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비단치마, 2005
저자 : 이형진
출판 : 느림보
작성 : 2010.04.12.
“왜 청이는 효녀로 불리는가?”
-즉흥 감상-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1813’을 사골 우려먹기로 비유하듯, 우리의 고전 속에서도 재탕에 재탕을 자랑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심청왕후전 沈淸王后傳’으로도 불리는 이야기에 새로운 시점을 선물 받은 만남이 있었다는 것으로, 소개의 시간을 조금 가져볼까 하는군요.
작품은 이글거리는 붉은 배경과 그 한가운데 서있는, 무엇인가 불만으로 가득한 얼굴을 가진 소녀의 표지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리고는 엄마 없이, 눈먼 아버지를 대신해 산비탈의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열심히 살아왔음을 말하게 되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중국 상인들이 물귀신을 달래기 위한 사례금을 제시하였고, 그 액수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대가와 일치한다는 사실에 그들을 따라가게 됩니다. 하지만 정신 사나운 악기소리와 성난 파도에 겁에 질린 소녀가 결국 죽기 싫다 말하게 되는데요. 상인들과 소녀의 신경전도 잠시, 거대한 파도가 그들 모두를 집어삼켜버리고 마는데…….
아아! 재미있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현태로 만나왔기에 익숙한 이야기였지만, ‘효를 강조하는 유교사상과 인과응보의 불교사상’으로 무장한 것이 아닌 어린 청이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산뜻한 충격으로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어린친구를 발견하는 등 입체적인 감상과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청이는 어린 소녀입니다. 힘들게 살아왔기에 나름의 인생철학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어린 친구입니다. 그건 공양미 삼백 석 보다는 고운 ‘비단치마’에 혹하는 모습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책임을 피하고자 울부짖는 모습을 통해 이것이야말로 어린아이의 참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그래도 가정교육이 잘 되어있었는지, 아니면 출신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주위의 반응이 식어버렸음에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기적적으로 상봉한 아버지와 진정한 행복을 찾아 떠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시 적어보면, 어린아이다운 단순화된 계산과 행동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속으로는 진실 된 자아를 찾아나가는 여정이 담겨있다 받아들여 볼 수 있었는데요. 소리 내어 읽어도 재미있는 것이, 오는 명절로 아기조카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읽어주고 싶어졌습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만나본 청이는 과연 ‘효녀’라 불릴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아니’라 말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어른들의 오만하고 편견으로 가득한 잣대가 당돌하고 위험천만한 소녀의 이야기를 ‘효녀 신화’로 낙인 찍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데요. 계속되는 조사를 통해 이번 동화의 다양한 판본들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으니, 또 어떤 다른 접근 점들을 준비하고 있을지 기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어린 청이의 시점이기에 그녀의 친엄마인 곽씨 부인과 아버지의 재혼녀인 뺑덕어멈의 등장이 없었던 것은 그러려니 넘기며, 심청전 그 자체의 신화적이고 비현실적 교훈에 대해 현실적 재접근을 시도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는 것으로, 이번 기록은 여기서 마쳐볼까 합니다.
TEXT No. 1194
[BOOK CAFE A.ZaMoNe]
[아.자모네] A.ZaMoNe's 무한오타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