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1탄 안목에 대하여 에 이어 두번째 컬럼입니다.
글 솜씨/재능 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출판된, 혹은 연재되고 있는 어떤 글들을 보며 ‘글 솜씨가 대단하다.’ ‘저 사람은 글에 대한 재능이 대단하다.’라고 말/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끔씩은 ‘저런 솜씨로 어떻게 출판을 한거지?’ ‘저 정도는 나도 쓸 것 같은데 인기가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하는 말/생각합니다.
과연 글 솜씨, 글에 대한 재능은 무엇일까요?
저는 전문적인건 잘 모르겠습니다.
글 한편에 기승전결, 혹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혹은 서론 본론 결론 등의 구조가 제대로 드러나는 글을 솜씨있게 잘 썼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소재들을 들고오거나, 많은 분량의 글을 꾸준히 연재하는 것을 재주가 있다고 봐야 할까요?
사실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고 이것도 개개인이 의견이 분분할 것입니다.
그 개개인의 의견이 분분할 부분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해서, 개개인의 의견이 분분한 분모를 제외하고, 저는 여기서 글 솜씨란 무엇인가, 누구나 보편적으로 동의 할 만한 내용과, 글에 대한 재능이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하는 정도의 논의를 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글 솜씨란 무엇일까요?
장르문학에 한정적일 수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글 솜씨는 눈에 밟혀 넘어가지 못하는 이상한 문구 없이 읽을 때 막힘 없이 글을 쓸 줄 아는 것이 솜씨있는 글 실력이라고 보는 것이 그 첫번째 입니다.
가령, 복문이나 오타 등으로 글을 읽다가 자꾸 위로가서 다시 보게 되고, 이게 맞나 안맞나 생각하게 하는 글을 쓰면 글 솜씨가 없다고 봐야합니다. 반대로 그런게 잘 발견되지 않으면 솜씨있게 글을 쓴다고 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읽기 쉽게 글을 쓸 줄 아는게 글 솜씨가 있는겁니다.
두번째로는 꾸준하게 일정 분량을 위의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일정 시간에 써낼 수 있는 성실함이 바로 글 솜씨라고 봅니다.
문피아 내에서 하는 연참대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끔씩 어떤 분들은 하루 최다 분량인 1.2만자를 초과하여 글을 쓰십니다.
연참대전이 아니라 하더라도 비축분 없이 그만큼의 글을 쓰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품 모두가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것은 아닙니다.
위에 첫번째로 말한 조건, 읽기 쉽게 글을 쓰지 못한 작품들은 연참대전에서 1등을 하더라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적었더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성실하긴 하지만, 우직하다기보단 무지한 성실함입니다.
항상 일정 글자수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성실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그 글의 내용이 독자들의 외면을 받는다는 것은 발전의 여지가 있다는 것인데, 글 쓰는 것에만 집중하고 독자들의 반응을 외면하는 것은 스스로 발전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발전하고자 노력하며 성실히 일정시간에 일정 분량의 글을 독자들이 외면하지 않을 정도로 써내는 것이 바로 글 솜씨라고 하겠습니다.
많은 글 솜씨에 대한 이야기가 있겠지만 논란이 많을 것은 위에서 제하기로 했고, 이것이 장르 문학 관련으로 한정지어지기 때문에, 이 두 가지야 말로 장르문학으로 돈을 벌려는 작가들이라면 모두에게 필요한 글 솜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읽기 쉬우면서 퀄리티 있는 글을 꾸준하게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장르문학 작가에게 필요한 ‘글 솜씨’가 아닐까 하는 말입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를 더 자세히 하자면,
읽기가 쉬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르문학에 한정된 이야기지만(순수문학이니 뭐니 나누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그쪽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이쪽에 대해서는 나름 조금은 아니까, 장르문학에만 한정 한다고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독자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장르문학의 독자분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흔히들 ‘킬링 타임(시간 때우기)’에 대해 만이들 이야기 합니다. 작가로서 내 글이 ‘겨우 시간이나 때우는 글 이라니’하면서 작부심(작가의 자부심의 준말)을 부리게 되긴 하지만 장르 문학에 목숨걸고 글을 읽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여가’시간을 활용하며 자신의 ‘여가’를 즐기기 위해 남는 시간을 투자해 책을 읽지, 이 소설을 파고들어서 뭔가 심오한 무엇인가를 밝혀내고 그 속에서 인생의 답을 찾아 참오하기 위한 목적에서 장르문학 소설을 접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글은 쉬워야 합니다.
작가가 무엇을 보여줄 것이냐도 중요하지만, 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그 속에 심오한 무엇인가를 밝혀내고 인생의 답을 찾는 것들을 참오 할 화두를 넣거나 한다고 해도 작가의 재량입니다. 다만 그것이 ‘읽기 쉽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아아 이런것이?’하도록, 누군가는 알아차리던, 누군가는 못 알아차리던, 읽는 사람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 그런 가벼운 글을 써야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글을 보니까요.
