과 혹한을 다스리는 지옥의 군주!
하지만 불타오르는 마을에는 또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마왕과 같은 검은 머리칼, 하지만 분위기가 다르다. 마왕이 순수한 악惡의 결정체라면 이 쪽은 마치 신의 사자와도 같은 신성함을 띠고 있다. 그의 증거로, 몸에는 대지와 풍요의 여신 올로와쥬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상징하는 새하얀 갑주가 그를 검은 운무에서도,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지켜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다. 마왕을 향해 분노를 불태우며 수많은 전장을 넘어서 마음만큼은 검과 같이 정련되었지만 아직 몸은 그렇지 않다. 청년, 아니 소년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한 자루의 검을 빼낸다. 그것은 신검 엑스칼리버. 여신 올로와쥬의 아바타를 상징하는 신성의 검!
소년이 외친다.
“……마·왕!”
그것은 소년의 앳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음성이였다. 마치 지저의 악귀가 바로 올라온듯 분노로 점철된 목소리. 찰나의 순간 그의 검이 마왕에게로 뻗어나갔다─
「당신이 나의 칼집이였군요」
「이제부터 그대가 소드 마스터이다」
「몸은 검으로 되어있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상념.
그가 바랬던, 그토록 원했던 이상의 구현화.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서, 이 손으로 저 녀석을 쓰러뜨린다!!
「빛이여어어어─!!」
콰아아아아아앙!!!
강대한 충격파가 지상을 휩쓸었다. 고도로 응축된 신성력은 마치 오러와도 같은, 혹은 그 이상에 달하는 파괴력을 일으키며 대지에 운석이 충돌한 것과 같이 작은 크레이터를 만들어냈다. 용사는 확신했다.
드디어, 드디어!!
“후후후. 이르군, 용사.”
하지만, 그것은 단지 섣부른 판단이였을까.
짙은 먼지가 바람에 날려가며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검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마왕이 모습을 들어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나인 써클 궁극의 마법, 수없이 봐왔던 지옥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럼.”
불길이 용사에게로 향한다.
압도적인 암흑의 마력은 여신이 부여한 절대적인 방어와, 불사력조차 무력하게 만든다.
“잿더미가 되어라.”
불타오르는 용사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친 것은.
벌써 365번째로 본 하얗게 웃는 마왕의 모습이였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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