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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의

작성자
Lv.39 파천러브
작성
04.08.14 01:44
조회
542

(1)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의 대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육체를 잘 보존하면 저승에 가서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그래서 고대 이집트 왕들은 강력한 권력을 이용하여자신들의 무덤인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게 했습니다.

피라미드의 어원은 그리스어인 피라미스이며 이집트인들은 메르라고 불렀습니다.현재 80기가 알려져 있고 대부분 카이로 서쪽 아부 라와슈에서 일라훈에 이르는 남북 90필로미터정도의 나일강 서안 사막에 존재합니다.

헌재는 흔적만 남은 것도 있으며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외로 적다고 합니다.

피라믿그가4800년전에 세워졌다는 것은 놀랍기만 합니다.피라미드의 크기 설계의 치밀함 주변 환경과의 조화도 신비감을 자아냅니다.

피라미드의 무덤 이외으 ㅣ용도와 건설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나왔으나 그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그렇게 큰 피라미드를 어떻게 세웠을까..

우선 피라미드세울 장소를 선택

바닥이 단단하고 홍수때 물에 잠기지 않는 곳을 선택했겠지요..

그다음에 기초공사

모래와 자갈을 치우고 바위로 된 바닥이 드러나게 하고..

바위의 둘레에 둑을 쌓고 가늘고 얕은 고랑을 판 다음 물을 채우고..

수면의 높이를 표시해서 그 곳까지 바위를 깎아 내려가겠지요.

이렇게 해서 높이의 차가 2센치미터도 안 되는 거의 수평의 바닥을 다듬은 후에..

이제 돌을 구해야 되는데 대부분의 돌은 피라미드 주변의 채석장에서 가져왔으며 먼저 바위에 작ㄹ은 구멍을 내고 거기에 나무 쐐기를 박은 다음 쐐기에 물을 부으면 나무가 불어 나면서 바위가 쪼개지게 된다고 합니다.

피라미드에 사용된 석회암은 나일강 건너면의도라에서가져왔고

방을 만들 때 사용된 단단한 바위는 1000킬로미터나 떨어진 아스완에서 구했다고 합니다.그 돌덩이들은 거룻배에 실려 강둑까지 운반되었고

ㅅ건설당시이집트인들은 수레나 말을 이용한 운반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돌덩이는 통나무 굴림대 위에 올려 놓고 밧줄롤 끌었으며 동시에 지렛대로 밀어 운반했습니다.

이제는 돌을 쌓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많은 학설이 있으나

동시에 지렛대로 밀어 운반했다는 학설이 가장 강하고..

이제는 돌을 쌓아야 하는데 여기또한 많은 학설이 있으나 가장 유력한 학설은 경사로름 나들어 쌓았다는 것입니다.

피라미드 측면에 직각으로 경사로를 만들고 석재를 운반하고..

피라미드가 높아지만서 경사로도 게속 높아졌고 좀 더 낮은 기울기를 유지해야 했으므로 길이가 점차 길어졌을 것입니다..경사로는 피라미드 둘레의 4배가량이 됭ㅆ엇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피라ㅣ드르르 다 싸혹 나면 위에서부터 석회암으로 외장을 완공시켜 가면서 경사롤르 낮게 만들었을 것입니다.외장은 정성들려 시공되었으며 석재는 종이 한 장 끼워지지 않을 정도ㅗㄹ 치밀하게 쌓여졌습니다..

이집트의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들은 모두 제 4왕조 기원전 2600년에서 248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입니다.가장 큰 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 높이가

148미터에 달했으나 현재는 윗부분이 없어져 136미터로 낮아졌습니다.

대 피라미드 또는 제 1피라미드라 불리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세계 7대 불가의의 하나로 꼽히고 있씁니다.

두번째로 큰 것은 키프레 왕의 무덤으로 136미터이고

세번째는 멘카우레 왕의 것으로 62미터에 달합니다..밑변의 길이가 230미터인 쿠푸왕의 미라피드는 평균 뮤ㅜ게 2,5톤

높이 1미터 폭 2미터의 약 230만에서 250만개의 돌로 세워졌습니다.

