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작품의 주인공은 과거로 회귀하면서 책으로 가득찬 가상의 서고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고, 그 서고내의 글을 필사할때마다 글쓰기에 관한 본인의 능력이 향상되는 것으로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에게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회귀 후에 본인의 능력을 인식한 후 이런저런 백일장에 출전하고, 그 백일장에서 제시된 주제를 키워드로 가상의 도서관에서 글을 검색한 뒤, 해당하는 글을 필사해서 제출하는 것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더 권위가 높은 백일장으로 옮겨가는 행동을 보면 동킹콩 같은 게임에서 탐의 다음 층을 올라거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백일장에서 글을 제출해야 하는 제한시간의 태반은 키워드에 맞는 글을 검색해서 그 중에 한편을 선택하는데 쓰고, 글이 선택된 다음에는 남은 시간내에 그야말로 일필휘지로 ‘필사’를 하는 이 주인공을 ‘작가’라고 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의 내용대로라면 주인공은 작가가 아니라 속기사 아닌가요?
좋은 글을 필사하는 것은 꽤나 역사가 깊은 공부방법이고, 때로는 그 수련으로써의 필사의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뇌리에 각인된 문장이나 표현 때문에 표절 문제가 벌어지기도 한다고 대학원을 문창과로 나온 친구에게 들은 기억이 나기도 하고, 분야는 다르지만 제가 공부하는 쪽에서도 이른바 ‘모범답안’들을 필사해 보는것이 좋은 공부방법으로 추천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이 좋은 글을 접하고 필사를 계속하면서 실력을 키운 주인공이 결국 자기만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그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번의 백일장에서 우승을 하는동안 주인공은 자신이 정상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생에도 작가로서 활동을 하다가 좌절하고 회귀까지 한 인물의 창작과 표절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라는게 정말 황당하더군요.
아무리 상태창이 나오고 시스템으로부터 능력치를 받는 설정이라도 주인공이 정상적인 작가 지망생이라면 필사를 통해 실력을 키우고, 그 과정을 통해 키워진 본인의 실력으로 자기 글을 써서 백일장이던 신춘문예던을 나가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고, 하필 작가물의 내용이 이럴 수 있나 싶어서 읽기가 어렵기도 하고, 그 작가의 전작들의 제목으로부터 유추해 볼때 주인공의 각각 소설가와 편집자인것 같은데, 일관되게 출판문학계를 다루는 작가의 작품속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는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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