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노조로 온나라가 떠들썩합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공무원 노조는 공무원 노조대로 대의 명분을 내세우며
저마다 국민을 위한다고 말합니다.
오래전부터 정치가들이 입에 달고다니는 ‘국민’이란 말은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공무원노조가 말하는 국민이란 말도 비슷한 이유로 누구를 지칭
하는지 모른다고 할까요?
오늘 제가 겪은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속칭 밤무대로 불리는 야간 업소에서 일하는 연주인입니다.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올빼미이지요.
어제 아침 동사무소에 주민등본을 뗄 일이 있어 갔었더랬습니다.
그때 시간이 오전 8시45분 경이었는데 평소 한참 잘 시간이라 아침에
돌아다닌 적이 없는 저는 8시 정도면 공공기관이 근무를 시작하지 않았나
잘못판단한 것이지요.
텅빈 사무실에 가니 전날 숙직 근무자로 여겨지는 여성 공무원분께서 9시
부터 업무가 개시된다고 알려주더군요. 15분 가량의 시간이 남아 기다리려고
하다가 너무 피곤해서 잠시 자고 낮에 다시 오려고 들어왔습니다.
11시 50분 경으로 기억합니다만 다시 동사무소로 갔습니다.
사무실 안에는 네 다섯명의 남자 직원들이 있었는데 저마다 신문을 보거나
잡담을 하는 등 왠지 일하지 않는 분위기 였습니다.
저는 등본을 떼러왔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대꾸도 않더군요.
울컥 짜증이 났지만 일단 민원서류 신청양식을 써서 내자라는 생각에 여기저기
둘러보다 호적등초본 신청서란게 보이길래 그걸 쓰다가 제 앞으로 지나가는
직원이 있어 다시 말했지만 그저 고개를 돌려 외면하더니 딴전을 피는 겁니다.
저는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공무원노조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점심시간에는 근무를 하지 않는 다는 유인물이 보였습니다.
참 기가 차더군요. 올빼미 생활을 하다보니 세상물정을 모른 저도 잘못이지만
근무가 이루어지지 않는 시간이라면 그렇게 안내라도 해 줘야 하는게 아닌지..
저는 딴전을 피는 그 직원에게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점심시간이라 근무를 하지
않는 거냐고 몇시에 오면 되냐고 그제서야 직원은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어물
거리며 ‘1시’라는 말을 하더군요.
짜증이 날만큼 났지만 워낙 피곤하고 상대하기도 싫어 그날을 그냥 들어가 자고
밤에 출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예 딴소리 못하게 오전 9시30분경에 찾아갔었습니다.
텅빈 사무실엔 공익근무요원으로 보이는 젊은 직원만 있더군요. 안쪽의 동장실
이라고 쓰여진 방의 열린 문사이로 직원들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이구요.
저는 별수없이 공익근무요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등본을 떼러 왔다고 말하자
그는 동장실 앞에서 해당직원에게 말을 하고 돌아와 저에게 기다리라고 말했
습니다. 저는 제가 또 근무시간을 잘못 알고 왔나 싶어 확인차원에서 공익
근무요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근무시간이 몇시부터냐구요. 9시부터라고 하더군요. 시계를 보았습니다. 9시40분.
그럼 왜 기다려야 하냐고 물으니 직원회의가 있다는 겁니다.
순간 화가 치밀더군요. 그럼 민원인이 볼일이 있어 왔는데 회의를 하면 무작정
기다려야 하냐구요. 원래는 그러면 안된다고 대답하더군요. 그럼 얼마나 기다
려야 하는지 물어보니 한 5분 정도만 기다려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더 이상 말하기도 싫고 보아하니 그 직원은 공익요원이라 직원회의
에도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니 그사람한테 화를 내서 뭐하랴 싶어 속으로 부글
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며 의자에 앉았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공무원노조관련 팜플릿들....
참 거창하더군요. 풍자적인 만화와 양심선언을 한 해직공무원의 사진..
부정과 비리로 얼룩져 왔던 공무원들이 스스로 ‘철밥통’을 깨고 국민을 위해 거듭
나겠다는...
몇해전 지하철 노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지요.
제 기억으로 그때 지하철 노조가 내세웠던 대의명분은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안전운행을 하기가 불가능하여 국민의 안전을 위한다는 것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사실 불친절한 지하철 직원들에 대한 씁쓸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라면 콧방귀를
뀌고 말, 월급올려달라는 말의 완곡한 표현으로 받아들여 질 뿐일 터이고 만일
친절한 지하철 직원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들의 주장이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거라 봅니다.
요는 거창한 대의 명분이 문제가 아니라 평상시 공무원들의 봉사정신이 얼마나
국민들에게 어필되고 있는지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사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팔걷고 나서 노력하기 전까지 우리나라 공무원들 얼마나 콧대높고 불친절 했는지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 겁니다. 특히 법원이나 경찰쪽에는 아직 그런면이 없잖아
있지 않은지요.
기본적인 마인드의 변혁없이 그들이 주장하는 대의명분에 얼마나 많은 설득력이
실려질는지는 모를 노릇입니다만 최소한 불쾌한 경험을 한 저만은 이번 공무원
노조에 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공무원 근무조항에 따라 점심시간에는 근무를 하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근무재개
시간인 1시에 다시 오시길 바랍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제가 들었다면 최소한
초등학생들이 말꼬리 잡고 싸우는 것처럼 복무규정을 빌미로 투정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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