경사면의 각도는 51도 52도이며

각 능선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 2권에선

이 피라미든는 10만명이 2개월동안 교대로 20년에걸쳐 건조되었다고 적혀져잇씁니다.쿠푸왕의 피라믿의 복잡한 내부구조는 2번이나 계획이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닪 하나뿐인 입구는 북쪽면의 지상 18미터지점에 있으며

여기에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면 암반 밑에 설치된 방에 도달합니다.

입게엇 20메터 떨어진 곳에서 시작되는 위쪽 통로는 예비용 현실과 대회랑으로 연괼됩니다.

대회랑 끝에는 좁은 대기실이 있는 데 여기를 지나면 쿠푸왕의 현실에 다다릅니다.

이 방은 피라믿의 무게중심에 해당하는 지상 42미터지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방의 천장에는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해 중량 확신 장치를 마련했씁니다.

게다가 피라믿의 바깥과 이 방을 직접 연결하는 2개의 조그만 환기 구멍까지 있습니다.피라믿의 아래족 통로는

26도 17도의 각도로 기울어지며 그 방향은 북극성의 방향과 일치합니다또 위쪽 통로와 대회량의 기울기도 26도 17도입니다.

북극성의 방향과 일치하는 이 점에 대해서 학자들은 피라믿그ㅏ 천문대로쓰였다고도주장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정확한 달력을 만들기 위해 별과 달의 움직임을 관측해야 했고 그래서 일정한 방향을 향한느 아래쪽으로 통로를 마늗ㄹ었다는 것입니다.같은 기울기를 가진 두 통로가 만나는 곳에 반사경을 두어 일종의 만원경으로 이용했다는 것이지요..

또 위쪽 통로 위에 지붕이 없는 대회량을 만들어 머리 위의 별을 관측했다고 합니다또 피라미드가 지구의 크기를 나타낸다는 주장도 있씁니다.

피라미드의 밑변이 지구의 둘레이고 피라미드이 높이가 지구의 지름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 주장은 피라미드의 옆면이 왜 하필 51도52도인가를 해결할수 있습니다그것은 기울기를 먼저 정한 것이 아니라 밑변과 높이를 특정 수치로 정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밑변읙 ㅣㄹ이를 높이의 2배로 나누면 원주율에 가까운 수치가 된다나..

이것은 적도에서 지구의 둘레와 지름의비율과 거의 일치합니다...

-_-그럼 이집트 인들은 지구의 크기를 알고 있었다는 애기지요..피라미드의 수수꼐끼는 아직도 풀려지지 않고 있으며..4800년 전에 세워진 이 피람디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2)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1994년 가을에 프랑스 해저 고고학 발굴팀이 깊이 7m 정도의 바다 속에서 등대의 잔해 수백점을 건지는데 성공을 하였다. 이로써 오랫동안 수수께끼에 싸여 있던 파로스 등대의 신비가 조금이나나 벗겨졌다.

발굴팀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4.55m, 무게 12톤의 여신상을 기중기로 끌어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발굴팀은 아직도 바다 속에 스핑크스와 오벨리스크 등이 잠겨져 있어 그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발굴된 잔해 또는 조형물마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가 새겨져 있어서 사람들은 파로스 등대의 비밀이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는 파로스 섬과 헵타스타디온이라고 불리던 1㎞정도의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곳의 동쪽 끝에 세계의 모든 등대의 원조격인 파로스 등대가 서 있었다.

대부분이 대리석 돌로된 등대의 높이가 135m로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명령으로 소스트라투스가 만들었다.

등대는 3개의 층계로 만들어졌다. 맨 아래층이 4각형, 가운데층이 8각형, 꼭대기 층은 원통형이었다.

각 층은 모두 약간 안쪽으로 기울게 지어졌다(기울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음). 등대 안쪽에는 나선형의 길이 있어서 등대 꼭대기의 옥탑까지 이어져 있었다.

