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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삼국지에 나오는 고사성어

작성자
Lv.1 血風流
작성
05.05.09 15:39
조회
131

1.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

서주에서 쉽게 유비를 물리친 조조는 관우가 있는 하비성으로 군사를 몰았다. 이때 관우는 유비의 일가를 보호하고 있었는데, 조조의 항복 권유를 받고 세가지 조건 - 자신의 항복은 조조에게가 아니라 천자에 대한 항복이라는 것, 유비 식구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유비가 있는 곳을 알면 언제라도 떠나겠다는 것 - 을 제시하고 그에게 투항한다. 조조는 유비에게 향한 관우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포가 타던 적토마를 주고, 날마다 연회를 베풀며, 각종 진귀한 물건을 주는 등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다. 그러나 관우는 유비가 원소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바로 조조를 떠난다. 이 때 관우는 다섯 관문을 지나며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조조의 부하장수 여섯 명의 목을 벤다. 관우가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안 조조는 장료를 보내 관우의 무사통과를 지시하지만, 이미 자신의 부하 장수들이 희생을 당한 뒤였다. 이에 격분한 하후돈이 관우를 죽이려고 하지만 조조는, "무릇 사람이란 자신이 섬겨야 하는 주인은 따로 있는 법"이라며 관우와의 약속을 지키고있다. 이 일을 연의삼국지에서는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이라고 기술하여 유비를 향한 관우의 변함없는 의리만을 찬양하고 있다.

2.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

삼국지에서는 관우가 조조를 화용도에서 놓아주고 왔을 때, 유비의 간청으로 관우를 살려준 제갈량이 유비에게 '아직 조조는 죽을 때가 안됐기 때문에 관우로 하여금 과거 조조에게 입은 은혜나 갚으라고 유독 그를 화용도로 보낸 것'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자신은 다만 인간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도리를 다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 표현으로 밝히고 있다.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이라고도 하지요)

3. 계륵(鷄肋)

조조군이 한중에서 철수하기 얼마 전이었다. 그날 밤 조조가 저녁식사를 하려는데 음식이 닭갈비였다. 때마침 하후돈이 들어와, "오늘밤 군호를 무엇으로 할까요?" 하고 물으니 별다른 생각없이 방금 전에 먹었던 음식 생각이 나서 계륵이라고 했다. 하후돈이 전령하기를 오늘밤의 군호는 계륵이라 하였다. 이때 행군주부 양수가 하후돈의 군호를 듣고는 행장을 수습하여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하후돈이 깜짝 놀라 양수에게, "그대는 어찌하여 행장을 수습하는 것이오?" 하니 양수가 대답하기를, "제가 군호를 듣고 위왕께서 곧 귀환하실 뜻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계륵이란 것이 뭡니까. 그러니까 먹으려면 먹을 고기가 없고 버리려면 아까운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전황처럼 이제 나아가도 이기지 못하고 물러가려 하나 남의 치소가 두렵고 여기에 있자하나 아무 이로움 점이 없는 형국과 똑같지 않습니까.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위왕께서 철수할 생각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니 아예 미리 행장을 수습한 것입니다." 하후돈은 원래 똑똑하기로 소문난 양수의 말을 듣고 '과연 학문이 깊은면 위왕의 마음속 깊은곳까지 헤아리는구나' 하고 칭찬하며 자신도 행장을 수습하니 여러 장수들도 덩달아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밤 조조는 심신이 편치못하여 밤바람이라도 쏘이려고 막사밖으로 나왔는데 하후돈의 병사들이 제각기 돌아갈 준비를 하는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래서 하후돈을 불러 물어보았더니 양수가 군호인 '계륵'을 풀이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크게 노하였다. 마치 속마음이 들킨 기분이 드는데다가 평소 똑똑한 티를 내는 양수가 얄미웠던 것이다. 그래서 군심을 어지럽혔다 하여 양수를 처형하고 머리를 영문에다 효수했다. 바로 여기에서 계륵이 유래되었다.

