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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우곡
작성
03.02.02 10:17
조회
2,910

  2년 전 아직 한림의 홈페이지가 살아 있고, 작가 자신이 게시판에 올린 독자들의 글에 대해 일일이 답변을 해 주던 시절, 나는 당돌하게 한림에게 몇 가지 비판의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글 중 하나에서 한림의 글이 지나치게 작가 자신의 이념을 소설에 투영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용을 적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나의  비판은 적절한 예와 논리를 갖춘 것이기 보다는 다소 막연하고, 두루뭉수리한 그야말로 비난에 가까운 근거가 박약한 것이었다. 솔직히 그의 글에 나타나는 불교,성리학,도교 등에 대한 과도한 주석에 대한 반감에서 기인한 것이었리라.

  

또한, 나는 내가 좋아하는 키에슬롭스키의 작품들 가운데서, 감독이 특정 이념에 대한 강박 아래 만든 [십계]연작이나 [삼색]연작 보다, 자유롭게 작가의  형이상학적 사유를 상징적으로 승화시킨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 더 나은 작품이라는 내 자신의 관점을 표명함으로써 한림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글도 썼다. 그 글에 대해 한림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휠씬 강하게 반응을 보였는 데, 자신은 [십계]연작이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작가는 자신의 작품의 평소 작가 자신의 지론을 남김없이 펼칠 자유를 가진다고 논지의 글로써 답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에 와서, 한림의 작품 자체로 논쟁을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작가 자신의 이념적 편향이 비교적 덜한 대신,무협적인 서사의 다채로움이 돋보이는 [소요장강기]를 [신탐무]보다 우위에 놓을 것이다. 반면, 작가 자신이라면 어떨까? 오늘 다시 [신탐무]를 읽고 난 후, 느낀 점은 한림이 아마, 자신의 역사와 인간에 대한 주제의식을 가장 강렬하게 표출시킨 [신탐무]를 우위에 놓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신탐무]는 작가 자신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미 한림이 높이 평가하고 있는 김용이 [천룡팔부]라는 제목으로소설을 내놓았기에 어쩔 수 없이 쓰는 제목이고, 실제적으로 이 작품은 [천룡팔부]라 불려야 한다고 했다. [천룡팔부]는 그 만큼 소재나 서사의 전개 자체가 불교에 기반하고 있다. 일전에 나는 이 [천룡팔부]가 불법을 수호하는 8개의 신을 모두 형상하기 위해, 나열적으로 구성될 수 밖에 없는 약점을 가진다는 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오늘 다시 이 소설을 읽고 느낀 점은 여기에서 불교적 소재의 차용은 다분히, 유교, 특히 주자학의 비판을 위한 안티테제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림은 여기에서 철저하게 이른바 대체역사라는 김용식의 중화주의적 해석으로서의 무협을 뒤집고 있다. 즉, 김용의 무협이 자신의 중화주의적 역사의 대한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실제의 역사에서 소재를 가져오면서, 중화주의적 관점에 어긋나는 사실들을 중화주의적 허구로 바꾸어 놓는다면([녹정기]에서의 건륭제), 한림은 오히려, 중화의 역사에서 그래도 가장 최근에 자신들의 영화라  자랑할만한 명대 영락제 연간의 일들을 주변부 민족의 입장에서 해체시켜 나가고 있다. 그것도 대담하게 명나라 황실의 후손인 주유운이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이다.

  한림은 평소, 무협에 俠이라는 요소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당시, 무협은 하나의 인간탐구로서,협이라는 요소가 빠지더라도 그러니까,소설이라는 쟝르의 하위 쟝르로서, 그 서사적 성격만 유지된다면 어떠한 주제여도 무방하다는 반론을 제기한 적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도 한림은 극히 회의적인 재반론을 내놓은 적이 있다. 실제, 그는  이 소설에서 소림의 덕진이라는 고승을 통해서, 불교라는 이미 형식화되고 제도화된 종교가 자신의 본래적 이념을 버리고, 그 제도의 존속에 의미를 둘 때, 가져오는 비극에 대해서도 매서운 비판을 행하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을 소재나 제목에 현혹돼 불교사상을 설파한 소설로 보는 것도 잘못된 일일 것이다.  반면 그는 협이라는 그 자신의 무협의 핵심을 결코 놓지 않고 있다. 그 俠이 오히려, 김용의 소설과 같은 협소한 중화주의를 통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보다 보편적인 이념으로서 협은 역사에 있어 결국 중화주의를 뒷받침하는 희생양으로 서술되는 주변부 민족의 시선을 통해서야만, 그 보편성이 드러나리라 믿은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중화주의에 대한 비판은 천하를 하늘로부터 하나의 위계로 줄을 세우고, 인간을 황제로부터,각 민족을 한족으로부터,하위의 위계로 구분하는 인위적 질서를 정당화한 주자학에 대한 비판이 핵심적인 것이다.