장르문학은 독자층이 다양하고 대중적입니다. 상업적인 성향이 강하다고도 합니다. 널리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을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니 글을 읽기 쉽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퀄리티 있는 글은 대채 무엇일까요?
오타나 비문이 없어야 한다. 사실 이건 기본의 기본입니다.(물론 그 기본이 잘 안지켜지기도 합니다. 본인도 조금 위태위태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사실, ‘재미’입니다.
재미가 없으면 퀄리티가 없습니다.
재미라는 것은 ‘하하, 호호’하는 웃긴것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읽을 메리트, 뭔가 내가 만족할 감정적인 무엇인가를 전달해 줄 수 있는 글이 재미있는 글이라는 겁니다.
많은 부분에서 이 재미는 ‘대리만족’의 성향이 강한것이 장르 문학의 특징입니다. 현실을 반영한다고 해서 장르문학에 현실만을 가득하게 한다면, 그것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어차피 글을 읽지 않아도 현실이 그러한데’ 공감이 간다기 보다는 짜증이 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현실을 넣더라도 공감이 가도록하면서, 그 상황이 뭔가 다른걸 유발하거나(재미, 사건 등) 현실이 아닌 이런곳에서도 이런일이 있을까? 하면서 호기심을 갖게 하는 정도로 해야지, 그냥 현실을 툭. 하고 끝나버리면, 참 허무한 글이 될것입니다. 그런 글은 재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외면받습니다.
재미가 있어야 외면받지 않고, 외면받지 않는 글을 우리는 퀄리티 있는 글이라고 합니다. 문법적으로, 법칙적으로 완벽한 글을 퀄리티 있다고 하지 않고요.
꾸준하게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말미에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작가의 생존에 대한 논의입니다.
독자분들은 사실 작가들을 잘 모릅니다.
작가분들은 기계처럼 고민없이 글을 써서 책으로 출판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글을 보시는 독자 분들도 자기가 글을 써보기도 해서 얼마나 어려운가 아시는 분들도 있겠고, 작가 지망 혹은 현직 작가로서 절대 작가가 기계처럼 고민없이 글을 쓴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전업작가의 길을 걸으며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 능력이 꼭 필요합니다.
위에서 퀄리티를 말했다면, 이번엔 퀀티티의 개념이겠군요.(질/양)
그나마 유료연재/이북시장의 확장 등으로 인해 작가들의 대우/처우/생활이 많이 개선되기는 하였지만, 이는 일부 상위 클래스를 이야기 함이고, 사실 많은 분들은 이 상위 클래스에 속하지 못합니다. 쓰는 족족 터지지도 않고, 일단 써놓고 돈을 받으면 어떻게든 완결을 지어야 하는데다가, 출판을 하게되면 그렇게 많은 인세를 보장받지 못합니다.
이에 대한 자구책이 ‘다작’과 ‘빠른연재’입니다.
어떤 분들은 동시에 두어 작품을 쓰시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글을 빠르게 쓰십니다. 즉 많은 분량으로 연재하시거나, 많은 분량을 빠르게 연재하십니다.
그리고 이게 보편화 되었기 때문에 다른 독자님들도 모든 작가분들이 이렇게 하실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비교가 교육이나 사람을 대할 때 가장 나쁘다고 하지만, 우리는 비교에 익숙합니다. 우리 주변엔 항상 엄친딸과 엄친아가 존재하니까요.(ㅜ.ㅠ) 그래서 ‘저 작가는 이렇게 하는데 왜 당신은 못하지? 당신은 저 작가보다 못한 작가인가?’하는 비교와 의문을 독자분들은 항상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돈을 벌려면, 그리고 독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키려면 꾸준히 많이 연재하는 것은 이제는 필수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 글 재능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재능(才能)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이른다.
재능이란 선천적인 재능과 후천적인 재능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저는 선천적 재능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여기는 매우 주관적인 주장이라 의견이 분분하겠군요.)
저는 환경론자입니다.
물론 신체적인 재능, 가령 타이프 치기 좋은 손을 타고나면서 부터 가졌다던가 눈이 좋다던가 뭐 피지컬적인 부문에서의 차이는 어느정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멘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 재능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즉 글 쓰는 재능은 후천적으로 만들어 진다는 겁니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어릴 때 부터 언어에 남달랐다는 것을 가끔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그 태어나 자라온 환경과 엄마 뱃속에서부터의 환경이나 어머니의 교육에 의해 여러가지 환경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주변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쓰는 것에 흥미를 갖게 하고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것들을 접하게 유도했다면 분명 출발선상, 가령 인터넷에 글을 연재 하기 시작한 때 부터 다른 사람들보다 더 좋은 글을 쓸 수는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교육을 어떻게 받았느냐, 인문계냐 실업계냐, 문과냐 이과냐, 전공이 뭐냐에 따라 좋은 글을 쓸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저도 그랬지만, 많은 분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쓰다보면 나아집니다.’
