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명 : 상실의 시대
출판사 : 문학사상사
(* 본 감상문은 가능한한 줄거리의 나열을 배제하고 읽은 뒤의 느낌만을 열거한 글입니다.)
내면의 고찰이란 건 일상에 있어서는 가장 접할 기회가 흔한 느낌임에도 불구하고 글로 표현하자면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상실의 시대는 일종의 심리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시야가 협소하긴 합니다만 읽어본 일본 소설 중에선 드물게 1인칭 구도를 잡고 있었고, 인간 내면의 다양한 욕구에 대해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선 외국 소설 특유의 맛이라고 할까요? 어쩌면 일본 소설 자체의 특징일지 모르겠지만 약간 변태적인 면까지도 확실하게 '일본 소설을 읽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그런 글이었습니다.
포장에 대해,
상실의 시대 겉봉에 보면 '천만 부 실적을 올린 베스트 셀러', 혹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문인'이라는 등 감히 일개 개인으로서는 범접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미사어구로 본 작을 수식하고 있습니다.
책을 집어드는 순간 그 내용의 양질을 가늠하는 척도 가운데 본인이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수상 경력'과 '작가의 프로필'이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이 소설은 스쳐도 사망.. 이 아니라 스쳐도 합격이라는 평점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평가를 얻었던 소설입니다. 가히 작품이라는 말이 무색하고, 일본 최고의 소설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적도 있기에 사전 조사 없이 이 책을 손에 들었다면 분명 독자들은 이 작품을 수식하고 있는 겉포장에 매료될 것입니다.
내용에 대해,
하지만 이 책을 펼쳐 읽는 순간 독자는 혼동할 수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로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에 발을 디딘다면, 그건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은 어쩌면 연애소설이고, 심리소설이며, 야설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을 시점 별로 평가하자면 책 한 권 분량 이상이 나올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상실의 시대는 꾸밈이 없고, 직설적이며 또한 노골적인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정밀하게 되어 있어 결벽한 독자라면 불결함을 느낄지 모르겠으나, 내용 전체와 짜맞추어가면 '거기선 그 내용이 나와야만 했으니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독자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性은 숭고한 것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이해받기 힘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배제하고라도, 이 소설은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스토리가 있는 소설입니다.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 때문에 고등학생 이하 연령층이 읽기에는 다소 적합치 않을 수 있으나, 제가 눈을 둔 곳은 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전체적인 틀, 이른바 라인을 따라가면 얻을 수 있는 독특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기즈키와 나오코, 하쓰미와 나가사와(이름이 맞는지 모르겠군요.), 미도리와 그녀의 애인, 그리고 나오코와 레이코.
이 소설에는 정말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그들 모두가 나름의 관계도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도를 벤 다이어그램으로 만들면 언제나 원이 겹쳐지는 부분엔 와타나베라고 하는 '나'가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삼각 관계를 삼각형이라 치면 이 소설엔 수많은 삼각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꼭짓점이 서로서로 맞물려 있는 형태입니다.
기즈키가 자살해야만 했던 이유, 나가사와가 문란하게 사는 이유, 친구인 '돌격대'가 사라진 이유 등.
상실의 시대에선 이해할 수 없고,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고찰과 방황을 메인 코스로 하고 있는 걸 보면, 어쩌면 이 소설의 모티브는 '남겨진 자들이 가지는 고뇌' 쯤이 아닐까 싶네요.
이 소설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비틀어져 있습니다.
'나'와 즐겁게 당구를 치고 돌아간 날 밤에 차고에서 자살해버린 기즈키.
서로 사랑하는 여자친구의 묵인 하에 수없이 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나가사와.
애인이 있으면서도 '나'에게 호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미도리.
비극적인 과거를 가진 레이코.
그리고 끝까지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해 버리는 나오코에 이르기까지.
'나'라고 하는, 어쩌면 평범한 남자에게 있어서는 다소 가혹한 환경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그 환경의 그림자를 좇다가, 마지막에 가서 미도리를 선택하기로 결정한 '나'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그녀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그리고 미도리가 그에게 감정 없는 목소리로 남겼던 마지막 한 마디가 마음에 남습니다.
