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 제보'가 편찬된 지 160여년이 지난 영조35년(1751)에 이르러'무예 신보'가 간행되었다. '무예 제보' 이후 오랫동안 살수의 기예에 관한 병서가 간행되지 않았던 것은 단병의 병장 기예에 대한 경시와 양란 이후의 평화 분위기 속에서 단병 무예 진흥의 긴박도가 약하였기 때문이다.
'무예 신보'가 간행되는 데는 사도세자의 걸출한 기예와 안목이 중요한 역활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사도세자는 어릴 때부터 살수 기예를 익히고 당시 시정 잡배라고 깔보던 무도인과 어울리면서 살수의 기예에 대한 필요성과 그 기예 자체를 익히게 된 것이다.
사도세자가 대리 청정하게 되면서 살수 기예를 정리하기 시작하여 영조 35년(1759) 왕명을 받들어 '무예 신보'를 편찬하게 된 것이다.
'무예 신보'는 '무예 제보' 의 곤봉, 등패, 낭선, 장창, 당파, 쌍수도의 6기외에 죽장창, 기창, 예도, 왜검, 교전 등의 12기를 추가하여 18기의 무에를 그림으로 설명하는데 이로써 18기가 정립하게 된다.
'무예 신보'는 현재 전해지지 않으나 '무예 도보 통지'의 [增]에 새로 추가한 것과 함께 실려서 그 내용의 편린을 알 수 있고 '무예 도보 통지'의 구보적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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