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뭐 철학 전공도 아니고, 미학이야 대학교 교양 수업으로 대강 들어본 것이 전부입니다. 미학에 대해 이렇고 저렇고 말할 입장은 전혀 아니지요. 전 처음에 미학 전공인 누나한테 그림 잘그리시냐고 물어봤을 정도이니까요.
인터넷 사전의 힘을 빌리자면, 미학이란.
<철학> 자연이나 인생 및 예술 따위에 담긴 미의 본질과 구조를 해명하는 학문.
정도가 됩니다.
사실, 어저께 강호정담을 뜨겁게 달궜던 ‘무엇이 명작인가.’, ‘판타지 무협 소설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문제들 역시 미학에서 주로 나누는 화제에 포함됩니다.
미학 수업 때 재밌는 주제가 참 많았습니다. 주로 교수님이 묻고 우리가 답하면, 교수님이 다시 묻는 형식이었지요.
1) 어떤 예술품이 명작인가. -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면 명작이다.
2) 지나가던 껌딱지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면 명작인가? - 그건 아닌 것 같다.
3) 뭉크의 절규를 명작이라고 가정하자. 이에 대한 완벽한 복제본이 존재한다면 그것 또한 명작이냐? - 그건 아닌 거 같다. - 그게 보는 이에게 동등한 감동을 준다 해도 말이냐? - 음, 그런가. 잘 모르겠다.
4) 회화나 조소가 아닌 만화책도 명작이 될 수 있는가? - 될 수 있다. - 그럼 이 경우 모든 복제품이 명작이 되는 건가?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 그렇다면 이 경우 원본과 복제품의 가치는 동등한가?
5) 재현representation, 복제duplication, 인식congnition, 함축implication, 지칭denote 등에 대한 논의들.
정말 대학시절 들었던 강의들 통틀어서 가장 골치아팠던 수업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미학의 주제라는 것들이 보통 “답이 없었”거든요. 교수님도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학자도 있고, 반대로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말씀하셨지,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말씀하시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태생이 공돌공돌한 저한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지요. 수업이 끝나고 나면, ‘그래서 결론이 어떻다는 거야. 이게 기야 아니야.’ 혼자서 머리를 쥐어 뜯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레포트에 ‘교수님. 이건 답이 없는 노답 문제인 것 같습니다.’ 라고 써서 낼 수도 없고 말이죠.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명작이란 무엇인가.’라는 논제는 원래 쉬이 답이 나오지 않는 녀석이니 그렇게 심력 소모하실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설사 열심히 생각하고 논리를 짜맞춰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일 지는 정말 알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다수결로 떡하니 이게 정답이다 라고 정해버릴 수도 없습니다. 또 그렇다고 남들은 다 아니라고 하는데 나만 맞다고 우기는 내용이 정답이 될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이 주제에 대해서 흥미가 있거나, 자신의 생각을 검증해 보고 싶으신 분들은, 가까운 서점에서 미학책을 찾아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거기에는 지난 수천년 동안 인류 최고의 지성이라 불렸던 사람들이 부딪치고 모이며 진행시켜온 사고의 큰 줄기가 있으니까요.
아무튼 옛날 수업 생각도 나며, 나도 책이나 찾아볼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던 하루였습니다.
건전한 토론이야 좋지만, 노답 문제에 서로 감정 상하고 심력 소모하시는 것 같아 몇 글자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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