'─자기,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이 말은 후에 평론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다양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가 둘러본 주위는 말할 것도 없이 공중전화 부스였을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헤매다 들어간 곳이라도 그 지역의 위치를 정확히 모를 리는 없으니, 역시 그 말은 상징적인 요소라고 보는 편이 맞겠죠.
결국 그 거친 톱니바퀴 속에서 '나'는 혼란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것을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미쳐 있고, 끝까지 살아남으려 필사적이던 주인공 역시 마지막에 모든 것이 끝나고, 그대로 미쳐버렸는지도 모르지요.
사람의 죽음을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에게서는 약간이지만 죽음의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식의 성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주인공의 쿨한 면모를 볼 때마다 나는 의식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차라리 그가 고민하지 말고 밀어붙였다면, 줄일 수 있는 피해라는 것도 있었을 법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 건, 그만큼 이 소설이 철저하게 리얼리티에 입각했다는 점을 반영해주고 있습니다. 소설이라서 가능할 법한 이야기는 이 소설에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관점을 바꾸면 분명히 존재했던 이야기, 시야를 달리 하면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 이야기가 이 소설에 있습니다.
모든 부분에서 눈을 떼기 어려웠지만, 저는 이 마지막 부분이 임펙트가 강렬했다고 생각되네요.
관계에 대해,
남자와 여자라는 건, 사실 미묘한 관계입니다.
주인공인 '나'가 미도리와 친구로써 만나 노골적으로 되었던 것을 보면, 이 소설에서는 친구와 연인 따위의 경계 같은 건 구분짓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친구의 연인이었던 나오코와 잠자리를 같이 했을 리도 없고, 기즈키가 죽었다고 해서 간단히 '나'에게 넘어와버릴 만큼 나오코가 기즈키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도 아닙니다. 나오코는 물론 '나'를 좋아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고, 분명 그 관계를 가질 때쯤엔 기즈키와 '나'의 비중을 저울로 달아볼 때 기즈키 쪽에 압도적인 무게로 기울어질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뭘까요.
뭐, 말할 것도 없이 그런 겁니다. '친구'끼리의 관계에 대한 해석입니다.
미도리와 나오코, 그리고 40대의 중년인 레이코 씨도 주인공 '나'에겐 친구입니다.
친구인 그녀들과 노골적인 대화를 하고, 서로 관계를 가지고, 그러나 끝끝내 사랑에 관한 언급은 나오지 않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의 '남녀간의 우정'이라는 것은, 어쩌면 세간의 시선에선 약간 변질된 형태의 해석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입장에 따라서는 굉장히 기쁠 수도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기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 소설은 포르노의 재해석이라는 평가가 있고,
일본인의 변태스러움을 문란한 형태로 표현했다고 역설하는 평론가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소설 안에 섹스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이란 그 노골적임 속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찾는 것에도 나름의 비중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꿈보다 해몽이 좋고 배보다 배꼽이 큰 평가일지 모르겠으나,
이 소설은 단순히 야설이나 포르노 따위로 끝날 리 없는 소설이었습니다.
그 내면 심리의 고찰을 글로써 평가하는 게 어려워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지만, 읽고 나면 그것만으로도 크게 '건져가는' 그런 느낌이 있었습니다.
물론 독특한 문장이라고도 하기 어려웠고, 솔직히 말하면 문장력 자체는 평범한 축이라고 생각될 정도였지만 막히지 않고 풀어가는 글의 진행 능력이 뛰어나고 섬세하고 세밀했으며 이 작가의 소설은 이 작가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맛이 있다고 생각되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평가에 대해,
뭐어, 앞서 말한 모든 면면이 이 글에 대한 평가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단도 직입적으로 한 마디로 정리하라고 한다면
제가 이 글을 읽고 나서 했던 감상은 대단치는 않습니다.
"멋진 글을 읽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격책 이상의 두께를 가진 상실의 시대를 한 번의 막힘 없이 읽어낼 수 있었다는 것, 제 집중력을 능가하는 이 소설의 몰입도만으로도 극찬할 만 합니다.
세간의 평가는 다소 과장된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소설 자체는 분명 훌륭하니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도 여운이 남았을 그런 소설이라는 평가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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