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공모전 순위 확인하고 절망하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 이야기 한편 투척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인터넷이라는 게 막 등장했던 시절입니다. 정확한 연도는 밝히지 않을게요. 제 나이가 탄로나니까--;;
요 인터넷이라는 세상이 하도 희한해서 뭐. 별일들이 다 있었습니다. 우선, 컨텐츠가 너무 없었던 시절이라 조금만 컨텐츠를 가진 사람이면 약간 이름을 날릴 수 있었죠. 실은 그 시절 저도 모 포털사이트 메인페이지에 ‘***의 문학세상’이라는 코너를 쓰고 있었구요. 문학이론이나 문학사, 그런 걸 연재했던 기억이 있네요. 버나드 쇼나 샤르트르에 관련된 에피소드만 써도 컨텐츠가 되는 여튼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팬층도 형성되고 하루에 1000통의 메일을 받는 날도 있었답니다.^^
판타지라는 장르는 물론 없었구요. 무협 소설 작가는 작가라는 말도 못 꺼내던 시절이었습니다. 대중 소설 작가는 작가 취급도 안 하던 시절, 장르는 본격 문학밖에 없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세계였습니다. 주제도 세익스피어 작품 속의 등장 인물의 심리를 철학적으로 분석한다든가...당시 약간 유행하던 러시아 문학에 대한 비평 같은 게 주류였답니다.
당시 작가가 되는 길은 오로지 신춘문예였습죠. 작가 지망생들이 모이는 모 사이트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이번에는 자기라는 절대 믿음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이니 분위기도 살벌했습니다. 그러다 12월 말이 되면 난리가 나죠. 자신의 작품이 당선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노로 바뀝니다. 모두 이를 박박 갑니다.
1월 1일 신춘문예 작품이 실리면 모두가 벌떼처럼 달려 들어 작품을 분석합니다. 문장력, 캐릭터들의 당위성, 개연성, 문체, 철학적 깊이까지 아주 살벌하게 발라버렸죠.^^
당시에는 이런 분도 있었네요. 자신은 실력은 충분한데 돈이 없어서 작품을 쓰지 못한다. 내가 글에 매진할 수 있도록 좀 쏘아달라. 유명해지면 다 갚겠다....
이 분,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셨고 대학 교수까지 되셨습니다. 이 분 공중파나 신문에서 뵐 때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까 싶어서 픽하고 웃음이 납니다. 자신도 너무 부끄럽겠죠. 필시..ㅎㅎ
당시는 정말 온라인 세상이라는 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과도기였던 것 같습니다.
공모전 고순위에 계신 분들의 작품들 읽어보니 좀 어이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일정 정도의 문장력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요즘은 이렇게 다들 글을 잘 쓰시는구나 싶어서 놀라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디 노인정에서 주최하는 공모전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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