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었니?"
부드럽게 깔린 풀 자락에 발을 대충 문질러 진흙을 닦아내며 무릎언저리까지 걷어붙인 바지를 잡아당기는 그의 귓가로 나지막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쪽에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맨발 차림의 체구가 작은 소녀가 멀뚱히 서있었다. 인기척도 없이 다가와서는 빤히 바라보는 통에 놀랄 법도 하건만 남자는 그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했다.
"응."
"그래서. 갈 거니?"
"가지 말라고 해 줄래, 밀디?"
밑단 정리가 끝났는지 남자는 바지를 한번 툭 털고 그제야 씩 웃으며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소녀 역시 남자와 같이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너의 이름을 돌려줄게. 편안한 여행이 되길, 나한의 아들 리프넨시드여."
끝없는 대지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영웅 중의 하나, 문지기 숲의 기사 리프넨시드.
혼돈 속에서 질서가 탄생했고, 어둠을 가르고 빛이 나왔도다.
그러나 어이할꼬. 왕을 집어삼켰으니 밤은 그 누가 지킨단 말이더냐.
오호라 균형이 무너지니 마침내 침묵의 때가 오는 도다
옛 예언서의 시를 따라 이름 없는 왕과 천년여왕의 두 땅 사이를 헤매는 이를 찾아 나선 그의 짧은 여정.
오오, 그대 녹색의 좌여
문지기 숲의 마법사여
들리는가 그대가 몰고 온 새로운 시가
이 땅을 열고 대지를 적시나니
그대 녹색의 좌여
보라, 또 다른 바람이 불어오는 도다
용과 요정과 사람. 그리고 그림자 없는 자들의 경계를 넘어 잃어버렸던 그 새로운 시가 불어오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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