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 읽었던 금성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에는 SF 몇 개를 제외하면 판타지 요소가 별로 없었습니다. 기존의 명작소설들을 청소년/아동용으로 바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문대를 다니던 시절에 어느 날 서점에 갔다가 [드래곤볼]을 보았죠. 세뱃돈을 전부 투입해서 책을 샀습니다. ^ ^ 소원을 들어준다는 드래곤볼은 별로 관심이 없는데, 호이포이 캡슐은 무지무지 탐나더군요. 캡슐 안에 집이 들어 있어서 여행을 할 때 공터에 펼쳐 놓을 수 있으니, 여행이 얼마나 간편합니까?
그런데 20년쯤 더 뒤에 판타지소설에는 ‘아공간 주머니’라든가 ‘아공간 반지’ 같은 게 나옵니다. 집을 넣어 다니는 호이포이 캡슐만큼은 못해도, 물이라든가 식량이라든가 하는 모든 것들을 잔뜩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설정이 참 신선하고 좋았죠.
작가들이 상상해서 만들어 낸 가상의 아이템이 독자들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들고, 선망하게 만들죠. 우리는 현실에서 아공간 주머니나 아공간 반지를 볼 일은 없겠지만, 그런 아이템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옛날 80년대에 읽었던 무협지에는 절벽에서 떨어져서 기연을 얻는 장면들이 나오곤 했습니다. 폭포 안에 동굴이 있다는 설정도 흔했죠. 현실에서는 절벽에서 떨어지면 십중팔구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우리는 어떤 기연을 상상하면서 즐거워했습니다. 책을 읽는 잠시동안에라도 그 즐거움을 상상으로 누리고 싶었죠.
아마 앞으로도 작가들은 이런저런 가상의 아이템들을 창조해 낼 겁니다. 우리는 그 아이템들을 상상하면서 즐거움을 느끼게 될 거고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사족) 아주 어렸을 때 봤던 미국드라마 하나가 떠오르네요. 손목시계 버튼을 누르면 주인이 투명해지는 드라마였습니다. ^ ^ 1970년대에 이런 가상의 아이템 하나로 드라마를 만들어 내다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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