옥탑 위에는 거대한 동상(여신상)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아마도 알렉산드 대왕이나 태양신 헬리오스의 모양을 본떴을 것으로 여기지고 있다.

등대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수십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고 또 먼 본토까지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7c이후 이집트를 정복했던 아랍인들에 따르면 램프 뒤쪽의 반사경으로 비치는 타오르는 불길은 43㎞정도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고, 맑은 날에는 콘스탄티노플까지도 반사경이 비쳤으며 또 햇빛을 반사시키면 160㎞ 정도 떨어져 있는 배도 태울 수 있었다고 한다.

B.C280년경에 만들어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떻게 등대에 불을 지폈을까? 아직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파로스 등대는 상당히 오랜 기간 존속하면서 등대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단단한 돌로된 등대가 무너진 것은 12c경으로 짐작하고 있다.

아마도 1100년과 1307년의 두차례의 큰 지진으로 그 모습을 감추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잊혀져 있다가 20세기 초반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등대의 흔적을 발견함으로써 그 모습을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3.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세미라미스 공중 정원(空中庭園) - Hanging Gardens of Babylon

BC 500년경 신(新)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 아미티스를 위하여 수도인 바빌론에 건설한 정원이다.

실제로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높이 솟아있다는 뜻이다.

지구라트에 연속된 계단식 테라스로 된 노대(露臺)에, 성토하여 풀과 꽃, 수목을 심어놓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삼림으로 뒤덮인 작은 산과 같았다고 한다. 유프라테스 강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물을 댔다고 전해진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왕비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서 공중 정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의 왕이 되자 메디아 왕국의 키약사레스 왕의 딸 아미티스를 왕비로 맞았다. 산이 많아 과일과 꽃이 풍성한 메디아에서 자란 왕비는 평탄하고 비가 잘 오지 않는 바빌론에 마음을 두지 못한 채 항상 아름다운 고향의 푸른 언덕을 그리워하였다. 이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긴 왕은 왕비를 위하여 메디아에 있는 어떤 정원보다도 아름다운 정원을 바빌론에 만들기로 결심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재주가 뛰어난 건축가, 기술자, 미장이들은 곧장 작업에 들어가 왕궁의 광장 중앙에 가로·세로 각각 400m, 높이 15m의 토대를 세우고 그 위에 계단식 건물을 세웠다. 맨 위층의 평면 면적은 60㎡에 불과했지만 총 높이가 105m로 오늘날의 30층 빌딩 정도의 높이었다.

한 층이 만들어지면 그 위에 수천톤의 기름진 흙을 옮겨 놓고 넓은 발코니에 잘 다듬은 화단을 꾸며 꽃이랑 덩굴초랑 과일 나무를 많이 심도록 한 이 파라미드형의 정원은 마치 아름다운 녹색의 깔개를 걸어놓은 듯이 보였다.

그런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이 곳에서 이렇게 큰 정원에 물을 대는 것은 여간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은 정원의 맨 위에 커다란 물탱크를 만들어 유프라테스 강의 물을 펌프로 길어 올리고 그 물을 펌프로 각 층에 대어줌으로써 화단에 적당한 습기를 유지토록 하였으며 또한 그때그때 물뿌리개를 이용하여 물을 공급하도록 하였다.

정원의 아랫부분에는 항상 서늘함을 유지하는 방을 많이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창 너머로 바라보는 꽃과 나무의 모습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또한 방에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방 위에는 갈대나 역청을 펴고 그 위에 납으로 만든 두꺼운 판을 놓았다.

