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이 글을 정말 살리고 싶은데,,, 성적이 너무 받쳐주질 않네요.."라고까지 하면, 무슨 노력이라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재미없게 보고 있었으면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시대 근현대의 어느 대목을 가져와 그것의 제국주의적 기조는 유지하되, 이전의 지배 체제(전근대)의 전복을 가능하게 했었던ㅡ근대에 이르러 대량생산과 또 대량살상까지를 가능하게 했던 모든 과학적 계기들을 '마기(Magi)/마법'으로 투사한다는 게 이 소설의 기본 발상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의 실제 역사에서 개화는 서구 문물이라는 표현으로 통칭된 서양식 '합리성'(이것을 저는 방금 '과학'이라고 읽었습니다) 일반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이곳에서 개화는 '마기'의 적성 여부에 따릅니다. 전자가 더 정신적이고 또 수행적인 측면을 강조했다면, 후자는 육체적이고 즉물적입니다. 이 차이가 몹시 큽니다. 실제 역사에서의 개화는 그래도 정치적 소신으로 간주될 여지가 있었으나, <개화기의 소드마스터>에서의 개화는 마법사로서의 각성을 뜻하게 되는 바 입신양명의 필수불가결한 일이 되어버리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사대부 집안의 귀한 장손으로, 그런데 '불용자'입니다(소설에 의하면 불용자는 '불효자'보다 못하답디다...). 어감에서 이미 눈치 챘겠지만, 그래요. 못씁니다. 저잣거리 중년 여인도 마기로 인력거를 모는 마당에요. 그런데 학궁 입궁이라는 이벤트를 눈 앞에 두고 있고, 성정상 회피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를 돌파할 수단으로 주어지는 것이 '무공'입니다. 쉽게 주어지는 건 아닙니다. 호수에서 물에 빠진 어린 뱃사공을 구하려다 '전생각성'을 하게 된 것이 계기였으며, 무공 수련의 기억들은 파편적일 뿐이라서 꾸준한 담금질을 통해야만 조금 나아갈 따름.
까지만 소개하면, 마기 없는 마기수련자 이야기라서 아등바등한 왕따 아카데미물 같겠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글쎄요. 자신의 위치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도 있고, 또 꼭 그것만 있는 건 아니구요. 여러모로 봐도, 주인공이 애 같지는 않다는 게 중론입니다. 그건 작품 속도를 조급하게 만들지 않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이 측면에서, 멸시받는 주인공 포지션 때문에 꽤 열 받아하시는 분들이 있어 말씀드리자면, 소설 구성 상 소위 사이다라는 게 '당장' 필요할까요? 또 저는 이게 도리어 작가님의 영리함을 방증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빌드업이 설득력을 가지고 차분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아주 강렬한 해소는 없더라도 뭔가 조금씩은 풀어내주고 있기 때문에 조갈나는 거라서요. 그리고 신규 독자 유입을 위해 누설드립니다만, 사이다는 아주 크게 한 방 준비되어 있습니다(찡긋). 그래서 지금 독자들은 모두 다음 회차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여기에 한가지 더. 직접 읽어보시길 바라는 이유에, 제가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함께 떠올렸다는 점을 부기하고 싶습니다. 물론 <미스터 션샤인>이 겨냥(식민지배 하의 여러 정체성)하는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만. 아무튼 긍정적인 의미에서요. 이게 과연 저뿐일까 싶네요. 캐릭터들도 그렇고, 이들 사이에서 오가는 톡톡 튀는 대화들도 그렇구요. 정말 애써 쓰셨다는 게 보이는, 정성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스포일러를 방지하고자 이만 줄이겠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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