4.난형난제(難兄難弟)

후한 말엽. 11대 환제 12대 영제대 환관들의 전횡이 심하여 정의파 관료나 관료예비군이라고 할 수 있는 태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당인(黨人)이라는 정치단체를 결성하여 환관정치에 저항, '당고의 화(黨錮의 禍)' 라는 탄압사건을 불러 일으켰다. 그대 진식(104-187)은 태구현의 장관으로서 명망이 있었으나 역시 환관정치에 저항하여 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처형되지 않고 나중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손자들을 교육시키며 노후를 보냈다. 그의 장남 원방(元方. 이름은 기<記>) 은 후한 말 동탁밑에서 시중으로 승진했으나 동생인 계방(季方)은 젊어서 죽었다. 모두 명성을 얻어 아버지나 형과 함께 세 사람의 걸출한 인물이라고 불리웠다. 원방의 아들 장문(張文. 이름은 군<群>)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 위왕 조조 정권을 거쳐 위문제 조비밑에서 대신이 되어 유명한 '구품관인법(처음으로 관직을 의계품으로 나눈 관제 및 관리등용법)'을 입안 제정하기도 했다. 그 장문이 어릴적에 계방의 아들인 효선(孝先. 이름은 충<忠>)과 서로 자기 부친의 공적을 예로 들면서 우열을 논한 일이 있는데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부 진식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진식이 말했다. "원방은 형, 계방은 아우지만 덕행으로 보면 원방을 형이라고 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계방을 아우라고 하기도 어렵다(元方難爲其兄, 季方難爲其弟)." '난형난제(難兄難弟)'란 말은 여기서 나온 고사로 형제의 우열을 가릴수 없다는 뜻으로 나중에 바뀌어 상하우열을 가릴수 없는 것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 말을 후학들이 평가하기로 부모된 사람은 죽을때까지 자기 자식의 우열을 가려 품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가 하면 부모로부터 '형보다 못하다'는 말을 들은 아우도 기분이 좋을리 없는데 만일 동생보다 못한 형이라고 평가한다면 어떤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될까를 염두에 두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5.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

제갈량을 모시다시피하여 신야로 온 유비는 그날부터 제갈량을 스승처럼 대접하여 잠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를 본 관우와 장비는 좋게 생각하지 않고 늘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군사라고 하지만 아직 나이도 어리고, 재주가 있다 할지라도 형장은 지나치게 대우하십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 보기에도 별로 좋지가 않습니다." 유비가 타이르며 단언했다. "내가 군사를 얻은 것은 고기가 물을 얻은것과 같으니 아우들은 불평하지 말고 두고보라. 반드시 큰 업적을 쌓을테니..." 관우와 장비는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렇듯이 주군과 신하가 마치 물과 물고기처럼 돈독한 관계를 맺을때를 수어지교라고 한다. 이때 유비의 나이는 마흔일곱살이고 제갈량은 스물일곱 살이었다.

6. 내조(內助)

위문제 조비의 황후인 곽후(廓后, 187-234)는 원래 군의 장관이었던 곽영의 딸로 태어났을 때부터 남과 달라 곽영이 '내 딸은 여자 가운데 왕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여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녀는 조조가 위왕이 되었을 무렵(216년) 동궁으로 들어갔다. 여성으로서 보기 드물게 조비가 황태자가 되는 데에도 책략을 썼다. 조비가 제위에 오르자 참소하여 조예를 낳은 견후에게 죽음을 내리게 했고 222년에 자신이 왕후의 자리에 앉았다. 견후는 머리칼로 얼굴을 덮고 겨로 입을 틀어막은 채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중랑(궁에서 숙직하여 시위하는 관리)인 잔잠(棧潛)이 곽황후를 세우는 것에 반대하여 위제 조비에게 상소를 올려 '예로부터 제왕의 정치에는 밖에서 정치를 돕는 자뿐만 아니라 내조도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가르침으로 알아야 할 선례나 관례, '역경'이나 '춘추 좌씨전'에 적혀있는 것을 들어 사람이 신분이 높은 자리를 탐하여 발생하는 많은 불상사와 집안의 불행에 대해 간언하고 설득했으나 위제 조비는 받아들이지 않고 급기야는 곽씨를 황후로 세웠다. 내궁의 법도와 황후의 인덕을 뜻하는 말로 시작된 '내조'란 내부에서 돕는다는 의미로서 내덕의 공을 말하는데 일반 시중에서는 '내조의 공'이라 하여 널리 아내가 가사를 잘 돌보아 밖의 일을 하는 남편이 집안 일에 신경쓰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7. 돈견(豚犬)

