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래왔고, 언제나 그럴 것이지만,
사실 문학이라는 예술은 그 사회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예술입니다. 이 말을 조금 돌려서 다시 하자면, 문학이 병든 사회는, 그 자체로 이미 병든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은 유료 연재로 인해 문피아로 대변되는 장르 소설의 질적 하락이 발생한다고 보시고 계시지만(혹은 이에 적극 반대하시지만) 저는 우리 사회의 질적 하락이 장르 소설의 질적하락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싶습니다.
고래로, 모든 문학은 “장르 소설”이었습니다. 각종 신화로부터,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오딧세이를 거쳐 서유기, 베오울프, 초한지, 삼국지, 보물섬, 해저 2만리.. 심지어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도 코뿔소를 유니콘으로 그리는 등, 장르 문학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결국 요는, 글의 목적이 재미냐 아니냐는, 그 글이 사회를 반영하는 글이냐 아니냐와는 저언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재미를 추구하는 글이야 말로 그 사회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글일 때가 많습니다. 단지 그 사회의 반영상은 언제나 텍스트 내부에만 있지 않을 뿐이지요.
이에 대해 세밀히 이야기 하자면, 좀더 빠른 인스턴트 결제, 좀더 빠른 인스턴트 연재, 좀더 빠른 작가의 인스턴트 피드백을 원하는 독자들의 모습과 시스템 자체가 바로 그만큼 각박해지고, 깊은 생각을 저어하고, 페이스북 마냥 즉각적인 반응을 원하다 내지는, 그러한 속도감에서만 “재미”내지는 자극을 느끼도록 사회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2015년의 화두가 웰빙에서 생존으로 바뀐 것과 큰 상관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 에너지~ 내지는 충분한 열량의 보충 그리고 즉각적이고 재빠른 반응일 것입니다. 이렇게 생존에 도움이 되는 자극, 생존의 위협을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것에 재미를 느끼도록 몇년 사이에 우리 사회가 바뀐 것이 바로 웰빙에서 생존으로 화두가 변화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분석은 최근 먹방 내지는 요리 프로그램에 우리 사회가 열광하는 모습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많은 한담글에서 인문학적인 가치가 있네 없네를 가지고 장르 문학을 논하는 것 또한 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문학이라는 것은 배부르고 등따시고 한가해야 나오는 학문이지, 배고프고 춥고, 당장 매일매일이 노동으로 가득찬 사회에선 발생할 수 없는 학문입니다. 너도 나도 당장 배고파서 진짜로 죽을 지경인 동네에도 사람이 뭔지 난 누구인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동네 사람들 다수는 그런 생각하는 한명을 미친 놈으로 취급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입니다.
긴글 정리하고 마무리 하도록 하지요.
장르 문학이라고 사회상이 드러나는 문학 본연의 기능이 발휘되지 않을 것이란 것은 오만이요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대중과 멀어진 한국 순수 문학계를 생각해보면, 장르 문학계야말로 대중들이 체감하는 사회상의 병폐가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사회상은 텍스트에 직접 반영되기 보다는, 시스템과 사람들의 요구 속에서 조금 더 은밀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유료 결제와 그로 인해 장르 문학의 질이 떨어졌다기 보다는, 사회 전반의 질적 하락이 이제 슬금슬금 시스템을 넘어서 텍스트에까지 반영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조금 더 여유가 생기고, 즉각적이고 인스턴트한 생존의 문제를 잊어도 되는 사회가 되면, 오늘날 걱정하는 장르문학의 질적하락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그 때가 되면, 말초적인 자극 그 이상의 재미를 추구하는 대중의 숫자가 충분히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졸필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토론이나 반론 댓글은 환영합니다만 반드시 그에 대한 대답을 보장해드리진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시한번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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