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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터널을 지나면 설국이었다.
유명하기 그지없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원래 단편의 연작이라고 한다. 니가타 현의 온천장을 배경으로 한 한량(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과 게이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 이라기보다는 두 사람의 사이 자체를 써 낸 소설이다.
문장이 가진 아름다움이라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소설 전체적으로 그야말로 편집증적일 정도로 부드럽고 유려한 문체를 사용하여 주변을 표현한다. ‘자연을 묘사하는 어휘가 구태의연한 것 밖에 남지 않았다’는 회의감에서 썼다는 해설이 말해주듯, 자연과 풍광을 생소하게, 그러면서도 생생하게 표현한다(‘표현하고자 노력했다’ 같은 수준이 아니다.).
또한 ‘여행자’와 ‘게이샤’로 표현되는 그 관계, ‘국경’으로 말해지는 ‘밖’과의 단절은 소설의 이야기 또한 ‘자연’을 표현하기 위해 짜여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남녀의 관계를 다루고 있으나, 그것은 ‘헛수고’라는 말로 표현 될 정도로 매우 단편적이다. 주인공이 직접 본 적도 없는 서양 무용을 오직 글과 사진만으로 적당히 떨어져 상상하는 것으로 만족하듯, 삶의 현장인 ‘도시(도쿄)’와는 완전히 분리된 공간에서의 일만을 서술하는 것 자체가 상징적이다.
고마코와 산뜻한 관계이고 싶기에 품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말 자체가 이와 같다. 자연이라 해도 그것이 삶의 현장이 되어버리면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 주인공이 난색을 표한 것은 산골 게이샤를 봤을 때도, 도쿄로 대려가 달라는 요코의 말을 들었을 때도, 극장의 화제를 보았을 때도 결국 언제나 ‘현실’에 갑작스레 마주할 때였다.
일본의 이 시기 소설에는 ‘낭만’에 대한 집착 밖에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도 극히 개인적인 낭만. 설국의 주인공 또한 니가타의 자연이나 고마코와의 관계, 혹은 요코라는 여성(사실 요코 또한 요코 자신의 ‘개인적 낭만’의 실현에만 관심 있는 인물로 보인다) 또한 현실적인 관계가 아닌, “설국”이라는 공간 자체에서만 지속되는 매우 짧은 단편으로 머물게 하려 하지 않나.
종반에 ‘떠나야 한다’는 생각은 이러한 피상적 인식만으로 지속하기에는 자신과 고마코의 감정 자체가 선을 넘었음을 자각, 혹은 넘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기인한 것이라면, 마지막 화제는 그러한 마음 내부의 갈등을 넘은 ‘은하수’로 인한 교류를 또 다시 ‘현실’로 끌어내리는 것 아닐까.
추신 ) 민음사판으로 읽었는데, 첫 문장은 ‘눈의 고장’ 말고 그냥 ‘설국’으로 직역하는게 더 좋았을 거란 생각만 든다.
추신 2 ) 사실 그냥 한 남자의 여행지 외도 일기로 읽히기도 한다. 순문학이라 하면 왠지 유식해 보이도록 감상을 써야할 것 같은 압박감이 있다. 솔직히 뭐라 써 놔도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는 우습게 보일 것인데 말이다.
추신 3 ) 끝까지 알 수 없었던 게 있는데, 그래서 주인공과 고마코는 육체관계가 있었던 건가 없었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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