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희미한 의식 속, 익숙한 손발의 감각이 느껴졌다.
수백, 수천, 더 이상 셀 수도 없을 만큼 수없이 반복해왔던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이었다.
“…하님.”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너무나도 익숙한 각성의 순간.
지겹다는 감각조차도 무뎌 질 만큼 수없이 반복해 왔던 저주받은 굴레.
“크로하님!”
어두운 시야 속에서 희미한 의식을 부여잡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순간 눈 앞에 들어온 것은 주먹만한 몸집을 지닌 푸른빛 정령이었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은 채 필사적으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유메…”
“드디어 정신을 차리셨어요…?”
“또 실패한 거네요.”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나를 향한 자조가 담긴 표현이었지만 그녀는 내게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것은 그녀 자신의 무력감에 대한 한탄이었다.
이 역시 수도 없이 봐왔던 광경이었다.
“지금 시대는요?”
“458년이에요…”
“많이 앞당겨졌네요.
그만큼 남은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거겠죠.”
주저 앉아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펴보았다.
신비롭게 생긴 나무와 꽃들이 사방에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자욱한 안개와 곳곳에서 반짝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이 더해져 몽환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정령의 숲인가요?
나쁘지 않은 시작이네요.”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덤불을 헤치며 무장한 2인조가 나타났다.
행색으로 보아 정령을 노리고 숲에 숨어 들은 좀도둑인 것으로 보였다.
“혀… 형님! 저… 저거! 정령입니다! 정령이라구요!”
“지… 진짜다! 진짜 정령이 있었어! 저것만… 저것만 잡아다 팔면 우리도 이제 부자다!!!”
유메를 발견한 2인조는 뛸 듯이 기뻐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유메는 역겹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기분 나빠…”
그들은 천박한 미소를 숨기지 못하며 다가왔다.
둘 중 형님이라고 불린 자가 말을 걸어왔다.
“꼬마야.
옆에 있는 정령이랑은 친구니?
아저씨들이 되게 무서운 사람인데, 둘이 같이 잠자코 따라와주면 험한 짓은 안 할게.”
그는 더러운 속내를 감출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소년처럼 보이는 겉모습만 보고 건방지게 행동하는 이들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정말 보잘 것 없는 능력을 지닌 이들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됐어요, 유메.
흥분하지 말아요.”
유메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기본적으로 인간를 호의적으로 대하는 유메였지만 정령을 저런 식으로 취급하는 이들을 보면 그녀는 절대 화를 참지 못하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쁘장하게 생긴 친구가 화도 내고 귀엽네?
아저씨가 좋은 주인님 만나게 해줄테니까…”
“얼티메이텀 루인.”
유메에게 손을 뻗으려던 두 남자의 옆에 돌연 칠흑의 우주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마… 마법!?”
“혀… 형님!”
두 남자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짧은 외마디 비명조차도 내지 못하고 온몸을 일그러뜨리며 죽어갔다.
마력도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 굳이 쓸 필요도 없는 고위 마법이었다.
하지만 유메에게 더러운 마수를 뻗치려 한 그들에게는 적당히 걸맞는 죽음이었다.
조금전까지 두 남자가 서있던 자리에는 피한방울과 찢어진 옷조각조차 남지 않아 있었다.
어느새 숲은 그 고요한 자태를 되찾은 상태였다.
“그럼, 유메.
다시 시작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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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중인 작품 후다닥 프롤로그만 써봤는데
호된 비평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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