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짧은 소견으로 넘겨짚어 생각해 보니, 게임 소설은 일종의 대체제라는 느낌이 듭니다. 문피아 주 이용자들은 컴퓨터로, 스마트폰으로 글을 찾고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소양을 갖추고 있고, 이런 사람들 중에서 게임을 안 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복잡한 것이든, 쉬운 것이든 모두가 게임을 즐긴 경험이 있겠지요.
하지만 다수의 이용자들은 학교를 가는 학생이거나, 수업을 듣는 대학생이거나,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입니다. 학교든 직장이든 공통된 점이 있다면, 바로 ‘게임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이겠네요. 물론 학교와 직장이 천편일률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게임이란 걸 학교든 직장에서든 맘 놓고 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 대체제로 부상한 것이 게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게임과는 달리, 옆에서 누가 흘낏 보더라도 글 읽는 걸로 보이지 세세한 내용까진 보기 힘든 게 사실이고 또 게임과는 달리 언제든 완급 조절을 할 수 있습니다. 게임은 몬스터를 잡든 뭘 하든 간에 특정 행위를 시작하고 나면 도중에 잠깐 멈추기가 애매하기 마련인데, 게임소설은 그렇지 않죠. 수업을 듣는 중에 잠깐 볼 수도 있고, 출근길에 짤막하게 한 편 볼 수도 있고, 쉬는 시간에 보고 일해야 할 때 꺼놓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자율성’ 면에선 게임을 절대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모두의 눈에 읽히는 소설은 그 자체로 이미 정해진 구조로 진행되고 있지만, 게임은 플레이어 본인이 어떻게 조작하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바뀌거든요. 하지만 게임이든 게임 소설이든, 몬스터를 잡아 득템을 하고 레벨업을 한다는 핵심적인 목표는 같기 때문에 자율성이 없어도 일정한 재미를 보장합니다. 득템과 레벨업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최근 범람하는 게임소설들의 문장이 하나같이 간결하고 짤막한 것도, 독자들에게 정보만을 빠르게 주입하는 것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라고 보여집니다. 문장이 구구절절 길어질수록 레벨업을 빨리 한다는 느낌을 주기가 어려울 테니까요. 게다가 여기서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조건이 있는데, 바로 ‘다같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강해진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빠른 전개를 위해선 캐릭터의 완성도나 깊이에 얽매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따라서 여러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나 깊이에 대해 탐미하는 것을 완전히 제쳐두고, 독자가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여 혼자 다 휩쓸고 다니느냐. 이것이 게임소설 장르의 주요 관건으로 자리잡힌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남주인공들이 하나같이 흑발에 무난한 헤어스타일에 눈을 가리고 성격도 별 특징이 없어 보이는 점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요. 주인공의 몰개성이 하나의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읽는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동화되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입니다. 별 특징없이 무난한 성격이니 빨리 몰입할 수 있고, 몰입이 잘 되었다면 레벨업과 여캐릭터와의 썸씽, 아이템 획득 등에 더 큰 희열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이래저래 말이 길어졌는데, 함축해서 말하자면 ‘게임소설은 텍스트의 형식을 빌린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문장의 스킬이나 구성의 짜임새, 서사의 완성도 같은 건 자연스럽게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고 봐요. 갈등 구조가 복잡하고, 캐릭터의 물리적 능력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이 성장하는 것 따윈 오히려 게임소설의 장점(빠른 진행, 호쾌한 스토리텔링 등)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지요. 그런 것에 신경쓸 여력을 온전히 자극적인 방면으로 집중시킨 것이 현재의 게임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환상문학을 좋아하고, 또 쓰는 입장에서 현재 게임소설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그릇됐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일장일단이 있는 것이고, 많은 독자분들이 열광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제가 불만스럽게 바라보는 것이 있는데, 바로 뻔한 것만 찾아보면서 ‘요즘 소설 다 거기서 거기다’ 라는 소리를 하는 극소수의 분들입니다. 한담만 가봐도 대세는 아니지만 좋은 스토리와 필력을 가진 양질의 작품들이 거론되는데 말이죠. 물론 뻔한 것만 찾아보면서 뻔하다고 말하는 사람 한정해서 하는 말입니다. 정말 엄청난 독서량으로 어지간한 소설들을 모조리 꿰신 분들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요. 뿐만 아니라 문피아든 조아랫동네든 베스트를 점령하고 있는 소설들 태반이 게임물이라서 반감을 가지신 경우도 왕왕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레이드니 헌터니 하는 게임소설의 부류들이 왜 강세인지에 대해 나름대로 고찰해 보고 제가 내린 결론은, ‘그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특성 상 뭐 하나만 히트했다 하면 우르르 따라하는 카피캣들이 많을 뿐이지, 타인의 모방 본능을 자극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컨텐츠는 그 자체로도 충분한 가치를 입증한 셈이지 않겠습니까? 허니버터칩 열풍 이후 개나 소나 허니버터맛을 내는 것도, 나는 귀족이다 이후로 게임소설이 범람하는 것도. 물론 아주 올바른 현상이라곤 말할 수 없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허니버터칩은 확실히 맛이 있긴 하다는 것. 그리고 게임소설만의 매력에는 확실히 사람들을 열광시킬 만한 세일즈 포인트가 있다는 것. 바로 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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