조조가 천하통일에 나서서 25만 대병력으로 장강 연안에 포진하고 주유와 제갈량은 이에 맞서 결전한 것이 유명한 '적벽대전' 이다. 이때 수전에 익숙치 못한 조조는 화공작전이라는 기략에 휘말려 대패했다. 조조는 그 후에도 자주 손권을 치려고 했으나 끝내 무찌르지 못했다. 조조는 탄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가지려면 손중모와 같은 자를 갖고 싶다. 앞서 항복한 형주의 유표 아들 따위는 돈견과 같다 (生子當如孫仲謨, 劉景升兒子, 苦豚犬耳)." '삼국지' 주해에 '돈견'은 '돈아견자(豚兒犬子)'로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자기 아들을 낮추어 말할때 '돈아'라고 말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건안기를 대표하는 시인이기도 했던 조조는 무슨 일이 생겼을때마다 한마디 하지 않고서는 못배겼던 것 같다. '돈견'이라는 악담을 뒤집어보면 쉽게 무찌를 줄 알았다가 의의로 적벽에서 패한 것을 원통해 하는 심정도 숨겨져 있을 것이다.

8. 망매해갈(望梅解渴)

위왕 조조는 '젊어서부터 기경, 권수가 있었다'고 그에 대한 각종 사료에 나타나 있다. '기경(機警)'이란 기지가 있고 영리하다는 것이며 '권수(權數)'는 '권모술수'를 줄인 말로 남을 기만하는 모사를 말한다. 한마디로 영특하여 여러 사람을 이끌만한 리더쉽이 있었다는 말이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대표적인 기경권수의 예로 전해지고 있다. 위왕 조조가 행군하던 중 물이 있는 곳을 찾지 못하여 모든 장병이 목이 말라 허덕이고 있었다. 이 모양을 바라보던 조조는 갑자기 소리쳤다. "자! 저 너머에 커다란 매실나무 숲이 있다. 새콤한 열매가 가득 열려 있을 테니까 조금만 더 가면 목마름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장병들은 이 소리를 듣고 매실을 생각하자 절로 입안에 침이 고여 기운을 내서 샘이 있는 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이 고사를 '망매해갈(望梅解渴)'이라고 한다. 조조의 뛰어난 재치를 말하는 것이 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사람을 속인 예로써 지적되기도 한다. 이때 매실이 있다고 한 장소는 안휘성 노강현 동남방의 매실나무가 많은 누은산, 또는 안휘성 추보현 서남방이라고도 하지만 사실인지 아닌지 어느때 얘긴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 고사는 기경과 권수를 수단으로 정치력을 발휘한 위왕 조조의 단면을 잘 말해 준다고 하겠다.

9.명모호치(明眸皓齒)와 폐월수화(閉月羞花)

미인을 두고 '침어낙안(沈魚落雁)'이나 '폐월수화(閉月羞花)' 또는 '명모호치(明眸皓齒)'라는 말이 시나 부 등에서 자주 사용된다. 출처를 보면 조조의 삼남 조식이 견씨를 좋아했는데 그녀는 형인 조비에게 시집가 견후가 되었다. 그녀는 얼마후 곽씨에게 황후의 자리를 빼앗기고 죽음을 당했고 조식은 그녀의 유품인 베개를 형 위제 조비로부터 받아 임지로 돌아오는 길에 낙수가에 이르렀다. 그때 조식은 견씨의 모습을 회상하며 '낙신부(洛神賦)'를 지었는데 조식은 매우 비감한 심정이 되어 다음과 같이 읊었다. '엷은 구름에 사인 달처럼 아련하고 흐르는 바람에 눈이 날리듯 가뿐하다.' '폐월(閉月)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낙신부'에서 '폐월'의 명구를 낳은 부분에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어깨선은 깎은 듯 매끄럽고 허리에는 흰 비단을 두른것 같다. 목덜미는 길고 갸름하며 흰 살결을 드러내고 있다. 향기로운 연지를 바르지도 않고 분도 바르지 않았다. 구름같은 모양으로 머리는 높직하고 길게 그린 눈썹은 가늘게 흐른다. 빨간 입술은 선연하게 눈길을 끌고 하얀 이는 입술 사이에서 빛난다. 초롱한 눈은 때로 곁눈질 치고 보조개는 귀엽기 그지없도다.' 여기서 명모(明眸)란 시원스럽고 맑은것, 호치(皓齒)는 하얗고 아름다운 이를 말한다. '명모호치'는 미인의 조건이 되었다. 나중 시인들은 이 말을 빌어 미인을 뜻할때 명모호치 또는 폐월수화라고 노래했다.

