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어렸을 때 꿈꾸던 장밋빛 가득한 세상과는 다른 현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비겁한 사람이 승승장구하고, 넘어진 이들에게 손을 내밀던 사마리아인은 빈한한 삶을 살아가며 도리어 그들을 밟고 지나간 바리새인들이 부귀영화를 누립니다.
조금 더 시야를 넓게 바라보아도 이런 부당함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세상사가 모두 그러한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죠. 친일파의 후세들은 득세하며,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은 여전히 세상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들에게 저항하며 불의를 타파하고자 한 독립군의 후예들은 폐지를 모으지 않으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버겁고, 식민지배를 받던 국가의 국민들은 여전히 매일 몇 달러 되지 않는 돈을 벌기 위해 고된 노동을 해야 합니다.
과거의 성현들도 이러한 세상살이의 모순을 잘 알았는지 이에 관한 여러가지 말들을 내놓았습니다. 아마 이 중 가장 유명한 격언 중 하나는 노자의 말일 겁니다. 그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한탄합니다.
天地不仁, 以萬物而爲芻狗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아서,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
이러한 세상살이에 지쳐, 우리는 장르소설처럼 눈 돌릴 곳을 찾는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소설 속에서나마 우리는 정의로움이 승리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악인이 몰락하는 것을 꿈꿀 수 있습니다.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또는 시원하게 만듭니다.
제가 오늘 소개드리고자 하는 소설 <프롬, 은까마귀의 비상>은, 선인이 보답받고, 악인이 심판받는 어찌보면 전형적이고 유구한 주제의 소설입니다.
부모를 잃은 고아 프롬은 그를 길러준 두르스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와 함께 전장의 유류품들을 주워 파는 일을 합니다. 두르스는 위험한 일을 함께 하려는 프롬을 만류하지만 프롬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받은 은혜에 보답해야 하니까요. 두르스는 프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가 가진 마나 호흡법을 전수합니다. 이렇게 프롬은 전사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프롬의 스승이자 보호자인 두르스는 낙천적인 인물입니다. 또한 세상이 선량할 가능성을 신뢰하는, 난세에는 조금 독특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누구 한명이 손해를 보면 누구 한 명은 이득을 본다”는 대장장이 마르쿠스의 말에 이렇게 반문합니다.
“그냥 검을 든 놈이 검을 안든 놈을 보호해주면 안돼?
검 든 놈이 지치면 검 안 든 놈이 검을 들고 보호해주고 말이야. 그럼 서로 이득 아닌가?”
이러한 성향의 두르스의 밑에서 자라서인지 프롬 역시 세상의 불의에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부정마나에 오염되어 고통받는 삵을 죽이기보다 짐승의 부정마나를 없애는 길을 찾으려 하고, 남들에게 배척받는 흑마법사의 요청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아무에게나 선량하고 친절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의 위에 군림하려는 ‘신시대’라는 집단처럼 명백한 악인에게는 자비를 배풀지 않습니다.
프롬이 사는 시대는 혼란합니다. 각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수없이 전쟁을 벌이고, 악인들은 넘쳐나며, 힘없는 자들은 하늘만 바라본채 고통에 울부짖습니다. 프롬은 이러한 시대를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티에스님은 선하고자 하는 자에게 합당한 보상을 주는 세상이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헛소리지. 애초에 선하고자 하는 자는 보상을 바라지도 않아. 바라지 않는 자에게 오는 행운이 있었던가? 보상도 선하고자 하는 자에게 다가가지 않는 법이지”
선량함이 조롱받는 세상에서, 프롬은 진리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를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합니다. 그의 모험을 지켜보며 응원하는 일은 분명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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