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나르시안
작품명 : 저는 집사입니다
출판사 : 영상노트
0.
<저는 집사입니다>라는 제목에서 보여주듯, 주인공은 집사다. 집사가 무엇인고 하니, 집의 일을 관리하는 직책이다. 당연한 노릇이지만, 도무지 어드벤쳐라는 요소가 끼어들래야 끼어들 수 없는 역할이다. 당연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즐겨야만 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다.
<저는 집사입니다>는 퓨전 판타지를 내세우고 있는 글이다. 다만 단순히 리얼 월드에서 판타지로 차원 이동을 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수 차례의 윤회를 통해 다양한 지식과 능력을 갖춘 완벽한 주인공을 빚어냈다.
무료한 일상을 지켜보기엔 지나치게 뛰어난 집사를 그려낸 글, <저는 집사입니다>를 읽고 생각한 바를 늘어놓고자 한다.
1.
<저는 집사입니다>는 퓨전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는 글이다. 주인공은 이미 몇 번의 윤회를 통해 다양한 사상과 지혜를 갖춘 인물로, 글의 배경인 판타지 월드에는 존재하지 않는 지식을 갖추고 있다.
퓨전 판타지는 기존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등장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충격과 수용 및 발전을 그려내는 것을 소재로 활용하는 하위 장르다. <저는 집사입니다>는 퓨전 판타지의 미덕에 매우 충실했다. 무공, 음악, 가사, 의술, 거기에 판타지 월드에는 존재하지 않는 지식이 드러날 때마다 표현되는 원주민(작중 인물들)의 놀람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작은 것들이 가진 가치를 재확인시켜준다.
퓨전 판타지의 미덕에는 충실했다. 적어도 이 하나만으로도 퓨전 판타지를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큰 칭찬을 받기에 충분할 것이다.
2.
<저는 집사입니다>는 어드벤쳐라는 요소가 중요치 않다. 분명 로드 어드벤쳐, 즉 모험은 판타지라는 장르의 특성상 굉장히 중요시 여겨지는 것이지만, <저는 집사입니다>는 플롯의 특성상 그 요소가 전혀 중요하지 않게 구성되어 있다.
애시당초 집사라는 직책 자체가 이동이 없는 역할이다. 아무리 주인이 멀리 떠난다 해도 집사는 집에 남는 법이다. 소소하고 평화로운 일상, 모험과는 정반대에 존재하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게 또한 집사라는 역할이다.
주인공인 렌 슈발츠는 과연 집사를 천직으로 삼는 인물이라, 늘상 평화를 즐기는 성격이다. 정신연령 600세라는 설정, 어지간해서는 부동심이 유지되는 수련 수준, 풍파 없는 일상을 즐기는 성격까지, 이래가지고서는 모험의 흥분이 끼어들래야 끼어들 수가 없다.
그러나 <저는 집사입니다>는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오히려 독자적인 색채를 가진다. 모험을 즐기지 않는, 그래서 일상을 강조하는 캐릭터리티가 모험의 흥분 반대편에서 독자에게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3.
<저는 집사입니다>는 퓨전 판타지에 속한다. 퓨전 판타지는 기존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개념을 전파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앞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기존의 세계에서는 자발적으로 생겨날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명이 탄생한 배경 생태가 전혀 다른, 뿌리가 다른 개념이어야 한다.
이 전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또다시 전제가 필요하다. 배경 세계의 설정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얼 월드와 판타지 월드의 차이점을 저자 스스로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주인공의 행동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부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럼 <저는 집사입니다>는 과연 세계관 설정에 충실할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세계관은 그리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소설적 리얼리티도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풍부한 식재료에 비해 전혀 발달하지 않은 식문화, 낮은 의료수준에도 불구하고 존재가 확실한 암, 기후와 생태의 부조화 등은 부실한 세계관을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려는 인상을 준다.
아니, 굳이 그런 식으로 따지지 않더라도, 공개된 설정이 후에 번복되는 점 등은 세계관 설정이 부실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4.