공중 정원에 대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지만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의 페허는 오늘날까지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4. 에페수스(Ephesus)의 Artemis 신전 [로마 신화의 달과 사냥의 신인 Diana]

에페수스 시는 소아시아에 있는 고대 이오니아 지방의 열두 개 도시 중 하나로서 B.C 6세기 경에 이미 서아시에서 상업의 요충지로 번영하여 가중 부유한 도시로 알려졌다. 이 곳을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바로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이 신전은 당시 최고 부자였던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B.C 560∼B.C 546)때 세우기 시작하였다. 높이 20미터 정도의 훌륭한 이오니아풍의 백색 대리석 기둥을 127개나 사용한 이 신전은 완성되기 까지 120년이 걸렸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에페수스를 방문하여 이 신전을 돌아보고는, 기자에 있는 피리미드에도 떨어지지 않는 걸작으로 묘사하면서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헤로도토스가 에페수스를 방문한 지 1세기 정도 지난 뒤 그 훌륭하고 아름다운 신전은 어리석은 한 인간에 의해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B.C 356. 10월

"어차피 나쁜 일을 하려면 후세에까지 알려질 수 있는 악행을 저질러야 한다"고 생각한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자가 신전을 계획적으로 불태워 버린 것이다.

그 후 디노크라테스가 불타 버린 신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에페수스의 여인들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석 등을 팔았고,

왕들은 크로이소스 왕을 본받아 기둥을 기증하기도 했다. 더욱이 아시아 원정 길에 올랐던 알렉산더 대왕은 한층 완성중에 있던 아르테미스 신전의 장대함과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았겨 "만일 에페수스인이 이 신전을 나의 이름으로 세워준다면 모든 비용을 내가 내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페수스인들은 다른 나라의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거절했다고 한다.

야심이 강한 에페수스인들은 자신들의 신전을 지금까지 어떤 신전보다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여, 그 당시 가장 훌륭했던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신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파르테논은 길이가 69m. 폭이 30m, 높이 10정도로서, 대리석 기둥을 58개나 사용한 신전이었다. 에페수스인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 정도의 규모로 만들기 시작했다.

높이 18m짜리 기둥을 127개나 사용했고, 길이는 120m, 폭은 60m로 했다. 또한 신전의 건축용 자재는 가장 순도 높은 백색 대리석만을 사용했으며 중앙의 넓은 홀에는 네 방향으로 대리석 계단을 딛고 올라갈 수 있게 하였다.

그 규모나 화려함은 당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 제우스와 레토의 딸, 아폴론과는 쌍둥이 남매간이다. 처녀 사냥꾼으로 산과 들에서 사슴을 쫓는 활의 명수라고 하며, 그의 화살은 산욕(産褥)을 치르는 여자를 고통없이 그 자리에서 죽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한다.

또한 처녀의 수호신으로서, 순결 정절의 상징이었는데, 처녀의 순결에 상처를 입힘으로써 죽음의 벌을 받은 자 가운데는 오리온이나 아크타이온이 있다.

소(小)아시아의 에페수스에서 신앙되던 아르테미스의 상(像)은 풍부함을 표시하는 듯 살이 쪄 있고 가슴에 무수한 유방을 갖고 있었다.

주변에는 기묘한 모습의 동물들이 얽혀져 있다. 고장에 따라 특징 있는 숭배를 받았는데, 옛날에는 인신공희(人身供犧)를 하는 고장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로마 신화에서는 디아나와 동일시되었다.

아폴론이 태양의 신인 데 반하여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으로 생각되었는데, 이는 월신(月神) 셀레네, 헤카테와 동일화되었기 때문이며, 아르테미스라는 이름도 그리스계(系)가 아니고 옛 선주민족(先住民族)의 신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원래는 대지, 특히 야수들이 사는 들판을 주관하는 모신(母神)으로서 동식물의 다산(多産)과 번성(繁盛)을 주관하는 것으로 믿어, 출산과 어린이의 발육을 수호하는 신이 되기도 하였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260 ∼268년 유럽에서 아시아로 침입해 온 고트인에 의해 약탈되었으며 이 때의 방화로 철저히 파괴되고 말았다.

1863년 영국의 고고학자 J.T 와트가 대영박물관의 원조와 11년동안의 노력으로 마침내 지하 7m 지점에서 대신전을 발굴해 냈다. 발굴한 건축용 석재, 기둥, 조각을 토대로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꽤 정확하게 신전의 본래 모습을 복원할 수 있었다.

