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서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 널려 있다. 이 용기라는 것은 불합리한 일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한다. 그러나 사회속의 나는 철저히 무기력하다.
방법은 적절한 타협과 용기어린 행동의 병행이다.
학생때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는 과거와 지금이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일들은 많은 부분 다를 것이다.
과거에도 오늘날 일진이라 부르는 무리들이 있었다. 부르는 명칭만 다를 뿐 직접적인 가해정도는 지금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다만 분명히 느끼는 점은 집요하고 상습적이고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행동에 있어서는 오늘날이 더욱 심각한 것으로 느껴진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반에서 싸움이 수시로 벌어졌다. 치고 박고 싸우고...그러다 화해하고 좋은 사이가 되는 경우도 있고, 일부는 불량모임을 만들어 지들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나쁜일을 하고 다녔다. 그러나 빵셔틀이라든지 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지속적인 금품갈취는 오늘날과 비슷하게 이뤄졌지만 광범위하게 일어나진 않았다.
요는 대놓고 이지메를 하는 경우가 지금에 비해 확연히 적었다는 것이다. 가해정도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주 심각한 경우에야 과거와오늘을 따질 필요가 없겠지만 대체적으로 그 만큼 학교에서의 싸움이 잦았고, 거친 환경에서 자라 거칠게 행동하는 무리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 부리듯이 셔틀로 부려먹거나 지속적으로 생활 곳곳에서 괴롭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차라리 힘센 녀석에게 한두번 재수없게 걸려서 얻어 터지고 마는게 낫지, 수시로 심적 고통을 받으며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없어서 억눌리며 사는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내가 처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이라는 측면에서 오늘 날 더욱 심각해 졌다고 보는 것이다.
풍운고월이 학창시절에 같은 반 친구 중 군부대에 근무중인 아버지에게 매일 얻어맞고 자란 아이가 있었다. 이 친구는 수시로 싸움하고 다녔다. 반에서 싸움귀신으로 이름이 낫지만 같은 반에서 생활하면서 괴롭힘을 당해본 기억은 없다. 그 친구는 사소한 일에 기분이 거슬리면 일단 방과 후 남으라고 한 뒤 책상 걸상 다 뒤로 밀어 버리고, 한판 뭍곤 했다. 조직적으로 어울리는 일진들도 없었다. 물론 일부 거친 아이들과 무리를 짓고 다니긴 했지만 그 수는 서넛에 불과했다.
이웃한 학교에는 더욱 많은 불량한 학생들이 있어서, 마치 학생들 사이의 전설처럼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나와 깊은 연관은 없는 먼 이야기였다.
주로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는 반항하지 않는 경우였다. 나의 경우 학기 초반에 싸움을 잘하든 못하든 한번 보여주었다. 건드리면 한대 친다. 이기든 지든 상관 없고, 맞아도 그만이다. 그러면 이후 건드리는 무리는 없었다. 앞과 옆에 가까이 지내는 친구 서넛만 내편으로 만들어 두면 무리 없이 학교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일어나는 왕따 문제들은 이런 부분과 아주 다른 느낌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학생들이 많았을 뿐 아니라 동네 친구도 많았다. 거친 녀석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직접 어울리고 다니지 않아도 동네에서 다방구를 하고 구슬치기를 하면서 만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밑보이지 않는 처신 정도는 저절로 학습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학생들의 수는 줄고 어울리며 요령을 배울 틈도 없이 여기저기 학원에 끌려 다니고 있다.
부모들은 과잉 보호를 하고 있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자녀교육은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신 무언가를 해주주기보다 직접 행하도록 하고, 문제가 있더라도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스스로 극복하도록 하되 이야기를 많이 들어 주며 조언해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별거 아닌일로도 고민하는 일이 많다. 예를 하나 들어 보면 TV에서는 치약을 칫솔에 한줄로 길게 묻혀 이를 닦는 광고가 방송되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조금만 뭍혀도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말씀해 주지 않았다. 왜 저렇게 하면 안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소한 일도 설득을 통해 이해시키는 노력이 부모에게 필요하다. 설득하고 이해하면 왜 우리집은 치약마저도 아끼려고 할까 라는 엉뚱한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사소한 부분부터 자신감을 잃게 되면 생활전반에 그런 생각이 행동으로 드러나게 된다. 강자는 아량이 있지만 가짜강자는 이런 류를 물어 뜯으려 한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를 키우며 자존감과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 말이라도 좋고 기왕이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좋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도록 중심을 잡아 주는 것아다.
돌이켜 보면 소극적으로 규칙을 무서워 하는 아이보다 일단 깨지고 보더라도 부딪혀 보는 아이가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더 활달하며 적극적인 학교생활을 했다.
미움받아도 좋고, 얻어 맞아도 일단 부딪혀보는 용기가 말처럼 쉽게 생길리 없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이 자존감과 용기가 학창생활 뿐 아니라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크나큰 자산이 되는 것이고, 자녀는 성공과 행복을 스스로 쟁취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자기 인생 자기가 살아야지. 다만 중심은 부모가 잘 잡아 주어야 그 중심이 평생을 살아가는 자산이 되어줄 것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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