앞서 말한 내용을 뒤집어 보자. 리얼 월드와 판타지 월드의 차이점을 확실히 인식하려면 필요한 전제가 하나 더 있다. 주인공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개념을 저자가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얼마나 알고 있어야 하느냐면, 최소한 주인공보다는 더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저자는 리얼 월드의 지식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글을 썼다. 대장간에서 무장을 만들기 위한 철로 제강과정도 없이 리얼 월드의 조리도구를 만든다는 점 하며(철에도 종류가 있다), 우유와 버터로 생크림을 만드는 것 하며(당연히 이 방법으로는 보통의 생크림 맛이 안 난다. 게다가 버터에서 염분을 분리하는 마법을 쓸 정도라면 차라리 우유에서 유지방을 분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건 나 뿐인가), 정확하지 않은 지식이 나열된 부분이 작중에 산재한다.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적어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저건 제대로 된 방법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거슬린다.
5.
퓨전 판타지가 리얼 월드의 개념을 판타지 월드로 이식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개념적 충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앞서 기술했다. 그런데 이것을 표현하려면 당연히 묘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묘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독자의 눈은 주인공에게 머무는 것에 한정될 뿐이며, 결국 새로운 개념의 출현에 놀란 인물을 이해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저는 집사입니다>는 이 부분에서 가장 큰 결점을 지닌다. 묘사의 부족, 그것이 개념의 전파 과정을 대폭 축소해버림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인물이 느끼는 감정에 동조할 수 없게 한다.
저자는 <저는 집사입니다>에서 '아름답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무엇이 어떻게 아름다운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만든 옷, 장신구, 케이크, 춤이라고 부르는 무공,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이 적절한 묘사 없이 두루뭉실하게 넘어간다. 단순히 '그냥 그렇다'라고 정해둔 채 묘사를 회피한다.
<저는 집사입니다>는 소재보다는 사건에 초점을 맞추는 글이다. 당연히 소재의 묘사를 할 필요는 현저히 떨어진다. 그러나 소재에 대한 인물의 감정에 눈을 돌려서야 사건만 즐기다 끝날 텐데, 이래서는 아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6.
앞서 말한 바를 연장해 보자. <저는 집사입니다>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되었다. 그런데 전지적 작가인 저자의 관점은 시종일관 주인공에게 머물러 있다.
묘사가 부족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서술자의 관점이다. 묘사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의 대부분이 주인공의 손으로 만든 것들이니, 이미 그 과정을 모두 알고 있는 서술자는 굳이 묘사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묘사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당연하고, 묘사를 한다면 그것은 주인공 주위의 인물들을 배려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결과적으로 독자가 피해를 받게 될 따름이다.
또한 독자의 눈과 귀를 주인공에게 붙들어 두게 하는 것도 서술자의 관점이다. 영화에서 미장셴의 목적과도 상통하는데, 결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술자의 관점은 독자의 눈을 저자가 의도하는 대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아쉽게도 <저는 집사입니다>에서 독자의 눈이 주인공에게 머물러서 좋은 점은 없다. 오히려 서술에 비친 판타지 월드의 미개함을 독자에게 보여줄 따름이다. 판타지 월드의 미개함과 리얼 월드의 우월함을 대비시키는 것이 저자의 의도였다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곧 <저는 집사입니다>는 시점의 활용이 온전치 못한 글이라는 의미다. 차라리 1인칭 주인공 시점이었다면 관점이나 묘사의 문제를 잘못된 것이라 생각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7.
<저는 집사입니다>는 리얼 월드에 대한 지식을 굉장히 많이 보유한 주인공을 내세운 글이다. 또한 그만큼 많은 개념을 전파하기도 한다. 퓨전 판타지의 미덕에 충실하며 소소한 일상을 맛깔스럽게 그려내기도 했다. 인물의 설정도 매력적이며, 사건의 전개도 거친 면이 없다.
재미는 있다. 분명 사건의 구성과 전개 과정은 재미있게 짜여 있다.
그러나 부실한 설정과 잘못 활용된 시점이 소설로서의 가치를 폭락시켰다. 재미있는 글이냐 하면 그렇다 할 수 있겠지만, 좋은 소설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범작, 딱 그 선이다. 좋은 면과 좋지 못한 면을 대체적으로 엇비슷하게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저자에게 조금 더 많은 공부와 생각, 그리고 꼼꼼한 퇴고를 부탁하고 싶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글이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것은 읽는 입장에서 많이 아쉬운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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