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가져오던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기준과 틀이 있고 세상 많은 것들이 그것에 비추어서 판단되어 질 수 있다는 생각요.
즉, 진화론이라는 기준과 틀을 가지고 있다면 유성생식을 하는 대다수의 생명체가 50:50의 성비를 가지고 있다는 현상을 진화적으로 안정 된 전략(Evolutionary stable strategy, ESS)라는 개념에 비추어서 일반적으로는 50:50의 성비를 유지하는게 진화적으로 안정 된 유일한 전략이기 때문이다라고 판단할 수가 있는게 한 예입니다. 칸트 철학이라는 기준과 틀을 가지고 있다면 사람이 살해당한 현상을 인간 이성이 절대적이고 유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개념에 비추어서 그것이 유린당하고 파괴 되는 것은 무엇과 비할 수 없이 끔찍한 일이라는 가치평가를 부여할 수 있겠고요.
기준과 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과 틀이 지닌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그 기준과 틀을 가지고 무언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인셈입니다.
이 생각을 오늘 좀 더 해보다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무슨 기준과 틀을 지니고 있는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덕철학적 측면에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점검하다보면 십중팔구 모순적인 부분이 나오는게 아닌가 싶었고요. 제대로 인지하고 분리 되어 있는 확고한 기준과 틀들을 갖추고 있는게 아니라, 주먹구구식으로 이리저리 엉켜 있는 엉망진창 상태의 무언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사용하고 있으니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다면 전문가가 나머지와 보이는 차이점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이론들을 풍부하게 알고 있으며 각 이론의 특징들을 확실히 인지해서 주어진 상황에 적절한 기준과 틀을 적용해 판단할 수 있다는 부분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설득력 있는 주장과 그렇지 않은 주장의 차이점은, 설득력 있는 주장은 우선 주장을 펼쳐나갈 기본적인 틀을 마련한 다음에 그 틀의 위에서 주장을 펼쳐나가는 반면, 설득력 없는 주장은 기본적인 틀을 제공하지 않거나 주장의 안에 주먹구구식으로 같이 섞어서 전달한다는 부분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여담이지만 이 글은 그 중 후자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주장보다는 생각과 생각이 나온 과정을 정리하는 것에 더 가깝지만요.
불현듯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기준과 틀을 가지고 세상을 판단하는 것이라는 이 생각 역시 하나의 기준과 틀이라 볼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해 좀 생각해보다보니 제가 정확히 기준과 틀이라는 용어로 무엇을 지칭하고 있었는지가 매우 불확실했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습니다. 저 혼자 머릿속에서만 해오던 생각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는 변명은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명확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더 결정적으로는, 방금 가지게 된 의문을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가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던 것인지를 명확히 정리해야만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제 머릿속에서 기준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오던 이유는, 무언가 기준이 될 것이 있지 않고서는 거리를 파악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백지에 하나의 점을 찍어 놓았다고 해봅시다. 이 점의 거리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면 거리는 두 대상의 위치 사이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대적인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 백지에 점을 하나 더 찍어서 그 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먼저 찍은 점이 그 원점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거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건 선한 일이다 라고 하면,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는 원점을 찍어 놓고, 물에 빠진 사람을 헤엄쳐 뭍으로 끄집어냈다는 사건을 다시 하나의 점으로 해서, 둘 사이의 거리를 구하고, 거리가 가까울 수록 선하다, 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거리를 가지고 좌표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모종의 점과 모종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점은 오직 하나만 있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그 모종의 점을 중심으로 하고 모종의 거리를 반지름으로 한 원이 하나 있다 할 때, 그 원의 가장자리에 놓인 모든 점들이 그 모종의 점과 모종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습니다. 무수히 많죠. 좌표는 오직 좌표계를 가지고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점이 있다 할 때 그 점을 원점으로 가지는 동일차원의 좌표계는 무수히 많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원점이 아닌 점은 그 무수히 많은 좌표계들에서 모두 다른 좌표를 가지고 있으니, 원점만 가지고 원점이 아닌 점의 좌표를 구하는건 불가능합니다.
이렇게요. 그렇기에, 특정한 하나의 ‘기준’이 원점이어야 하는 것처럼 특정한 하나의 ‘틀’이 그 점을 원점으로 삼는 좌표계여야 합니다. 그 틀은 각기 다른 점들에게 각기 다른 좌표를 부여합니다. 각 점이 우겨넣어져서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 틀이 되어줍니다. 그 기준과 틀을 하나로 합쳐서 체계라고 부를 수 있을겁니다. 제가 그동안 생각해오던 기준과 틀은 정리하면 이런 의미였습니다.
이렇게 용어를 정리하고 난 후 원래의 의문으로 돌아왔습니다. 세상을 특정한 체계를 가지고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하나의 체계인 것일까? 그 의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이 생각이 무엇인지부터 정리했습니다. 그러자 제가 한 이 생각은 세상에 존재하는 현상의 특징을 관측하여 추측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정리는 무언가 계속 부족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애초에 핵심을 놓친 상태인 것 같다는 느낌이요. 왜 그 느낌이 드는지를 계속 생각해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탁 들더군요.
계산기가 하나 있다 합시다. 그 계산기에 12^2를 입력하니 144가 나왔습니다. 2^3을 입력하니 8이 나왔고요. 이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한 현상입니다. 저희는 계산기에 12^2와 2^3를 입력하면 그 결과가 12의 2제곱과 2의 3제곱하고 같다는 것을 관측했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이것을 가지고 이 계산기는 숫자 x와 기호 ^와 숫자 y를 x^y의 형식으로 입력하면 x의 y승을 결과로 내놓는다 라고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추측은 아마 정확할겁니다. 이 추측을 가지고 저희는 16^5를 입력하면 16의 5승이 결과로 출력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입력한 것은 12^2가 아닙니다. 저희는 특정한 기호들을 각각 1, 2, ^ 라고 판단하는 체계에 비추어서 각 형상이 적힌 버튼을 순서대로 누른 것입니다. 저희가 한 일은 그 행동에 저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체계들을 비추어서 12^2를 입력한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그 결과로 나온 144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저희가 한 행동, 즉 세상에 존재하는 현상의 특징을 관측해 추측을 하는 것은, 원하는 체계들을 통해 각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들을 통해 다시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희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한 체계들 역시 다시 동등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 졌을 것이고, 저희가 의미를 부여해 만들어낸 체계 역시 다시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데 사용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체계와 의미의 사슬, 이것이 핵심이었던거죠.
군데군데 구멍과 빈틈이 숭숭 뚤려 있는 글이긴 한데, 그래도 처음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보다는 더 정리가 되어 있네요. 나중에 더 생각하고 가다듬으면서 정리하면 나아지겠죠.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