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우로부치 겐
작품명 : 아이젠 플뤼겔 下(완)
출판사 : 학산문화사 EX노벨
“시작해 버렸어. 선전포고를 했다고!”
범상치 않은 쿠르츠의 기세에 카알의 최악의 예상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분명히 개전과 동시에 블리츠 포겔은 군부에 강제적으로 접수될 것이다.
북극권에서 카이저 드라첸과 대결한 뒤로, 블리츠 포겔의 앞에 나타나는 용은 없다. 창공에서 고독한 카알은 조종간을 움켜쥐고 그 찬란한 빛을 생각한다.
“어째서 나는 거지?” “어째서 도전하는 거지?”
…카이저 드라첸과 대결을 했을 때, 카알은 ‘그’에게 그런 질문을 받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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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의 노래', '페이트/제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등을 쓴 암흑계(?) 시나리오 라이터 우로부치 겐의 '비행'과 '꿈'에 대한 로망이 살아있는 소설, 아이젠 플뤼겔. 그 하권입니다.
애프터버너의 차용으로 마침내 '초음속'의 벽에 다가서서 창공의 지배자인 용들의 왕 '카이저 드라첸'과의 레이스에 도전할 조건을 갖춘 최초의 제트기 블리츠 포겔.
허나, 애초에 군사용 개발을 전재로 예산을 따낸 블리츠 포겔 프로젝트는 심상치않은 주변 정세로 인해 직접적인 압박을 받게 되고, 무기 장착 시험비행이 결정되자 전장을 떠나온 '영웅' 카알은 고뇌합니다.
오로지 순수하게 하늘을 날고자 했으나, 오히려 하늘을 더럽혀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
그리고 그 혐오에서 벗어나 다시금 쥔 '꿈'과 '이상'은 또 다시 인간들의 사정과 '현실'에 의해 왜곡될 수 밖에 없는 상황.
추구하던 이상과 마주선 현실. 하늘의 지배자와 땅을 기는 인간들.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과 신념과 애정어린 동료들.
그리고 그 속에서 그가 내린 결단은...
현대의 오타쿠 컬쳐를 설명할때, '거대 서사의 조락'과 '기호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언급하곤 합니다. 선호하는 대상을 기호화 하여 분해하고, 이것을 축적, 이 '기호'의 조합으로 캐릭터와 상황을 소모하는 방식. 흔히 말하는 '모에 요소'라는 개념이 이 기호화의 대표적인 활용방식이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일부 창작자 들 중에서는 이 '기호화'의 대상이 '모에'가 아니라 '로망'에 맞춰진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이 책의 작가인 우로부치 겐이 바로 그런 사람.
각종 전쟁 영화에서 볼 법한 비장함, 인물들의 갈등, 그들이 가진 신념. 그 모든 것들이 '독창적이다'라고 볼 법한 것은 그다지 없습니다만, 그 이야기의 '기호'를 매우 정밀하게 선별하고 배치하고 가공하여 그야말로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강렬한 캐릭터 성은 없습니다. 들어 있는 것은 각자가 배역으로서 완성된 하나의 인간. 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그 서사와 갈등의 응축과 대립이 스토리의 진행과 테마의 구현으로 이어집니다.
'아이젠 플뤼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심지어 카알이 '영웅'으로서 다시금 제도약하는 발판이 되는 '적들' 마저도 그들의 신념을 걸고 확고하게 움직입니다.
전쟁의 진행과 각 인물들의 행동 양상, 주인공과 그 주변, 바깥의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얽혀가는 그 모습은 "정교한 글을 쓴다"는 우로부치 겐에 대한 평가를 실감케 하지요.
인간은 어쩨서 더 높은 곳을 추구하는가
더 없이 높은곳의 존재에게서 던져진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순수한 청년의 도전기와, 그 청년을 얽어매는
인간은 어째서 서로를 멸망시키는가
라는 또다른 질문에 대한 현실.
그 흔들림 속에, 현실에서 벗어나 순수한 이상을 향해 마지막 비행을 펼치는 카알의 모습은, 숭고하고도 가슴 찡하게 다가옵니다.
엔딩에 대해서는 우로부치 겐 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우려하는 '암흑계'는 아닙니다. 감동과 승화가 확고한, 현실적이고도 이상적인 그런 여운 짙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이 함께 하는 엔딩.
카알의 행방에 대한 평가는 독자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만;;
뭐, 막판에 에릭이 하는 일이 카이저 드라첸과의 재대결이라거나, 공중급유를 이용한 무착륙 세계 일주 정도가 아닐려나... 하고 예상했던 제 어설픈 생각을 철저하게 부숴 버리더군요. 거기에서 설마 용의 황제조차 예상치 못한 일을 벌일 줄이야;;
용 하니까 말인데, '용'에 대하여 카도노 코헤이의 '살룡사건'과 함께 상당히 '초월자'로서의 면모가 잘 묘사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네요. 모든 것을 보아왔고 인간의 인식을 초월하여 인간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인간의 도약을 바라보는 '신'적인 면모의 카이저 드라첸의 묘사는, 진정 위엄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최근의 기호 소모적인 수많은 라이트노벨 중에서도 철저하게 '로망'으로 응집된, '이야기'를 소비한다는 느낌이 드는 꽉 찬 책입니다. 역자 후기에 언급된 히가시데 유이치로의 '짐승 사냥' 또한 질주하는 이야기와 멋진 주인공의 거침없는 쾌감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멋진 소설이니, 적극 추천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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