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
07.12.02 00:54
조회
535

판타지 소설 속의 술 이야기, 그 두 번째.

지난주에 판타지 소설 속의 술 이야기를 올렸던 작자作者가 다시 한 번 인사드립니다.

원래 이 ‘판타지 소설 속 술 이야기’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한 회 분량의 잡담으로 계획했습니다만, 지난주에 올린 글에서 다 말하지 못한 내용이 있기에(아마도 알코올이 들어가서 횡설수설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그것을 보충하는 의미에서 한 편 더 올려 봅니다. 덕분에 제 글이 예정에도 없던 2부작 기획연재물이 되어버리는-제 글 솜씨에 비추어보아 어쩌면 재앙에 가까운-일이 벌어졌습니다만, 그래도 (물은 일단 엎질러져버리고 말았으니)능력 닿는 대로 열심히 써 보렵니다. 본격적인 잡상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의 글쓰기를 함께 한 아사히 슈퍼드라이(KARAKUCHI~) 500밀리 캔의 도움에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오늘의 잡상에서는 제가 지금까지 읽어 온 판타지 소설 속 술에 대한 설명(내지는 고증이라고 해야 할까요)이 미진하게, 혹은 아쉽게 느껴졌던 부분을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 볼 계획입니다. 판타지 소설의 작가 분들 중에 미성년자 분들이 상당수 계셔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 중의 술에 대한 서술을 읽다 보면 이따금 한숨밖엔 나오지 않을 때가 있어서 말입니다. 두 가지 사례만 거론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일부 소설에 등장하는, 발효주에 대한 묘사 부분입니다. 작가님의 위신을 감안하여 소설 제목을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겠습니다만, 모 소설의 주인공이 귀족 앞에서 수백 년 내지는 천 년 가까이 묵은 포도주를 내놓고, 그 귀족은 ‘얼씨구나 좋다’ 하며 군침을 질질 흘려대는 장면을 보고 한숨을 푹푹 내쉬어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왜 한숨을 내 쉬었는가를 설명하자면, 일단 (제 지식이 참으로 변변찮긴 합니다만)포도주에 대한 잡설 몇 가지를 늘어놓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포도주의 병마개 재료로 사용되는 소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코르크입니다. 최근에는 내용물의 품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플라스틱 마개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의 사람들은 ‘와인병마개’ 하면 전통적인 코르크를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코르크의 소재는 굴참나무의 코르크층입니다. 즉, 식물성의 다공질多孔質 소재라는 뜻이죠. 병입 된 이후에도 포도주가 숙성되는(…이건 코르크 마개를 사용할 경우의 ‘좋은 점’이라고 할 만한 경우고, 관리가 잘못되는 경우 코르크에 곰팡이가 슬어 술이 완전히 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플라스틱 마개가 사용되기 시작한 거죠)까닭이 이것입니다.

…난데없는 코르크 론論을 늘어놓은 이유가 뭐냐고요? 그걸 말씀드리기에 앞서, 잡설을 한 토막 더 늘어놓아보겠습니다.

혹시 보졸레를 한 1년 쯤 묵혀 놨다가 드셔 본 분이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저 같은 경우에는 ‘술이 있으면 바로 마시고 보자!’는 주의라 굳이 묵혀서 마실 필요가 없는 보졸레를 1년까지 방치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만), ‘그렇게 마셔본 분의 소감을 들어보자면’ 맛이 참으로 끔찍하다고 합니다. 보졸레를 만드는 포도 품종 자체가 장기간의 숙성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그나마 보졸레를 마시면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한 맛이라거나 하는 것들도 모조리 사라져버려 맛이 굉장히 좋지 못하다더군요.

한편, 장기 숙성을 견디기에 적합한 품종의 포도로 만들어진 와인의 경우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십 년이 지나야만 마시기 적당할 정도로 숙성이 된다고 합니다.

