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제가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는 문피아에서 작품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있었어도 보통은 작가님들의 개인적인 문제가 대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피아에서 가장 히트친 작품중 하나인 전독시의 전개상 문제라던가, 전독시에 관련된 타 작가님과의 마찰도 있었죠. 연재 중단 문제라면 연중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나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탑 매니지먼트 문제가 있겠네요. 그 외 제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작품상의 문제는 표절 논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아카데미 검은머리 외국인은 결이 다른 것 같습니다. 문피아에서 서비스 되는 작품의 내용/구성에서 작가님의 의중을 무시하고 매니지먼트가 독단적으로 검열한건 제가 알기로 처음입니다. 불만을 토해봐야 앵무새마냥 “아닌데요? 작가님 컨펌 받았는데요?” 라고 할 것이 뻔하겠지만, 그게 어디 작가님 의지겠습니까? 갑이 문피아인데.
솔직히 전개상의 서술을 뜯어고치는 천인공노할 짓은 아니지만, 다른 독자분들이 이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페미니즘 이슈같은 것도 물론 영향이 있겠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오랫동안 문피아를 이용해왔던 일개 독자로서 이 사건이 왜 중대한 문제인지를 짚어보려고 합니다.
문피아는 타 플랫폼과 다르게, 십 년이 넘는 세월동안 “작가 친화적인” 플랫폼을 표방해왔습니다. 작가 친화적인 정책은, 작가님들이 좋은 글을 쓰면 평가받을 수 있다, 그리고 무명이라도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문피아는 서포트하고, 독자는 더 재미있고 트렌디한 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작가-독자간 신뢰관계를 구축함에 분명히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작가 친화적인 행보가 독자의 입장에서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타 플랫폼과 비교를 해도 문피아의 과금 정책은 환원이 거의 없어서 기본적으로 비싼 편이고, 또한 앱 수수료(그리고 그로 인한 작가 수입 감소)를 이유로 스마트폰에서의 과금을 억제하기 때문에 독자는 항상 서비스 이용에 불편함을 강요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피아를 왜 이용하는가, 그 답은 “더 재미있고 트렌디한, 그리고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이 많으니까” 입니다.
그런데, 이번 아카데미 검은머리 외국인 표지 검열 사태는 이런 작가-독자간의 신뢰관계에 문피아라는 플랫폼이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입니다. 문피아에서 작가가 연재하는 소설은, 그 모든 책임을 기본적으로 작가가 지고 갑니다. 표지 관련 논란이 일더라도, 그것은 표지 작업을 안일하게 컨펌한 작가의 책임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 없다”의 초기 표지나 “소년만화에서 살아남기”의 표지가 공개되었을 때의 반응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다릅니다. 작가인 노빠꾸맨님은 그 누구보다 자신이 쓰는 소설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었고, 가공개본에서는 분명히 그런 점을 잘 반영한 일러스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니지먼트의 개입 이후로 수정된 표지는 이 소설의 특징을 죽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인체비례등 퀄리티 또한 조잡해졌습니다.
저를 포함한 독자분들이 우려하는 부분은 크게는 표현의 자유일 것이고, 작게는 자신이 보는 작품이 작가의 책임 하에서 전개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남기고 싶습니다.
1. 단순히 표지의 수정을 넘어, 앞으로 작가의 개성 넘치는 작품에 나오는 표현이 ‘유통상의 이유로’ 검열된다면, 이런 개악으로 인해 작가님이 서비스하는 작품의 장기적인/잠재적인 매출이 줄어든다면, 문피아(혹은 매니지먼트)는 책임을 질 수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문피아의 책임을 인정하고, 작가님에게 기대 수익을 보전하고, 작품의 전개에 불만이 생긴 독자들에게 환불을 할 의향이 있습니까?
2. 그리고, 이러한 사태를 불러온 편집자는, 문피아가 십 년 넘게 쌓아온 작가 친화적인 문화를 한순간에 훼손한 것을 어떻게 회복할 것입니까?
만약 저 두 질문에 명확히 대답할 수 없다면,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저 자신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문피아에 실망했음을 밝히며 글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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