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먹었던 첫 사탕의 맛이 그리워지는 때가 있다.
그 맛은 유리구슬처럼 맑고 깨끗하며 복잡하지 않고 정직했다.
맛의 화려한 오케스트라에 익숙해진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신선함.
‘고급’ 입맛이 되어 싸구려의 소박한 행복을 순수하게 즐길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지금도 눈을 꾹 감고 사탕을 가만히 음미하면 어렴풋이 알 수가 있다.
제아무리 단순한 맛도 적극적으로 탐험하면 그전까지는 들리지 않았던 환상적인 맛의 멜로디를 연주한다는 사실을.
누룽지 사탕을 예로 들어보자.
고소하게 끓인 누룽지의 향을 담은 누룽지 사탕.
처음 입속에 넣는 순간은 매끈한 사탕의 촉감이 전해질 것이다.
(끄드-)
...아직이다.
지금 사탕을 씹어서는 그 진정한 맛을 알 수가 없다.
얕은 달달함이 퍼지는 지금 상태에 만족하지 말고 혀를 옆으로 꾹 밀어보자.
(꾸욱)
사탕을 이빨에 대고 굴리면 입속에서 울려 퍼지는 달그락 소리가 즐겁다.
아직 끝이 아니다. 조금 더 힘을 주어 밀어보자.
(꾸우욱-)
입안의 부드러운 벽에다 대고 사탕을 지그시 눌렀다 떼보면 데칼코마니처럼 까끌까끌한 설탕물이 묻어 마치 갓 구운 토스트와 같은 느낌이 나 즐겁다.
(할짝)
혀로 그것을 살짝 핥아 보자.
달콤함과 약간의 비릿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모래사장에서 두꺼비집을 가지고 놀던 기분으로 그 맛을 맘껏 즐겨보자.
(낼름)
이제 본격적으로 사탕의 맛을 즐길 차례다.
어금니에 대고 꾹 힘을 주어 여러 조각으로 부숴보자.
이빨이 상할까 봐 걱정된다고?
그럼 치과를 가면 된다.
용기를 가지도록 하자.
(끄득-!)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사탕을 혀로 가지고 놀아보자.
레고처럼 이리저리 맞춰봤다가 마구 휘저어놓다가 하면서 말이다.
그 놀이가 질리면 이제 조각 하나하나의 사연을 들어볼 차례다.
(낼름)
첫 번째 조각은 날카롭게 부서진 것이 참 성격이 나쁘다.
혀끝으로 뾰족한 모서리를 살살 달래 둥글둥글하게 만들어주자.
그렇게 하면 사탕 조각은 고맙다고 톡톡 쏘는 달콤함을 줄 것이다.
(낼름)
다음 조각은 움푹 들어간 것이 매끈한 도자기 그릇 같다.
마침 혀를 그 위에 올리니 딱 맞는 안정감이 든다.
열심히 일하느라 지쳤던 혀를 쉬어주는 겸 잠시 그 위에 올려두도록 하자.
혀뿌리까지 전해지는 부드러운 달콤함에 얼굴에 절로 미소가 필 것이다.
(낼름)
아, 이건 이빨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곱게 바스라진 가루다.
이런 녀석들은 동정심을 담아 혀로 한번 스윽 쓰다듬어주자.
금방 사라지고 마는 덧없는 달콤함은 녀석들의 산산히 부서진 꿈이다.
(끈적-)
이제 입속은 물컹하게 녹은 설탕물로 가득할 터.
지금부터는 숨을 참도록 하자.
(스읍-)
뱃속에 공기가 가득 차면 혀를 뒤로 살짝 기울여 사탕이었던 것을 뒤로 천천히 흘리자.
조금씩, 조금씩,
사탕물은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며 끈적하게 흔적을 남긴다.
(읍...읍...)
아직이다.
사탕물이 아직 다 뱃속으로 흘러들어가지 않았다.
극상의 맛을 위해 갑갑함은 조금만 더 참도록 하자.
(흡...! 흡...!)
좋아.
이제 숨을 아주 천천히,
코와 입을 통해 해방시켜주도록 하자.
(후우우우...)
공기가 몸속을 빠져나가면서 사탕의 마지막 향과 맛이 콧속을 덮친다.
고소한 누룽지의 향. 약간은 텁텁한 타액의 향과 사탕의 순수한 달콤함.
오로지 사탕을 먹은 장본인만 느낄 수 있는 복잡하고 특별한 맛이 바로 지금 느껴진다.
(후우...)
마지막 숨을 내보내고 나면 목구멍부터 은은한 달콤함이 퍼질 것이다.
뒷맛이라고 하던가.
그것은 사실 혀가 아닌 식도가 느끼는 맛일지도 모른다.
(꿀꺽.)
이렇게,
소박한 누룽지 사탕 하나와 함께했던 시간이 끝났다.
작은 경험도 모든 과정을 섬세하게 기억한다면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그저 간식을 먹는 기분으로 으드득 씹어버렸다면 놓쳐버리고 말았을,
누룽지 사탕만의 특별한 이야기이다.
아 누룽지 사탕 먹고 싶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