(이 명모호치는 나중에 두보의 시 <애강두>에서 양귀비를 비유하는데 쓰이기도 했습니다)

10.비육지탄

어느날 유표의 초청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유비가 화장실에 갔다. 볼일을 마치고 우연히 자신의 허벅지에 찐 살을 본 유비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자리로 돌아왔으나 운 것을 눈치챈 유표가 이상히 여겨 물었다. "아니, 왠 눈물이오?" "제가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세월을 살면서 단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한실을 다시 일으키는 것입니다. 제가 전쟁터에서 평생을 보내 언제나 말등에 앉아 있었으므로 허벅지에 살이 찔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살이 많이 찌고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룬 것은 없고 그저 무위도식, 살만 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불우한 상태에서 지내는 것을 한탄하는 이 말은 양양일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쓰여지고 있다.

11.박면피(剝面皮)

진(晋)의 천하통일은 어떤 측면에서 오의 손호 스스로가 행한 폭정탓에 반대급부로 얻어졌다고 해도 좋을 만큼 그 포학성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간언하는 신하를 거열형에 처하거나 뜻에 거역하는 궁녀를 참살해서 격류에 던져버리는 등 갖은 학정을 다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박면피'라는 것도 오제 손호가 얼마나 포악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손호의 잔인성은 마음에 맞지 않는 자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그가 진에게 항복하여 낙양으로 끌려갔을때 진의 실력자인 가충이, "어째서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 짓을 했습니까?" 라고 묻자 손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 얼굴 가죽이 두꺼운 것이 우선 밉살스러웠기 때문이었소." 이 고사는 나중 배씨어림 속에 수록되었다. '면피를 벗긴다'는 것은 파렴치한 자의 면모를 밝혀 수치를 맛보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낮가죽이 두껍다라든가 뻔뻔스럽다라든가 염치를 모른다는 것을 '후안무치'라고 하는데 이것은 '시경' 소아의 <교언>의 한편에 '교언여황(巧言如簧)은 안지후의(顔之厚矣)' 에서 나온 고어로 이것을 좀 새롭게 구성한 것이 '남사(南史)' 변변전에 나오는 '면피후(面皮厚)' 즉 뻔뻔스러운 사람을 두고 얼굴 가죽이 두껍다고 말했다.

12.삼고초려(三顧草廬)

유비의 인재 영입 방법의 백미로 꼽히는 삼고초려의 이야기는 끈끈한 인간관계에 호소하여 혈연 이상의 정분을 맺고 믿음을 획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비는 제갈량에 대한 소문을 듣고 눈보라치는 추운 겨울에도 두번씩이나 허탕을 치며 성의를 다해 찾아갔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자 다시 점쟁이에게 물어 길일(吉日)을 잡고 사흘이나 목욕재계한 후 다시 제갈량을 찾아 융중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때 관우, 장비는 화가 났다. 칼 한 자루 휘두를 만한 힘도 없을 서생 하나를 영입하려고 벌써 두번이나 찾아갔었고 상대가 웬간하면 답례 정도 할 수 있는 일을 안하는게 더욱 괘씸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비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으나 유비는 일언지하에 묵살하고 "예를 다하여 모셔와야 한다."고 호통친다. 결국 세번째 방문으로 제갈량의 영입에 성공하는데 사람의 일은 오직 정성을 다하는 것에서 좋은 결실을 맺을수 있다는 예로도 이 삼고초려란 말이 쓰인다.

