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라면이 좋은 이유 관련자료:없음 [3209]
보낸이:강지혜 (바람꽃 ) 1999-02-25 18:47 조회:92
⊙ 라면이 좋은 이유
"난 정말 라면이 좋아요. 라면은 질리질 않아요. 나는 라면만 먹고
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는 라면을 참 좋아했다. 나는 그가 아직 애들 같아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어린애처럼 생라면을 부숴먹질 않나, 가지가지 라면을
골고루 사다 먹어보질 않나, 덜 끓였다 많이 끓였다 라면으로 갖은
요변을 떨어 대는 폼이 철이 덜 든 애들 같았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어느날인가 저녁무렵 전화를 건 그가 [왜
라면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들어보겠냐고 제의를 했다.
"말해 봐요. 왜 라면이 좋은 건데?"
"듣고 나서 울지 말아요. 우리 형님이랑 누나는 듣더니 막 울던데."
"호호. 내가 어린앤가. 얘기 해 봐요. 어떤 사연이 있길래."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요. 나."
"해 봐요. 왜, 어릴 때 라면 먹는데 누가 못 먹게 했었어요?"
나는 장난스럽게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가볍게 웃으면서 그 이
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팠어요. 요양원에 오래 계셨는데
국민학교 6학년 때인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버스랑 기차를
갈아타고 3시간여 떨어진 요양원에 엄마를 찾아갔어요. 엄마는 많
이 헬쓱해 졌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엄마를 본다는 건. 그렇잖아요.
저녁때가 되어 도착한 나는 그저 엄마가 보고 싶었던 마음에 배가
고픈 것도 몰랐었나 봐요. 엄마랑 근처 허술한 여관에 들어갔는데,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어요. 엄마는 애처로웠는지 나를 이
끌고 주변 식당을 찾아갔는데, 모두 문을 닫은 후였지요.
엄마는 자꾸 뭔가 사주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아무데도 먹을 만 한
건 팔지 않았어요. 그래서 여관주인에게 사정한 끝에 우리는 생라
면 두 개를 얻을 수 있었어요. 밤새도록. 엄마랑 함께 그 라면을
부숴가며 먹었어요. 그게 어찌나 맛이 있던지. 뜬눈으로 밤을 샌
다음날 엄마는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 내 주머니에 쑤셔 넣어주
었어요. 차비래요. 나는 정말 오기 싫었는데, 정말 오기 싫었는데.
그리고 집에 와서 형이랑 누나한테 그 이야기를 해 줬어요. 그랬
더니 막 우는 거여요. 형이랑 누나는 나보다 많이 여려요. 후후후.
엄만, 그렇게 거기 계시다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라면에 서린 엄마가 그리워 부벼대는 그의 모습이 반짝거리며 하늘
로 날라가 별빛이 되었다. 수화기 너머의 그는 지금 눈을 감고 있
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어느새 밤하늘에 가득 찬 별들이 오늘따라 꽤나 눅눅한 빛을 흩뿌
리고 있었다.
nooy..라면을 먹으면 코 끝이 찡할 것 같은..
에필로그…..
그는 무협소설 작가가 되었다. 한수오 라는 작가…
그와 연락이 끊어진 지 꽤 되었는데.
무척 심성이 고운 사람인데……
다음에 만나면 라면을 함께 먹어야 겠다. 2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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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에서 우연히 발견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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