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 대전의 한 가운에 트립한 한국이란 소재는 마이너하지만 종종 다뤄지곤 하던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소설은 중심을 잡기가 보통 어려운게 아닙니다.
당장 21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간다면 국방, 외교, 통신, 원자재 수급부터 시작해서 질병문제 식량문제 등 21세기에서 전혀 신경쓰지 않던 수 많은 문제들이 우리를 반겨줄 겁니다. 안그래도 고증을 빡빡하게 따지는 대체역사라는 장르에서 여간 까다로운 소재가 아닐 수 없죠.
그럼에도 이런 어려운 소재에 도전한 작가분께 우선 경의를 표합니다.
소설이 시작되며 21세기의 남한은 1942년으로 트립하게 됩니다. 외국인들은 배제되고 남한에 살던 한국 국적을 가진사람들과 남한의 영토가 트립해 온 것 으로 추정됩니다. 트립과 동시에 한국은 일단 준전시 체제로 돌입합니다. 동시에 당면한 식량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배급제로 전환하고 최우선적으로 석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빠르게 외교, 무역라인을 뚫기위해 고군분투하죠.
초반부에서 잡스러운 내용은 쳐내고 핵심적인 행정부의 활동만을 그리며 전개한 초반서사에서 속도감과 디테일함을 동시에 추구한 작가의 고민이 돋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전개를 선택했기 때문에 시점전환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 초반부에 글에 몰입하기 힘들다는 단점도 뒤따라오죠.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지만 저는 장점이 더 큰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반부에 아직 작품에 몰입하지 못했을 때 부터 김구, 이승만, 박정희 등 1942년의 당대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트립이라는 특수상황에 의해 당장이라도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고 독재국가나 군부정권 때로 회귀할 것 같은 긴장감에 글을 읽기 조금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최신화까지 본 결과 다행히 그정도로 어두운 분위기로 흘러갈 것 같지는 않더군요. 요즘 대역들은 이런 부분에서 주인공의 대전략이나 목표설정을 짚어주는데 이 글에선 그런 부분이 없어서 큰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지 파악하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런부분에서 작품소개나 초반부 서사에서 소설의 방향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배려가 있었다면 더 빠르게 몰입할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밀리터리물을 좋아하진 않아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제가 보기엔 전쟁장면을 제법 잘 쓰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 외교적인 역학관계나 수출로 먹고사는 21세기 한국이 덩그러니 20세기로 떨어져버린 현실을 반영하려고 하신 노력도 돋보였고요. 대한민국의 이야기지만 국민의 이야기는 거의 없고 행정부 위주의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에 이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덕분에 빠른 전개가 가능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점으로 느낀 부분은 군상극이기 때문에 중심인물이 없다는 점. 삼국지물도 종종 보기 때문에 군상극이 완전 낯설진 않은데 다른 대체역사나 삼국지와 달리 캐릭터들이 어디서 들어본 이름들이 아니니 전개를 파악하거나 몰입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더군요. 전체적으로 웹소설 연재보다는 단행본 연재에서 더 장점이 부각될것 같은 글이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대체역사물을 좋아하고 단점이나 아쉬운 점으로 꼽은 부분들을 특별히 싫어하지 않는다면 한번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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