로마의 남쪽 25 km에 위치한 아리키아 부근 네미 호숫가에 있는 디아나 네모렌시스는 가장 유명한 신역(神域)으로서, 이곳에서는 디아나가 여성의 수호신으로 신앙되고 있다. 로마의 유명한 디아나 신전은 아벤티누스 언덕에 있다.

5. 제우스 신상

제우스 상이 있는 올림피아는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쪽 앨리스 지방에 있는 제우스의 신역으로서 완만한 구릉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로 예부터 잘 알려져 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최고의 신 제우스를 믿었다.

제우스는 고대 로마의 최고의 신 '주피터'와 같이 고대 그리스 신 가운데 최고의 신으로 천둥, 번개와 비바람을 만드는 신이며, 그의 주 무기는 벼락이었다.

제우스는 우주를 지배하는 신이며, 인간 세계를 다스리는 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도시마다 제우스 신을 모신 신전을 짓고 성대한 제사를 지냈다.

고대 그리스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앨리스 등의 도시 국가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처음에는 땅의 신 크로노스와 여신 헤라를 숭배했지만 뒤에 제우스 신을 숭배하게 되어서 B.C457년에 제우스 신전을 만들었고 그 안에 '피디아스'가 만든 제우스 상을 안치하였다.

제우스 신상과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네 여신상은 피디아스의 2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피디아스는 8년여의 작업 끝에 제우스 상을 완성했는데, 그는 제우스의 신성함 위엄과 함께 너그러움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걸작 중의 걸작 제우스 상은 오늘날 안타깝게도 남아 있지 않다.

대지 위에 우뚝 세워진 신전에는 양옆에 열세 개씩, 양끝에 여섯 개씩 장엄하고 무거운 도리아식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완만하게 기울어진 지붕이 덮여 있다. 이 신전의 한가운데 있는 제우스 상은 높이가 90㎝, 폭이 6.6m인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12m 정도 되는 상은 거의 천장을 닿고 있다

.

제우스 상은 나무로 만들어져 그 위에 보석과 흑단, 상아를 박아 장식한 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금으로 된 발 디딤대에 올려져 있는 양다리는 거의 예배자의 눈높이와 일치하였다.

오른손에는 금과 상아로 만든 승리의 여신(Nike)상을 떠받치고 있으며 왼손에는 황금을 박아 장식한 지팡이(왕홀)를 쥐고 있다. 지팡이 위에는 매가 앉아 있다. 상아로 만들어진 어깨에는 꽃과 동물이 새겨진 황금의 아름다운 망토가 걸쳐져 있다.

제우스 신전의 발굴 움직임이 18세기 경부터 일어났고 처음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였다. 1829년 프랑스인이 제우스 신전이 있던 자리를 발굴하기 시작하여 메도프, 기둥, 지붕 등의 파편을 발견하였다. 1875년경에 독일 정부의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의해 올림피아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고, 제우스상이 있던 신전도 거의 드러나게 되었다. 1950년대 제우스 신전 터에서 피디아스의 작업장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제우스 상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히 밝혀졌다.

6. 할리카르나소스(Halicarnassus)의 마우솔로스 영묘(靈廟) - Mausoleum

페르시아 제국 카리아의 총독 마우솔로스를 위하여 그리스의 할리카르나소스에 건조된 장려한 무덤기념물이다

면적 29×35.6 m, 높이 50 m. 할리카르나소스의 묘묘(墓廟)라고도 한다. 마우솔로스의 생전에 착공되었으나, 그가 죽은 뒤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계속 진행하였으나 완성된 시기는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죽은(BC 350) 뒤로 추측된다.

설계는 사티로스와 피테오스가 하였다. 동서남북의 장식조각은 각각 스코파스, 레오카레스, 티모테오스, 브리아크시스가 담당하였다.