…하여튼, 위와 같이 구구절절한 잡설을 늘어놓은 까닭은 전적으로 몇 가지 사실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첫째로, 포도주의 코르크는 통기성이 있는 소재라는 것, 둘째로, 앞서 제시된 이유로 병입甁入 된 상태에서도 포도주의 숙성은 진행된다는 것, 셋째로, 포도주(뿐만이 아니라 다른 술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는 마시기 적당한 시기가 있다(지나치게 숙성되면 오히려 맛이 떨어진다), 정도 되겠습니다.

술은 묵을수록 맛있어집니다. 적어도 발효주에 관한 한, 이건 일반론으로 받아들여도 좋아요. 하지만 일반론을 적용하는 것에도 정도는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수백 년 묵은 술이란 물건은 수집용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결코 마실 물건은 아닙니다.

둘째 사례는, 등장인물들의 주량에 관한 부분입니다. 소설적 과장이 섞인 부분 내지는 등장인물의 성격(남자답다, 호탕하다, 기타 등등 ‘술 잘 마시는 사람’ 하면 보통 떠올리게 마련인 성격적 특성이 있죠)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서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그야말로 술고래’들이 소설에는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내공(또는 마나)으로 술기운을 몰아내는 고수들의 경우에는 주량이 어느 정도 납득되는 면이 있지만, 그냥 맨몸(그야말로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말술을 때려 붓는 경우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이번에도 작가분의 위신을 생각하여 실명은 일체 공개하지 않겠습니다만, 모 소설에서 ‘사람 한둘 정도는 우습게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 사이즈의 술통을 비우고 ‘만취상태에서 뻗어버리는’ 용병대장(물론 마나의 M자와도 상관없는, 그저 ‘단련되었을 뿐인 인간’입니다)을 보고서 떠올려본 의문입니다.

요즈음은 뜸한 편입니다만 예전에는 매년 대학교 입학 시즌만 되면 뉴스에서는 ‘신입생 환영회 도중 술을 지나치게 마셔서 사망’ 이라는 기사가 빠지지 않고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마셔서 죽는’ 어이없는 사건사고. 이런 이야기들을 익히 들어왔던지라 궁금해지더군요. 그렇게 말술을 퍼부어대다가는 정말 죽어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알코올의 치사량이 (개인차가 있지만)보통 체중 1킬로그램 당 6.3밀리리터 정도라는 데이터를 가지고 계산을 해 보았습니다. 알코올을 440~450밀리리터 정도 섭취하면 체중 70킬로그램의 성인을 ‘저 멀고 먼 나라’로 영영 보내버릴 수 있다고 나오더군요. 도수 5도의 맥주로 따지면 9천 밀리리터, 그러니까 9리터 정도입니다. 도수 12도의 와인으로는 3.5리터 정도.

[작자의 뱀 발: 대부분의 판타지가 중세 중반기쯤(‘장원제도, 봉건영주, 아직은 약한 왕권’이라고 하면 바로 이 시대겠지요)을 시대배경으로 하고 있으므로, 증류주는 고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브랜디는 13세기, 위스키도 십자군전쟁으로 동방에서 증류기술이 유입된 뒤부터 생산이 시작되었다고 하니까요.]

[또다시 작자의 뱀 발: 위에 언급된 ‘맥주 9리터’라는 수치는 정말이지 엄청난 겁니다. 물만 10리터 정도 마셔도 체내의 전해질 균형이 붕괴되어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물론 이 ‘말도 안 되는 수치’에 대해서는 후술後述하겠습니다만.]

…의외로 양이 엄청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위의 수치는 어디까지나 ‘치사량’을 기준으로 뽑아낸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이 정도를 마시면 용쓰는 재주가 있어도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뜻 밖에는 안 되죠. 알코올의 섭취로 기인하는 인체의 변화양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혈중알코올농도를 구하는 편이 좋습니다.