13.양상군자(梁上君子)

진군의 조부 청류파 출신의 거목이었던 진식은 하남성 태구현의 장관으로 유명했다. 그가 태구현의 장관으로 있던 어느해 극심한 흉작으로 백성들은 먹을것이 없어 허덕이고 있었다. 어느날 밤 도둑이 그의 방에 몰래 들어와 들보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진식은 그 기미를 알아차리고 옷차림을 단정하게 한 다음 아들과 손자를 불러 타이르면서 말하였다. "사람은 수양을 게을리하면 안된다. 좋지 않은일을 하는 사람도 본시부터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이다. 하던 버릇이 습성이 되어 그렇게 되는 것인데 저 '양상(梁上)의 군자(君子)'도 바로 그렇다." 대들보 위에 바짝 웅크리고 있던 도둑은 크게 놀라 스스로 뛰어내려 엎드려 죄를 받으려고 했다. 진식은 조용히 타이르며 '보기에 악인 같지 않으니 깊이 반성해서 자기를 극복하면 선으로 되돌아 설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배고픈 탓이겠지'라고 말하고 비단 두필을 주며 놓아주었다. 그 이후 현에는 흉년이 들어 먹을것이 없어도 일체 도둑이 없었다. 이 고사는 진태구의 명성과 함께 널리 처져나갔고 이후부터는 도둑을 '양상군자'라고 부르게 되었고 때로는 쥐를 가리키기도 한다.

14.일룡분이호(一龍分二虎)

이 이야기는 유비와 장비의 고향인 탁주에서 그 지방의 토박이 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탁주성 외곽의 도장(桃莊)이라는 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장비는, 원래 돼지고기를 취급하는 식육 해체업자(도살장)로, 천하의 호걸과 교제하기를 좋아하여 언제나 한 덩어리의 고기를, 문 앞에 낡은 우물속에 넣어두고, 천근이나 나가는 커다란 돌로 덮어놓고 돌에다가 <이 덮개를 여는 사람은, 속에있는 고기를 가져가도 좋다. 돈은 필요 없음.>이라고 써 놓아다. 어느날, 불그레한 얼굴의 남자가, 수레를 끌고 지나가다가 돌에 쓰여있는 글을 읽어보더니 곧 덮개를 열고 고기를 꺼내어 가지고 유유히 성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장비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얼른 곡물 시장으로 그의 뒤를 쫓아갔다. 과연 불그레한 얼굴을 한 몸집이 큰 남자가 녹두를 팔고 있었다. 장비는 그앞에 서서 갑자기 녹두를 손에쥐고, 손안에서 부수어 가루를 내 보였다. 장비의 이런 도발적인 행동은 녹두장수인 남자의 화를 돋우어, 이내 말다툼을 하던 끝에 서로 치고받는 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양쪽이 다 천근을 들어올리는 힘이 센 장사여서 승부가 나지를 않았다. 이때에 나타난 것이 짚신장수, 그의 몸집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단정한 용모에 양쪽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그는 두 사람의 팔을 붙잡고 들어올리며, <사나이는 무릇 나라를 위해 힘을 써야만 하는 법, 어찌하여 그대들은 이렇듯 작은일에 분개하는가>하고 말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손을 떼었다. 주위에 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짚신장수에게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두 사람은 크게 감동하고, 세 사람은 서로 공수(拱手-중국식 절의 하나로 공경의 예를 표하기 위하여 두 손을 마주 잡음)의 예를 올리고, 서로의 이름을 밝혔다. 짚신장수는 유비, 불그레한 얼굴을 한 커다란 몸집의 남자는 관우였다. 관우는 산서(山西)사람으로 의리로 인하여 그 지방 토박이인 악당을 죽이고 뛰쳐나온지 6년, 이때에 탁주로 녹두를 팔러왔던 참이었다. 세 사람은 싸움과 중재로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한 마리의 용이 두 마리의 호랑이를 갈라놓다>라고 하는 말로 전하고 있다.

15.화병(畵餠)