  때문에, 주자학의 이념에 따라, 황제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 양대인이나 왕비비가 자신들의 이념의 희생양이 되고, 오히려 백련교라는  민중의 종교에 근거해서, 이 종교의 보존을 위해 주인공의 안티-프로타고니스트로 등장한 한영선이라는 인물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통상적인 무협지의 선악의 이중법에 의한다면, 당연히 자신의 야심을 위해, 엄청난 음모를 꾸미는 한영선이라는 인물은 악의 축이라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한림은 이러한 표면적으로 보기엔 악으로 규정당한 인물의 내면의 형성단계를 [천룡기]라는 액자적인 전기를 통해 단편적으로 계속 보여 주면서, 유교적 시선에 의해 악으로 규정당한 이들에 대한, 시선교정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과격한 중화적 주자학에 대한 비판은 유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악의 세력으로 역사에서 규정당해 온 [환관]세력에 대한 일종의  대체역사에까지 이른다. 즉, 역사를 기록하는 그리하여 종국에는 항상 승자가 되는 유학자들에 의해, 한대의 십상시 이래로 줄곧, 황제의 총명을 흐리고, 결국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원흉으로 지목되어 온 환관세력이 실제는 역사에 서술된 것보다 폐해가 심각하지 않으며, 실제 명나라와 더 나아가 종주국인 중국보다 더 심하게 그 폐해가 뿌리박은 조선의 멸망의 원인은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를 부정하고,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은 대신, 사대부들 자신의 이해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어 온 주자학이 바로 그 일차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대신 조대인으로 대표되는 환관세력은 오히려, 이들 위선적인 황제와 사대부세력에 대한 민중의 울분과 복수를 대신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제까지 나는 수많은 무협을 읽으면서, 과연 한국적 무협이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에 대해서 항상 회의를 품어 왔다. 얼마간 나도는 고구려나 발해를 배경으로 한 무협들이 과연 단지 장소적 배경을 우리 나라로 하였다하여 한국적 무협이라 할 수 있을까하는 점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그러한 장소적 배경의 소설들을 쓴 작가들의 역량 문제를 차치하고 라도,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가 배경이거나 주인공인 한국인이라 하여 한국적 무협 말하는 것은 지극히 피상적이고,즉자적인 인식이다. 중국무협에 있는 인물설정,서사전개,주제의식을 단지 표피만 바꾼 채,내면적으로 이러한 것에 대한 반성이 없이 씌여진 모방이 결코 한국적 무협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재일의 [쟁선계]나 좌백의 [대도오]로 대표되는 신무협이 보여주는 고대적 배경 속에 고뇌하는 현대적이고 실존적 인물의 탐구가 한 가지 대안이 될 수 있고, 앞으로도 대다수의 작품이 이러한 경향 아래 쓰여질  가능성이 크다. 대신 여기에는 역사와 인간의 치열한 대립과 긴장, 사회 속에 놓여진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상당 부분 희석화되는 약점이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무협이라는 배경 자체가 어느 정도 현실성과 유리된 환상적 공간이라는 사실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역사나 배경이 아닌 중국의 토양이라는 태생적 한계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림의 작품들이 나오기 5,6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한 신무협의 이러한 작품들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고, 위에 언급한 한계를 의식해서 , 한림에게도 협이라는 이념보다는 인간탐구라는 소설적 보편성에 의지하는 것이 보다 가능성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론을  내가 제기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한림의 [신탐무]는 한국적 무협이란 어떤 해야하는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협이라는 이념이 중국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닌, 민족을 초월하는 보편적 이념으로,그러면서도,주변부 민족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재해석된 실례를 보여준 소설이 바로 [신탐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서야 2년 전 나의 한림의 대한 비판이 다소 성급한 것이었음을 인정한다.

아쉬운 것은 여전히 [신탐무]의 헐거운 서사구조와 협이라는 주제를 위해 희생된 武에 대한 다소 무리한 설정이다. 일원심법이라는 축적된 내공에 의지하지 않은 자연의 기의 흡수라는 장치는 주인공 주유운이 내공을 잃은 후에, 새로운 고수롤 등장해 한영선을 제거하는 핵심적인 장치이다. 그러나 이 일원심법이라는 그야말로, 손오공의 지팡이같은 존재는 무협이라는 쟝르에서 가정하는 내공에 따른 무공의 고하라는 필수적 설정를 손쉽게 깨드림으로서 이 소설의 서사의 내적인 논리성을 파괴하는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자연에서 흡수하는 기에 한계가 있을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전면적이던가,아니면 불가능하던가의 양자택일의 성격이 부여되어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정교한 해결책의 준비없이 던져진 일원심법은 그간의 무협소설이 구축한 나름대로의 정합성을 무너뜨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주유운이 무공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 지에 대해서, 불분명해지고, 그가 대결에서 벌이는 승패도 계속 별로 석연치 않게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나는 한림이 왜 협이라는 주제의식에는 그토록 충실하면서도, 무라는 서사로서의 무협에 대한 쟝르적 규정에는 이런 느슨함을 허용했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수긍이 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서사구조와 인물 설정과 성격변화, 분석 등의 문제에 관해서 거론하는 것은 나보다 더 눈이 밝은 독자들을 통해서 다루어 졌으면 하는 게 솔직한 내 바램이다.  미진한 이 글이 혹, 훌륭한 글을 쓴 작가에게 누가 되지 않길 바라면 글을 마친다.


Comment ' 3

  • 작성자
    ▦둔저
    작성일
    03.02.02 19:17
    No. 1

    허억!
    대단한 감상글이십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유산천
    작성일
    03.02.03 07:43
    No. 2

    정말 대단한 감상글이네요.

    이정도의 감상을 끌어낸 신탐무의 대단함 역시.....

    한가지 덧붙이자면...

    실제로 무협의 고유 설정인 내공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지만

    만약 건드린다면 일원심법은 당연한 귀결인 듯합니다.

    도교의 초기 경전을 봐도 궁극의 경지를 바람처럼 가벼워서

    구름을 타고 다니는 경지인데

    이건 축공으로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쌓은 것이 전혀 없이

    자연과 상통하는 경계

    누굴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고 거슬리지도 반박하지도 않는

    그 자체로 자연과 합일되는 경계이니..

    아마도 작가의 골수에 박힌 이념일 듯해요. 결코 흔들리지 않는 --\'

    그리고 이건 기존 무협의 내공 설정이 워낙 완강해서이지

    무협을 잠시 벗어나면 하등 손색없는 논리같습니다.

    전통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45 있소
    작성일
    03.02.05 08:34
    No. 3

    훌륭하군요.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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