각 면의 조각·프리즈는 발굴되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또, 로마인은 비슷한 대규모의 분묘건축(墳墓建築)도 마우솔레움이라고 일컬었다. 마우솔레움은 그 특이한 모양과 복잡한 장식 때문에 세계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다.

7. 로도스 항구의 거상 - colossus

거상(巨像). 그리스어 콜로소스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기자의 스핑크스 등을 보고나서 칭한 말이 그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로도스섬의 콜로서스이다.

로도스 항구에 서 있던 태양신 <헬리오스 청동상>은 높이가 36 m나 되었으며, 린도스(로도스 섬 동쪽에 있던 고대 도시의 이름)의 카리오스에 의해 BC 280년경 건조되었는데 BC 224년의 지진 때 붕괴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현존하는 것도 많으나 모두 기념비적인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1id=6&dir_id=602&docid=417408


Comment ' 7

  • 작성자
    Lv.6 그라츠트
    작성일
    04.08.14 02:01
    No. 1

    세계 7대 불가사의가 아니라 지중해 7대 불가사의가 아닐런지..-_-
    죄다 지중해 주변 국가들 것들 뿐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silentsea
    작성일
    04.08.14 02:21
    No. 2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게 나누는 사람에따라 시대에따라 전부 다르다고 하더군요. 5개나 9개로 꼽는 사람도 있고, 피사의 사탑, 만리장성, 스톤에이지(영국에 있는 거석유물인데 이름은 정확히 기억안나네요..)이런것도 들어가기도 한다더군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39 매봉옥
    작성일
    04.08.14 08:29
    No. 3

    운남성의 석림을 중국은 8대 불가사의에 끼워넣죠.
    사진으로 봤는데 멋있더군요,
    현재 발굴된건 5프로라고 하니 나머지가 완료된다면 대단할 겁니다.
    원래, 바다안에 있던 석림이 올라오고 그 위는 또 땅으로 변해서
    몰랐다가 우연히 농부가 땅갈다가 알게됬다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04.08.14 11:50
    No. 4

    콜로소스 블레이드 떨어져라~ 떨어져라~ 떨어져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파락호13호
    작성일
    04.08.14 12:09
    No. 5

    7대불가사의는 모두 유럽인이 정한 것이기에 유럽인들과 관련있는것
    만 올라가 있는 자문명 중심주의의 극치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례
    로 중,남미의 아즈텍과 마야 잉카 문명등은 나름대로 상당수준의 문화
    를 쌓았고 거대 건축물들도 많았지만(심지어 이집트 피라미드만한 피
    라미드도 있지만) 모두 무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고려시대때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었지만 유럽인들은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최초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무국광정
    다라니경이 세게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데도 자기나라에서 만
    든 목판인쇄물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주장하고 교과서에 싫어 놓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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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케이포룬
    작성일
    04.08.14 12:17
    No. 6

    정한사람 맘이라고 알고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공중도시 마추피츄, 중국의 만리장성, 영국의 스톤헨지
    도 끼여있는걸로 압니다....하고 피라미드하고....피사의 사탑하고...
    -ㅁ- 나머지 2개는 기억이 안나서...=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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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7 퀘스트
    작성일
    04.08.14 16:27
    No. 7

    7대불가사의가 여러 종류 있습니다만, 원글님이 쓰신것이 원조라고 합니다. 이게 상당히 이른 시기에 나온 거(기원 몇세기 정도...5세기 무렵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히는 생각이 안 나네요.)라서 지중해 지역얘기만 나옵니다. 자국중심주의 이전에, 아는 세계가 거기뿐이었던 거죠.
    당시 이거 정한 사람이 엔지니어여서, 불가사의란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들을 가리킨 것이었다고 합니다. 훗날 인도의 타지마할을 넣은 7대불가사의도 있는데, 이는 기술적 난이도보다는 예술적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한 거구요.
    요즘은 자기 나라 것을 8번째로 넣어서 '8대불가사의'라고 많이들 하더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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