[<혈중알코올농도>=<주류의 알코올 농도(%)>*<음주량(mL)>*0.8/<체중(kg)>*1000*0.6]

체중 70킬로그램의 성인이 도수 5도의 맥주 9리터를 마셨을 경우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대략 0.85%입니다. 호흡부전으로 사망할 수 있는 혈중알코올농도 0.60%에 도달하는 데는 6리터 정도의 맥주면 충분하고, 5리터면 깊은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으며, 4리터면 의식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도수가 더 높은 술을 마시면 변화 양상은 더욱 극적으로 변하겠죠. 고로, 그 ‘실명을 밝힐 수 없는 모 소설’에 나온 정도의 말술을 마셨다면 절대로 ‘만취상태에서 혼절하는 정도’ 선에서 끝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물론, 등장인물의 간 기능이 실로 몬스터 급이고 신체가 강건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라서 그 정도 알코올 섭취는 감당할 수도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시대배경을 따져봐라. 그 시대 술의 도수는 현대보다 낮았다’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술을 대량(누가 뭐래도 多量이 아니고, 大量입니다)으로 마실 경우, 알코올보다는 오히려 술에 포함된 불순물이 더 큰 문제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게다가 그 문제는 ‘중세’라는 시대 배경을 감안하게 되면 더욱 심각해집니다). 이는 비단 맥주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고, 증류과정을 거치지 않는 (거의 모든)발효주에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미생물이 당분을 원료로 술을 만들어내는 알코올발효 과정의 산물은-당연한 얘기지만-에탄올, 그러니까 식용 가능한 알코올입니다. 하지만 ‘알코올 발효’는 결코 ‘에탄올 발효’가 아닙니다. 발효과정에서 소량의 불순물이 생성되기 때문인데, 이 불순물의 정체는 메탄올입니다.

[다시 작자의 뱀 발: 이른바 ‘공업용 알코올’이라고도 부르는 메탄올은, 체내에서 산화하여 포름알데히드(…영화 ‘괴물’에서는, 미군기지에서 방류된 포르말린(포름알데히드 희석용액)이 평범한 민물고기를 괴물로 바꿔버립니다)가 되어 신경 손상, 실명, 사망 등, 듣기만 해도 불쾌해지는 갖가지 부작용들을 일으킵니다. 덧붙이자면 술을 마시고 지독한 숙취를 겪었다던가, 필름이 끊어졌다거나 하는 일들은 에탄올보다는 메탄올 때문이라는군요.

불순물로 포함된 메탄올의 존재는 술의 증류 시에 확인됩니다. 에탄올의 끓는점은 섭씨 78도, 물의 끓는점은 100도입니다만, 실제로 술을 끓여보면 70도 아래에서부터 끓기 시작합니다. 메탄올의 끓는점이 65도 정도로 낮기 때문이죠. 증류주를 만들 때 맨 처음 끓어 나온 액체를 사용하지 않고 버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대에 와서는 기계화 된 양조시설(그러니까 ‘술 공장’)에서 정밀한 통제 하에 발효과정이 진행되므로 품질이 균일하고 불순물이 적은 주류가 생산되지만(그럼에도 발효주인 이상 메탄올은 미량이나마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 옛날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한담 란에 올린 ‘최고의 맥주를 찾아서’라는 글(여기 올릴 때의 제목은 ‘글쓰기와 음주의 상관관계’였습니다만)에 어떤 분이 댓글로 ‘외국에서 거주할 때 농부들이 손수 담근 맥주를 마셔 봤는데 맛이 오묘하고 숙취가 엄청났다’는 경험담을 남겨 주신 적이 있죠. 그런 게 ‘옛날 술’이라고 합니다. 이런 술을 대량으로 퍼마시면,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술을 마실 때는 목숨 아까운 줄 알고 작작 좀 퍼 마시자’ 정도 될까요.

이런저런 두서없는 잡담을 두드리다보니 어느새 맥주가 다 떨어진 고로, 오늘의 잡설은 이쯤에서 줄일까 합니다(…이러다가 ‘술 이야기 제3탄’을 쓰게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말도 한잔 술과 함께 즐겁게 보내시라는 인사를 끝으로, 저는 이만 자러 가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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