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무협소설의 역사
국내 최초로 번역 소개된 중국 무협소설은 울지문(遲文)의 ‘검해고홍(劍海孤鴻)’이다. 김광주씨가 ‘정협지(情俠誌)’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1961년부터 경향신문에 연재했다. 김씨는 이어 ‘비호(飛虎)’를 동아일보에, ‘하늘도 놀라고 땅도 흔들리고’를 중앙일보에 연재해 무협소설 붐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같은 인기에 힘입어 와룡생(臥龍生) 등 대만 작가들의 작품이 잇따라 번역됐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와룡생의 ‘군협지(群俠誌ㆍ이하 역제)’ ‘의협지(義俠誌)’ ‘비룡(飛龍)’ 천마검(天魔劍)’ 등이 있다. 당시는 화교가 초벌번역을 하고 한국인이 윤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무협소설 붐은 그다지 크지 않은 대중문화 시장 규모에 비춰 엄청나게 컸다. 이 붐은 1970년대 중반에 들어 최고조에 달했다.
이 무렵 국내 창작 무협소설이 등장했다. 와룡생의 인기에 편승, 한국인이 쓴 가짜 와룡생 소설이 시초인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의 이름(필명)을 걸고 책을 낸 것은 1977~1978년에 시작됐고 을재상인(乙齋上人)의 ‘속팔만사천검법(續八萬四千劍法)’이 창작 무협소설 붐의 시초가 됐고 전문 출판사와 수많은 작가들이 잇따라 출현했다. 그러나 창작 무협소설은 대부분 싸구려로 제작돼 만화가게로 납품된 것이 특징이다.
당시 창작 무협소설의 특징은 간결한 문체, 속도감 있는 전개, 황당무계한 설정, 극단적인 과장, 잔인, 외설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황당무계한 기연(奇緣)의 연속, 터무니없는 주인공의 초능력이라는 틀에 박힌 구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상함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독자들로부터 외면받게 됐고 1987년쯤에 거의 빈사상태에 이르렀다.
그 역작용으로 다시 중국 무협소설이 복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1986년 홍콩 작가 김용(金庸)의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이 ‘영웅문 제1부 몽고의 별’이라는 제목으로 고려원에서 번역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14종의 소설이 1989년까지 번역돼 ‘김용 신드롬’을 낳았다. 역사소설과 무협소설의 교묘한 결합, 인물의 현대성, 세련된 문체 등을 특징으로 하는 김용의 소설은 와룡생류와 구분되는 정체성으로 독자들을 흡인했다.
김용과 함께 홍콩ㆍ대만 작가들의 작품들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다수 번역됐다. ‘촉산객(蜀山客)’ ‘청강만리(淸江萬里)’ ‘영웅도(英雄道)’ ‘검객행(劍客行)’ ‘유성호접검(遊星胡蝶劍)’ 등이 이 무렵 나왔다.
무협소설 붐의 재현을 계기로 창작 무협소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1993년 서점 단행본으로 나온 서효원의 ‘대자객교(大刺客橋)’가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어 창작 무협소설들의 재등장에 촉진제 역할을 했다. PC통신에 무협소설을 연재하는 방식도 이 무렵 등장했다. 이후 1995년부터 신무협이라는 새로운 경향의 창작 무협소설들이 주류를 이룬다. 신무협과 환타지를 결합한 형태의 소설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출처: 주간조선.
너무 간단해서...
본격적 한국 무협은 대자객교가 유일하게 제목이 나온 것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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