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궁수 하면 보병이 전열을 맞춰서 전선을 유지할 때 후방에서 활이나 쏘는, 간단히 말하자면 근탱과 원딜의 관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현실은 그것보다는 더 복잡합니다. 우선 활이 무엇입니까? 쏴서 맞추는 것입니다. 쏴서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하지요? 우선 화살의 세기가 충분히 강해야하고, 쏘아서 맞출만한 거리가 있어야하고, 화살이 날아가서 목표를 맞출 수 있도록 궁수의 현 위치와 목표 사이에 장애물이 없어야만합니다. 즉,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궁수는 대다수의 경우 보병의 뒤가 아니라 보병의 앞에, 즉 최전열에 배치되었습니다. 보병의 뒤에 있으면 보병이 시야를 가려서 목표가 아니라 보병의 등이나 맞출테니까요. 곡사로 쏘면 안 되냐고요? 최전열이라해도 거리가 제법 되니 적이 공격해오면 뒤로 도망치면 되지 않냐고요? 현실은 그것보다는 좀 더 복잡합니다.
우선 활은 흔히 생각하는 것 만큼 강한 무기가 아닙니다. 영국 롱보우의 사거리는 150미터였지만 이건 말 그대로 이론상의 최대 사거리고 영국 롱보우로 150미터 밖의 목표를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150미터나 되는 거리를 날아가고 난 후라면 화살의 힘이 거의 약해져서 쇠갑옷은 커녕 솜 갬비슨도 뚫기 힘들었죠. 곡사라면 어떻겠습니까? 애초에 곡사가 무엇입니까? 화살이 날아가다가 공기저항에 힘 다 잃고 중력 때문에 비실거리며 추락하는거 아닙니까? 제대로 된 방어구를 갖춘 제대로 된 부대를 상대라면 그저 화살낭비일 뿐입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활은 거의 대다수의 경우 직사로 쐈습니다. 게다가 직사로 쏜다해도 실질적인 유효사거리는 20~30m 내외였고 이 거리를 흔히 킬존이라 부릅니다. 특수한 화살촉을 달아서 만든 갑옷관통용 화살을 무려 180~200 파운드 짜리 롱보우를 이용해 직사로 발사해도 20~30m 거리가 아니면 갑옷을 뚫고 유효타를 날릴 수 없었다는 뜻이지요. 갑옷을 괜히 입는 것은 아닙니다. 즉, 궁수는 직사로 발사하기 위해 보병의 뒤가 아닌 보병의 앞에 배치되야만 했고 실질적인 타격은 20~30m 거리, 말을 탔던 맨발이던 상관없이 전력질주하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었기에 멀리서 깔짝이다 그냥 후퇴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보병이나 기병보다는 궁병이 더 위험한 삶을 살았다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중세 후기가 되면 보통 각 병과들을 분리해서 배치하는 대신 모든 병과 모든 병력을 하나로 뭉쳐서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만들곤 했었습니다. 궁수의 옆에는 파이크병이 배치되서 기병과 적 보병의 접근을 방지하고 그 파이크병 옆에는 할버드병이나 양손검병이 배치되서 기병이 파이크 전열과 충돌하면 파이크로는 갑옷을 관통하기 힘드니 대신 처리하곤 했습니다. 란츠크네히트, 중세 후기의 독일 용병단하면 단순히 파이크 용병단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란츠크네히트는 그저 복장 이름일 뿐이고 그 용병단 안에는 파이크병, 할버드병, 흔히 도플졸드너라 불리는 쯔바이핸더로 무장한 양손검병, 석궁병, 궁수, 아퀘부지어, 온갖 종류의 병사들이 그냥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서 있었습니다. 이 덩어리는 원거리 공격, 원거리 방어, 중거리 공격, 중거리 방어, 근거리 공격, 근거리 방어,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만능이나 다름없는 그야말로 팔방미인 덩어리였고 언제 어디에서 어느때나 어떻게든 사용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아직까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통용되던 때니까요. 나중에 근대로 가면 대포의 정확도와 대포의 위력이 증가해서 뭉치면 죽고 흩어져도 죽지만 뭉칠 때보다는 덜 죽는다로 변하지만 그건 나중의 얘기입니다. 그냥 한번 떠올라서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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