위제 조비는 위왕 조조의 법치주의를 계승하여 획기적인 '구품관인법'을 만들었다. 관리등용의 기준을 향론, 즉 후한 말 이래로 인물 평론에 의존하고 있던 것을 개선한 것이다. 당시 선비들 사이에는 말재주를 부리거나 화려한 언행만을 좋아하는 무리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소위 여론을 의식한 행동만이 만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학적인 청담을 선구적으로 이끈 그룹들은 사총(四聰), 팔달(八達)이라 칭하고 무리를 지어 명성을 얻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다행히 당시는 유능하고 착실한 인물을 평가하는 조조시대의 풍조가 약간은 남아 있었다. 조비는 유능하고 착실한 인물들을 좋아했고 명성에 의존하는 자들을 극히 미워했으며 학문도 높고 덕행으로도 손꼽히는 노육(盧毓)을 이부상서로 기용했었다. 그에게 '그대와 같은 자를 모아라'라고 명령하고 특히 명성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는 인물의 등용을 피하도록 지시하면서 말했다. "관리임용을 할 때는 명성으로 판단하여 채용해서는 안된다. 명성은 마치 땅에 그린 떡과 같아서 쓸모가 없다." 노육은 이렇게 해서 우선 고과법(考課法)을 만들고 재능보다도 덕행을 중시하여 관원을 임명했다. '화병'이란 말은 이 고사에서 나온 것으로 그림으로 그린 떡이니 먹을 수 없다. 따라서 실제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다. 실질을 숭상했던 조조가문의 특성이 엿보이는 병법이다

16. 읍참마속(泣斬馬謖)

- 揮淚斬馬謖휘루참마속(눈물을 뿌리며 마속을 베다)이 원전이라는 설도 있음

'울면서 마속을 벤다'는 뜻으로 '법의 공정을 지키기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림'을 비유.

삼국시대 초엽인 촉(蜀)나라 건흥(建興) 5년(227) 3월, 제갈량(諸葛亮)은 대군을 이끌고 성도(成都)를 출발했다. 곧 한중(漢中:섬서성 내)을 석권하고 기산(祁山:감숙성 내)으로 진출하여 위(魏)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그러자 조조(曹操)가 급파한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司馬懿:자는 중달(中達), 179~251)는 20만 대군으로 기산의 산야(山野)에 부채꼴[扇形]의 진을 치고 제갈량의 침공군과 대치했다. 이 '진(陣)'을 깰 제갈량의 계책은 이미 서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지략이 뛰어난 사마의인 만큼 군량 수송로(軍糧輸送路)의 요충지인 '가정(街亭 :한중 동쪽)'을 수비하는 것이 문제였다.

만약 가정(街亭)을 잃으면 촉나라의 중원(中原) 진출의 웅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책(重責)을 맡길 만한 장수가 마땅치 않아서 제갈량은 고민했다. 그 때 마속(馬謖:190-228)이 그 중책을 자원하고 나섰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명 참모 마량(馬良)의 동생으로, 평소 제갈량이 아끼는 재기 발랄한 장수였다.

그러나 노회(老獪)한 사마의 와 대결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그래서 제갈량이 주저하자 마속은 거듭 간청했다.

"다년간 병략(兵略)을 익혔는데 어찌 가정(街亭)하나 지켜 내지 못하겠습니까? 만약 패하면 저는 물론 일가 권속(一家眷屬)까지 참형을 당해도 결코 원망치 않겠습니다."

"좋다. 그러나 군율(軍律)에는 두 말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서둘러 가정에 도착한 마속은 지형부터 살펴 보았다. 삼면이 절벽을 이룬 산이 있었다.

제갈량의 명령은 그 산기슭의 협로(峽路)를 사수만 하라는 것이었으나 마속은 욕심을 내어 적을 유인하여 역공할 생각으로 산 위에다 진을 쳤다.

그러나 마속의 생각과 달리 위 나라 군사는 산기슭을 포위만 한 채로 산 위를 공격해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자 산 위에 서는 식수가 끊겼다. 다급해진 마속은 전병력을 동원해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위나라 용장 장합(張稷)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마속의 실패로 전군(全軍)을 한중(韓中)으로 후퇴시킨 제갈량은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228) 5 월, 마속이 처형되는 날이 왔다. 때마침 성도(成都)에서 연락관 으로 와 있던 장완(張?)은 '마속 같은 유능한 장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손실'이라고 설득했으나 제갈량은 듣지 않았다.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요.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리어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되오. 아끼는 사람일수록 가차없이 처단하여 대의(大義)를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는 법이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고 한다.

泣 울 읍. 斬 벨 참. 馬 말 마. 謖 일어날 속.

[유사어] 一罰百戒(일벌백계) : 하나의 처벌로 배이 경계한다. 본보기로 하는 처벌.

[출전] '三國志' 蜀志 諸葛亮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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