재능도 쓰다보면 늘어납니다.
어미 배를 갖 나온 아이에게 청룡언월도를 쥐어주자 적장을 베고와서 따듯한 술을 마실 수 있는 능력을 기대 할 수는 없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어느 시점에서 쓰기 시작했느냐에 따라 재능이 있고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어느 순간 도퇴된 사람들을 늦게 시작한 사람이 따라잡을 때도 있습니다.
글의 기본인 말을 배울 때 우리는 어땠습니까?
응애 응애에서, 아바, 어마, 엄마, 아빠, 하부지 하무니 할아버지 할머니...
점점 인간은 나이 먹으며 진화합니다. 말도 같이 진화합니다.
어릴 때 무슨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그대로 전하라고 해도 어린아이들은 조리있지 못하게 그래서, 내가 뭐했는데, 뭐더라, 그러니까... 헤매고 헤매이며 힘겹게 힘겹게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나이가 먹으면 남이 들려준 우스운 이야기도 곧잘 전하고, 귀신 이야기도 곧잘 전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문제집좀 사게 돈을 달라며 거짓말도 참 조리있게 잘합니다.
글에 대한 재능도 그렇습니다.
환경에 따라 처음에 선천적으로 주어진 재능이라고 보일 수 있는 것들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후천적인 노력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재능은 발전해 나갑니다.
이 말 하는게 별로 좋지는 않지만, 장르문학 독자가 10만이면, 작가가 10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독자가 되지만, 독자가 동시에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지요.
하지만 실제 독자가 글을 써 작가가 되어 성공하는 경우는 그 10만 중 100이 될까 말까입니다.
그 이유는 누군가는 글을 쓰려다가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재능이 없어’ ‘나는 보는건 괜찮은데 쓰는 쪽으로는 재능이 없어’ ‘쓸 수는 있지만, 귀찮아.’ ‘어차피 성공한다고 해도 별로 돈도 못벌잖아.’ 각종 이유를 들어 포기하고, 혹은 반응이 없어 사라집니다.
각종 이유를 들어 포기하는것은 정말 글을 쓰려는 의지와 각오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응이 없어서 사라지는 것은, 반응이 없는 이유를 분석하고 자신을 발전하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의지와, 노력에 따라 재능이 결정됩니다.
글에 대한 재능은 없습니다.
다만 글을 쓰려는 의지와, 글을 발전시키려는 노력만이 있을 뿐이지요.
이상 컬럼을 마칩니다.(밖에서 누가 공산주의가 어쩌구 하는 이상한 방송을 하면서 차를 달려서 집중이 전혀 안되네요.)
(솔직히 말해서 졸리면 컬럼이 쓰고 싶어지네요... 그래서 컬럼 타이틀 달고 쓴 두 컬럼이 모두 ... 음... 읽기 쉽지 않고, 퀄리티 없네요... ㅋ)
p.s
마지막으로 전업작가를 준비하는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솜씨나 재능이 없는게 아니라, 아직 그만큼 덜 쓰시고 덜 발전했기 때문이니 쓰다보면 나아진다는 아주 원론적인 조언을 해드리겠습니다.
다만, 전업작가의 길을 준비하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시도조차 해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과연 내가 다른 일을 하는 것 보다 전업작가로서 살아가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가?’라는 현실적인 부분을 고민해보십시오.
저도 그랬지만, 주변에 보면 좀 절박한 분들이 많습니다.
‘이것 밖에는 없어.’라는 마음으로 글에만 매달리면, 여유도 없고 글도 그러합니다. 독자들의 반응 하나 하나에 일희 일비 하고는 하죠.
하지만 ‘이게 더 나아.’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분들은 다른 것도 할 수 있지만, 이게 더 돈이 되고, 혹은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글을 쓰시기 때문에 자신을 관리하고 글에 더 집중 할 수 있게 됩니다.
절박함이 뭔가를 낳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절박함이 자신을 옥죄어 오기도 합니다.
글을 쓰다보니 전업으로도 괜찮아 보이고, 실제로도 수익이 올라오니 하는거야 상관 없지만... 대부분 힘들게 살아갑니다. 대우도 처우도 좋지 않고, 위에도 말했지만 독자분들은 작가가 기계인지 압니다. ㅠ.ㅠ
전업은 신중하게 생각하십시오.
절박함을 버리십시오.
끝으로...
다음 컬럼은 ‘명성’의 정채 ‘명성’의 허와실에 관련된 컬럼을 쓸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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