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에 초점을 맞춰 상황을 서술해볼게요.
진상아줌마 : 날이 더워서 우체국 정문에 차를 주차시켰어요. 근데 어떤 남자가 와서 차를 뺴라고 하네요? 내 차 내가 대겠다는데 왠 오지랍이야 라는 생각에 반말로 깠어요. 그랬더니 남자가 욕을 하는군요. 나이도 어린 놈이 쌍욕을 하니 참을 수 없어 같이 쌍욕을 시전했어요. 불법주차를 했지만 끝까지 제가 잘못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상아줌마 아들 : 등기부치고 있는데 저쪽에서 어떤 덩치큰 남자랑 엄마가 싸우고 있어요.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갔더니 전후사정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그 남자가 쌍욕을 하네요. 말이 너무 심한거 아니냐고 되물었다가 병X아 라고 욕만 먹었어요. 분명 우리 어 엄마가 잘못한 건 맞는데 왜 등기부치던 저도 욕을 먹어야 하는 걸까요. 그래도 가족이 잘못을 했고 몸도 왜소하니 덩치크고 목소리 큰 분 앞에선 쭈구리로 있어야 겠죠.
다른고객들 : 우체국에서 차례 기다리고 있는데 덩치큰 남자가 와서 아줌마랑 싸우기 시작하면서 큰 소리로 우체국이 떠나가라 싸우는데 대충 들어보니 아줌마가 잘못한 것 같더라고요. 진상아줌마 같았어요. 그런데 남자가 갑자기 우체국 직원들한테도 욕을 하고 고함지르면서 국장 나오라고 깽판을 치네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대충 듣기에 남자쪽이 옳은 것 같아 편 들어주고 싶었는데 남자도 진상으로 변하는 걸 보면서 빨리 우체국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정의가 불의와 싸운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불의와 불의의 싸움이었던거 아니겠어요.
우체국과장 : 덩치 큰 남자가 위협적으로 고함을 지르고 쌍욕을 하면서 진상아줌마랑 싸우고 있네요. 뛰어나가서 말려야하는데 당황스럽고 또 너무 과격하게 난리를 피우고 있어 선뜻 발이 나가지 않아요. 그래도 과장이니까 나가서 고개를 조아리고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죠. 내 하나뿐인 직장인데 처자식 먹여살리려면 자존심이 무슨 상관인가요? 나이 먹은 과장이 죄인처럼 굽신거리니 이제 기분이 좀 풀리나보요. 다행이에요. 정문에 주차했는지 안 했는지 실시간으로 알아 볼 방법이 없는데 다짜고짜 욕하고 난동부린 사람이 원망스럽지만 어쩌겠어요. 민원 들어오면 손해보는 건 우린데.
우체국국장 : 그래요. 우체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다 제 책임이에요. 이젠 우체국에서 모기한테 물려도 “국장 X새끼야 나와. 나와 이 새끼야.” 라고 욕할 것 같아요. 우체국에 주차요원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주차하지 말라고 표지판 세워 놓았는데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주차하는 걸 어떻게 막나요? 주차한 걸 알고나서도 우리가 아무 행동을 안 했다면 우리 잘못인데 다짜고짜 욕 먹고 나니 세상살이 참 고달픕니다. 인력 충원해서 우체국 주차요원이라도 뽑거나 정문 전담 관찰요원이라도 뽑아야겠어요.
그 분 : 날도 더운데 누가 우체국 정문에 주차를 해서 피해를 줬어요. 짜증이 났어요. 그래서 청원경찰에게 말하는데 진상아줌마가 도리어 역정을 내더라고요. 심지어 반말로. 그래서 저도 반말에 욕설까지 얹어줬죠. 전 진상을 보면 참을 수 없으니까요. 멀리서 아들이 오네요. 일단 아들이 뭐라 말하기 전에 욕부터 해줘야겠어요. 전 짜증이 났으니까요. 다짜고짜 쌍욕을 해줬더니 아들이 감히 저에게 말씀이 심하다고 하시네요. 말씀이 심한건 너희 엄마인데 저한테 심하다고 하니 더 화가 나서 쌍욕을 해줬어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애초에 24시간 동안 정문을 감시하며 불법주차를 하지 못 하도록 막지 못 한 우체국 직원들에게 짜증이 나지 않겠어요? 그래서 책임자인 국장을 불러내려고 했어요. 물론 곱게 말하지 않죠. 전 성격이 좋지 않으니까요. “국장 X새끼야 나와.” 라고 고함 좀 질러줬더니 나이 좀 있는 과장이 나와서 고개를 조아리며 굽신굽신 거리네요. 아 이제 뭔가 내 의견이 관철되는 것 같아 기분이 풀립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으면 될 것을 말이죠. 전 욕한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에게 욕하도록 만든 사람들이 잘못이니까요. 처음부터 욕 안 나오게 24시간 정문을 감시하면 되지 왜 내가 불필요하게 정문에 불법주차된 걸 보도록 만드나요? 등기부치다 전후사정 모른 채 욕 먹은 아들도, 우체국 안에서 차례 기다리다 못볼꼴 본 다른 고객들도, 국장실에도 업무보다가 X새끼 라고 욕 먹은 국장도, 나이 어린 고객한테 감히 대꾸할 엄두도 못 내고 무조건 죄송하다고 굽신거리면서 고개 조아리는 과장도 다 내 알 바 아니에요. 왜냐면 남들이 다 틀렸다고 해도 나는 내가 옳다고 하는 일을 했으니까요. 그게 비록 타인을 욕하고 비난 하는 행위일지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게 옳은 거에요. 자꾸 나한테 왜 욕했냐고 뭐라고 하는데 그럴거면 애초에 욕할 상황을 만들지 말던가요. 물론 그 욕할 상황이라는 건 내 기준이에요. 세상은 내 마음이니까요.
우체국 직원들 : 아 오늘 진상아줌마랑 진상남자랑 와서 둘이 진상짓 하다 갔어요. 재수 옴 붙은 날이었어요.
나 : 세상은 넓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로 넘처나는 것 같아요. 오늘도 정담은 평화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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