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안현일
작품명 : 죽어야 번다
출판사 : 디앤씨 미디어
'죽어야 번다'
이거 제목만 보고는 당최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건 머 코믹물이라고 대놓고 써놓은 거 같아서 말입니다.
근데 우연히 추천을 받고 읽어 보았는데, 제 느낌은 이 한마디로 표현될 것 같습니다.
'이게 왜 이런 제목이야! ㅜㅜ'
이건 아무리 봐도 코믹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요즘 나온 소설 중에서 꽤 진중한 축에 든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제목을 이렇게 하니, 코믹을 원하는 분도, 진지한 이야기를 원하는 분도 모두 다 책을 다 선택하지 않을 것 같더군요.
그냥 망작이면 별생각 없이 넘길 텐데, 이건 정말 잘 쓴 글이거든요.
동네 책방에서 반납하더라도 제 돈으로 새로 사면 되기야 하겠지만, 문제는 이렇게 페이스가 안 좋으면 조기 종결의 가능성이 있잖습니까?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사심을 담아 추천의 글을 올립니다.
불량 중년 퇴락 기사의 인생 역전기 같았던 이 책은, 실제로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니 알려는 의지조차 없었던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찾아가는 여행기입니다.
바람나 도망간 아내, 그 아내를 찾아 십여 년을 떠돌다 기사의 상징인 포스도 잃고, 미래를 살아갈 의지도 잃어버린 주인공, 그리고 그런 주인공 덕에 준귀족에서 빈민으로 급락한 생활을 십여 년간 하게 된 아이들, 그리고 그 고난 속에 돌아가신 주인공의 아버지, 주인공의 상황은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는 상황입니다.
거기에 좌절한 주인공은 시간을 탕진합니다. 클럽에 가서 카드를 하며 없는 살림을 더 힘들게만 하며 지내죠.
급기야 아들의 마탑 학비를 도박으로 탕진하기까지 하죠.
아들은 분노하고 주인공을 증오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덕분에 현실을 제대로 돌아보게 된 주인공은, 이제 세상에서 유일하게 남은 소중한 것, 아이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고, 점차 좌절하며 그냥저냥 흘러가게 되죠.
그러다 우연히 드래곤이 변신한 노인의 선택을 받고, 한가지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인간에 대한 의문이 많던 드래곤은 주인공에게 '가치 있는 죽음'을 자신에게 보여주면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만한 돈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절대의 존재인 드래곤과 계약을 한 주인공은 이제 죽기 위해 그리고 가치 있는 죽음으로 평가 받기 위해 자신이 그나마 잘 아는 곳, 바로 전쟁터로 몸을 던집니다.
그 와중에 그는 자신만 보려 하지 않았던, 남들은 모두 인정했던 재능에 점점 눈떠 갑니다.
군인, 행정가, 참모와 같은 실무가로서의 재능을 알았지만, 귀족만이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의 법칙을 너무 일찍 알았기에, 귀족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 여긴 포스에만 목매달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묻어 버렸던, 주인공은 점차 자신의 가치를 찾아갑니다.
세상의 지배자인 귀족들이 과거 기사시절부터 자신을 어떻게 봐왔고, 그 재능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도 점차 알아 가게 됩니다. 자신이 지레짐작했던 자신의 가치는 다른 이들의 평가를 알게 되면서 점점 달라져 갑니다.
죽기 위해 전쟁터를 찾아다니다, 점차 자신의 자리, 자신의 재능을 인식하게 된 주인공은, 이제 조국의 풍전등화 같은 위기 속에서 자신이 죽은 뒤 남겨 질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전황을 뒤집기로 결심합니다.
여기까지가 3권의 내용입니다.
3권까지 읽고 나면 이거 4권에서 6권 정도 까지 신나게 진행될 준비가 끝났다는 느낌입니다.
오랜 기간 장르소설을 접하다 보니, 이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튼실하게 자리 깔기가 얼마나 힘든지 정말 절절히 느낍니다.
근데 이 책은 여기까지 자리 깔았거든요. 이제 신나게 달리기만 하면 되는데, 어디 한 곳 추천도 없고 너무 안타깝네요.
일독을 추천드립니다.
진지한 판타지 소설을 원하시면 만족하실 겁니다.
p.s) 작가님께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설혹 조기 종결하더라도 한 6권까지는 신나게 써주셨으면 하는 게 제 맘입니다.
써놓고 보니 더 죄송스럽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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