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평생 읽은 책들 중에서 좋은 책 서열을 매긴다고 치면, 소설 [대망]은 3위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정치에 대해서 눈을 떴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95년 이 소설을 사서 열심히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20~30번 반복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킨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노환으로 죽었습니다.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는 고작 6살인가 밖에 안 되었던 상황입니다. 히데요시는 죽기 전에 5명의 중신과 5명의 행정관 체제를 남겼습니다. 히데요시는 이 체제로 아들 히데요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유지되고, 히데요리가 정권을 갖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정권은 금방 도꾸가와 이에야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이에야스는 에도에 막부를 창건하였고, 이는 여러 면을 고려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행정관 이시다 미쓰나리는 도요또미 가문과 친한 영주들을 포섭하여 막부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세끼가하라 전투에서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전국시대의 상식대로라면, 이 패전의 책임을 히데요리에게 지워서 할복을 명하고, 도요또미 가문을 멸망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모든 건 이시다 미쓰나리 일당의 책임이라고 판단하면서 히데요리와 요도기미의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요또미 히데요리는 오사까 성에서 계속 거주하면서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습니다.
한편 도꾸가와 가문과 도요또미 가문은 인척관계가 있었습니다. 히데요시의 누이동생이 이에야스와 재혼했기 때문에 명목상으로는 처남, 매부 사이였던 거지요. 하지만 도요또미 가문의 사람들과 도꾸가와 가문의 사람들은 서로를 원수로 여겼습니다.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았을 때, 도꾸가와 이에야스에게 굴복을 강요하고 그 뒤로도 온갖 난제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한이 제 때에 해소되도록 했어야 하는 건데, 전국시대를 겪었기 때문에 서로 방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방심했다가는 난제에 걸려서 처형당하거나 영지를 빼앗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적 또는 원수로 여기고,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전국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입니다.
도요또미 히데요시 사후 17년인가 되었을 때, 오사까 성에서는 대불전을 건립하고 준공 축하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 거창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일본 전국의 온갖 인물들이 오사까 성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도요또미 가문의 무장들은 그동안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도꾸가와 막부에서 뭔가 난제를 걸어 오지 않을까, 마음 내키는 대로 영지를 없애 버리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었죠. 그리고 이런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도꾸가와 가문과 장군을 엄청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런 적대감을 공공연하게 선동하기 시작하고, 강경파들이 이 선동에 놀아났습니다. 그래서 어느새 막부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키자, 전쟁을 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이런 불온한 분위기가 전쟁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도요또미 가문의 행정관인 가다기리 가쓰모도를 불러서 난제(수수께끼)를 걸었습니다. 대불전에 걸릴 종에 도꾸가와 가문을 저주하는 종명이 새겨져 있어서 이 행사를 열지 못한다는 난제였지요. 그냥 바로 직설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명령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에야스는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를 걸었던 겁니다.... 가다기리 가쓰모도는 이 수수께끼를 풀 지능이 없었고, 몇 사람의 뻘짓이 반복되는 동안에 오사까 성에서는 반란이 기정사실화 되었습니다. 이 흐름은 요도기미 등이 중간에 막을 수 있었지만, 결국 반감과 오해가 겹쳐서 아무도 막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들 죽음을 각오하고 도꾸가와 막부와 전쟁을 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죠... 결국 겨울전쟁과 여름전쟁이 일어났고, 도요또미 가문은 패전했습니다. 그 결과 도요또미 가문은 멸망하고, 도요또미 가문을 지지했던 가문들 역시 영지를 잃게 되었습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뒤늦게 후회를 합니다. 자신이 놓은 평화의 수(바둑)로 전국시대가 종식되고, 도꾸가와 가문과 도요또미 가문 사이에 평화가 정착될 거라고 방심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물론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잘 압니다.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막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심으로 인해서 충분히 대책을 세우지도 실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결과 전쟁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보면서 남북한의 상황과 절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6.25전쟁의 원한이 있었고, 그 뒤로 남파된 무장공비와 KAL기 테러, 연평도 포격 등의 원한이 새로 생겼습니다. 북한의 기습 남침과 120만 명에 달하는 군대 때문에 적대감 또한 높습니다. 거기다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온갖 악행은 인간으로서 용납하기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대통령은 또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방심하면 공산화될 수 있으니, 조금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반공정신.... 소설에 나오는 전국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다를 바가 없지요.
소설 속에서는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막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충분히 대책을 세우지도 않았고, 실행하지도 않았습니다.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현실 속에서는 남한 정부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막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지 않도록 유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도록 유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대책을 세우지도 않았고, 실행하지도 않았고, 불법대북송금으로 국민의 마음을 돌려놨습니다. ㅠ ㅠ 그러다가 이제 북한이 핵폭탄과 미사일을 완성하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핵미사일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제 뭘 어떡해야 하죠???
저는 북핵문제의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해결책을 알지도 못하고, 궁리하지도 않으며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네요... ㅠ ㅠ 그렇다고 돈도 없는 제가 생업을 팽개치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숙명인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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